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맑음 Sep 06. 2023

책육아 실패하는 방법

전집을 들이자! 빠짐없이 읽히자!


 그렇습니다. 

 왜 하필 12살에 책육아를 다시! 시작하느냐?(브런치 책 제목이 12살에 다시 시작하는 책육아입니다)

 그냥 꾸준히 하면 제일 쉽지 않으냐 에 대한 답은, 이미 한 번 실패했기 때문에,

 아이들이 책을 읽기 싫다고 선언했기 때문입니다!!

사춘기가 슬슬 오는 건지 엄마가 시키는 것은 다 싫다고 하네요. 책도 읽으라 해도 안 읽고요.


 하지만 이상하게도 우리 아이들은 책을 읽고 있습니다. 같이 들른 서점에서는 '나는 이거 사줘!' 하며 책을 당당하게 들고 옵니다. 분명히 아이들은 또래 대비 책을 많이 읽는 편이고 좋아하는 편입니다. 

 그렇다면 왜 아이들은 책 좀 읽으라고 하지 말라고 반항하느냐?! 책이 싫다고 하느냐?! 그 실패한 방법을 살펴 보았습니다.


 책 육아에 실패하는 방법은 크게 4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전집을 들인다.

 둘째, 책을 읽으라고 강요한다.

 셋째, 독후 활동을 하라고 한다.

 넷째, 전집을 들여서 전부 읽으라고 하고, 읽을 때마다 독후 활동을 하라고 강요한다!


 


 모두 제가 사용했던 방법입니다. 머쓱하군요.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절, 학교 수업도 못 가고 저도 챙겨주지 못하니 자연스럽게 챙겨주는 원격 수업 시스템에 눈이 갔습니다. 그런데 마침 이북도 마음껏 읽고, 원격 학습도 할 수 있는 패드를 이용한 북클럽 같은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욕심을 부려서 시작했습니다.

 책을 읽히려고 시작한 북패드였는데, 포인트가 생기고 반드시 책을 구매해야 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이 포인트들을 다 버릴 수 없으니까, 책을 사기 시작했어요. 되도록 학년 추천 도서나 베스트셀러 모음집 같은 걸로 포인트를 사용하고, 제가 읽을 밀리의 서재 1년 구독권도 사기도 했는데, 요금제가 아주 저렴한 것이 아니어서 그런지 포인트가 많이 남았습니다.

 그렇게 아직 아이들은 안 읽지만 앞으로 두고두고 읽을 만한, 혹은 아이가 손톱만큼 관심을 보이는 주제로 전집을 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재미있는 책을 한 두권 골라 읽던 아이들은 한 동안 책의 쓰나미에 휩쓸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책 대비 책장이 좁았습니다. 책장을 늘리는 것은 한계가 있어서, 얼른 책을 다 읽고 중고로 팔거나 지인에게 물려주는 방법을 썼습니다. 어차피 엄청 두고두고 볼 것 같진 않았거든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이 전집 이제 팔 거니까 안 읽은 책은 얼른 봐라.'며 닦달했습니다. 책을 읽기를 은근 강요하게 되었지요. 


 

아직 남아있는 전집들, 네.... 별로 안 읽네요. 하지만 책이 좋아서 나라도 읽을 테다!!

 그렇게 아이들은 책을 원하지 않는 타이밍에, 원하지 않는 책을 자꾸 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보통 이런 종류의 전집에는 독후 활동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재미있게 잘 짜인 것들이 대부분인데, 그것도 누가 시켜서 하게 되면 일종의 숙제가 되어 버리지요. 방학 숙제로 책을 읽어오라는 게 늘 많았는데, 아이들에게 독후 활동지를 사주고 책리뷰도 쓰게 했습니다. 아이들이 책을 다 읽었다고 제게 가져오는 횟수가 줄었습니다. 엄마가 뭔가를 더 바라는 걸 눈치챘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책을 향한 아이들의 내면적인 동기를 싹 없애주자 아이들은 점점 책 읽는 것을 기피하게 되었습니다.


 전집이 무조건 나쁘다거나 전집 사는 것을 안 된다고 말리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실제로 아이들이 잘 읽은 전집도 있었습니다. 학습이 도움 되기도 하고, 비슷한 이야기가 나올 것을 아니까 어떤 전집은 다른 책 내용도 너무 궁금해하며 하루에 몇 권씩 읽기도 했어요. 하지만 과도한 전집 구매는 아이들에게 책 선택의 폭을 오히려 좁혀주고, 부담을 느끼게 합니다. 읽으라는 엄마의 잔소리까지 주어지면 금상첨화네요. 책을 읽기 싫은 마음이 마구 솟아납니다. 

 우리 집에는 아직 전집이 있습니다. 포인트를 다 못 사용했거든요.(대박 이 돈으로 중고책 샀으면 얼마를 아꼈을까요. 아니면 차라리 내 가방을 하나 샀겠다요. ㅠㅠ) 그렇지만 이제 아이들에게 읽히려고 전집을 사지 않습니다. 전집을 사더라도 베란다에 묵히는 시간을 둬야겠어요. 읽어 치워야 하는 숙제가 아니라 언제든 꺼내볼 수 있는 호기심 상자가 되도록, 돈은 내가 냈지만 책이 책 되게 하는 것은 독서가의 의지이므로.


 확실히 아무리 자기가 고른 전집이라도 전집보다는 단행본이 하나씩 주어질 때 아이들은 그 녀석에게 관심을 가집니다. 만약 집에 있는 전집이 아깝고 읽히고 싶다면 가장 아이의 관심사와 가깝거나, 특정 내용이 재밌거나, 익숙한 내용이 나오든 등의 아이의 호기심이 발동할 만한 단 한 권!으로 시작하기 바랍니다.

 이 전집에서 한 권만 잘 읽어도 돈값을 한다고 생각하세요. 절대 다 읽히려 하지 마세요.


 특히 아이의 수준과 맞지 않는 전집은 아까워하지 말고 모두 비워내세요. 

 텅 빈 책장이 아이의 생각과 온전한 사고들로 가득 채워질 수 있도록.

작가의 이전글 글을 쓴다고 핑계를 댔는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