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약간 남편과 분리불안이 있나 보다.
남편이 출근하면 (보통 3일에서 4일 정도 안 들어옴) 침대에서 일어날 의지조차 없다.
오늘은 침대에서 혼자 나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오은영 박사님이 우리 부부 앞에 앉아있다.
박사님은 나보고 분리불안이라며 남편이 없어도 독립적일 수 있도록 노력을 하란다.
나는 거기에 대고 불응하며 대꾸한다.
‘이제껏 혼자 독립적으로 살려고 애썼는데요?
이제야 정신적 기반이 생겼는데 좀 의지하면 안 되나요?
제가 남편 못 나가게 막는 것도 아니잖아요?
없다고 제 할 일 못 하진 않잖아요? 그냥 좀 미뤄서 그렇지.
남편 없다고 좀 우울해할 수 있잖아요?
저도 남 의지하면서 살 수 있잖아요?’
쓸데없는 상상이다.
그리고 또 생각은 이어진다.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일까.
그다지 쓸모없는 인생 같다고 여겨진다.
어제까지는 '잘 못 하는 나'를 받아들이겠다고 신나 놓고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이렇게 쳐져 있는 게 웃기다.
스스로 가치가 있다거나, 잘하고 있다거나 잘 해내고 있다고 생각을 바꾸기는 좀 힘들다.
그런데 그냥 그렇게 쓸모없는 대로 있어도 괜찮다는 것.
괜찮지 않은 나라도 괜찮다는 것.
그냥 존재한다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것.
그런 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다. 100점짜리 시험지와 0점짜리 시험지는 성취 결과의 차이는 있으나 그렇다고 0점짜리 시험지가 없어야 한다는 건 아니다. 그 시험지를 받아 든 학생의 삶은 0점과 무관하게 소중하다.
그래서 인생 좀 점수 못 받아도 잘못한 건 아니야.
그렇게 내게 좋은 가치 있다는 전제는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그런 거 없어도 살아도 된다는 전제는 그나마 받아들일 수 있다.
스티커에 쓰인 문구를 명언으로 삼아 본다. '뭐, 어때서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