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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음 Aug 04. 2023

교통사고 합의금을 받고 우울해졌다

괜찮치 않음을 확인한 대가


교통사고 합의금을 받으니 뭔가 우울해졌다.

나의 괜찮치 않음을 확인한 대가인 것 같았다.


사고의 전말

교통사고가 난 것은 벌써 2주 전 화요일이었다. 폭우가 예보되어 있었지만 다행히 비는 보슬보슬 내렸다.

난 8여 년 간 출퇴근 했던 길을 가고 있었다. 항구가 가까워서 큰 대형 트럭, 컨테이너 트럭이 늘 많이 다니는 도로였다.

사고는 톨게이트를 나가면서 바로 일어났다. 내 우측 차선에 있던 대형 컨테이너 트럭이 내 앞으로 끼어들었다.

나는 속도를 줄였지만 멈추지는 않았는데, 트럭이 내 예상과 달리 내 차선이 아니고 내 좌측 그리고 한 차선 더 간 차선으로 대각선으로 이동했다.

트럭의 뒷부분은 내 예상보다 큰 반경으로 내 앞으로 들어왔고 내 차의 우측 앞부분이 트럭이 타이어에 부딪혔다.

트럭은 사고를 인지하지 못했는지 그냥 가려했고, 내가 경적을 울리며 쫓아가서 막아세웠다.

트럭 아저씨는 내가 차를 세우고 밖에 나가서 기다리는 데도 한참 운전자석에서 쳐다보시다가 나왔다.

그리곤 내게 다짜고짜 아줌마도 잘못한 거 있다면서 소리를 지르셨다.

뭐 큰 트럭이기 때문에 나는 상대방의 행동을 어느 정도 예상했고, 내 비리비리하고 보잘것없는 외모를 보시고 트럭아저씨가 더 세게 나오는 것 같아서 지지 않으려고 했다.

아저씨도 잘한 거 하나 없다면서 눈을 보고 학생들 가르치듯이 또박또박 말했다.

트럭 아저씨는 경찰 부른다며 나를 위협했고 나는 그러라고 했다.

경찰 아저씨는 도착해서 친절하게 뒷좌석에 타고 있던 아이들의 상태도 물어보시고 보험사를 통해 해결하고, 해결이 잘 안 되면 서로 오시라며 정리해 주고 가셨다.


만만하지 않은 대한민국 아줌마

나는 사실 1차적으로 아저씨의 행동에 겁먹지 않고 당당하게 나갔던 것에 뿌듯함을 느꼈었다.

트럭하고 부딪힌 걸 생각하면 미미한 사고였고, 아이들도 같이 타고 있었는데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보험사 통해서 잘 해결하면 별거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멘털은 유리멘털

하지만 상대방과 과실 비율을 합의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상대방 보험사인 화물공제도 트럭의 과실을 인정하는데, 아저씨가 무조건 자기의 과실을 줄여달라고 했다고 한다.

아이들은 크게 다치지 않았으나 둘째는 크게 놀랐는지 이틀 뒤 차에 탔을 때, 차가 막혀서 약간의 급정거를 하자 울고 심호흡을 하는 등 안정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나는 안 그래도 불안이 높은 둘째가 걱정되어 한의원에서 놀란데 먹는 약을 타 먹였다.

나도 보험사 직원들이 오히려 내게 상대 아저씨가 우긴다며 말해오니 스트레스 때문에 더 그랬는지, 평소 안 좋던 목이 뻣뻣해져 와서 물리치료를 받았다.

이때부터 스트레스가 본격 오는 것 같았다.

상대가 말이 통하건 안 통하건 해결해야 할 것은 보험사 직원의 몫인데, 왜 내게 경찰서 신고를 해달라고 하는지 스트레스가 왔지만 트럭아저씨의 운전 상태를 보아 그냥 넘어가면 큰 사고가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경찰서에 신고 접수를 다시 하기로 했다.


불안 증상

그렇게 경찰서에 가서 할 말을 정리하고 진단서를 준비했다. 토요일 오후에 경찰서에 가기로 했는데, 토요일 오전 밖에 다른 이들과 같이 있다가 불안 증상이 찾아왔다.

나는 이 증상을 어떻게 명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데, 한창 우울증이 심할 때와 불안이 심할 때 몇 번 찾아왔던 증상이다.


점점 숨쉬기가 부담되어 심호흡을 계속 크게 해야 했고, 손도 떨리고 마음이 불안하여 몸을 어찌할 줄 몰랐다.

그리고 제어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불안감에 울음이 터진다.


이게 공황이라면 나는 다행히 해소법을 알고 있다. 우선 믿을 만한 이의 신체를 빌린다(?). 손을 잡아 달라고 하거나 가능하면 꼭 안아달라고 한다.

그럼 훨씬 진정이 되고 가벼운 경우에는 심호흡을 천천히 하며 쓸데없는 스몰토크를 하며 주위를 환기시키면 된다. 그리고 확실한 방법은 남편의 품에서 울든지 쉬든지 하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밖에 있다가 말고 울며 집에 갔고, 남편에게 스트레스를 토하며 진정해 냈다.


실제 경찰서에 가서 신고하는 절차는 어렵지 않았다. 남편이 동행해 줬고 필요한 서류를 미리 준비해 갔고 큰 사안도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이 일로 알아버렸다.

나는 작은 스트레스에도 아직 불안해하는구나.

나는 불안 증상이 찾아온 뒤에 며칠씩 힘들구나.

아. 나는 아직 괜찮지 않구나.


‘그래, 금방 우울증이 낫는 것도 아니고 쉽게 좋아질 거면 일까지 그만두지 않았겠지.’ 생각은 되었지만, 약간은 김이 빠지기도 했다.

나는 꽤나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다니고 하고 싶었던 것들도 하고, 잘 지내고 있었기에 충분히 좋아졌다고 생각했었나 보다.


아직 보험처리가 완전히 끝난 건 아닌데, 대인 접수 부분에서는 합의금을 받고 끝내자고 상대 보험사에서 전화가 왔었다.

나는 더 이상 질질 끄는 것도 싫어서 상대방이 제시하는 대로 알겠다고 했다.


그런데 오늘 합의금이 들어왔다고 알람이 울리니, 문득 우울해진 것이다.

내가 아직 괜찮지 않음을 확인한 대가의 돈인 것 같았다.

내가 일을 쉬고 통장이 빈곤해지는 중이라 생활비라도 보태라고 사고가 났나 싶기도 했는데,

상처에 붙일 밴드를 얻는 대가로 아직 덜 아문 상처의 딱지를 억지로 떼어내 피를 흘리는 느낌이었다.


그 합의금은 내 마음을 흔들어놓은 가격이라도 되는 것 같다.

나는 그 돈 덕에

생활비 걱정 안 하는 며칠을 얻었지만

다시 일할 수 있다는 마음을 몇 달치 놓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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