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오클랜드에 있는 uc버클리 대학교에 다녀왔습니다. 친구가 버클리에 세미나를 진행하러 오면서 친구도 데려다줄겸, 버클리 로스쿨에 다니고 있는 또다른 친구도 만날겸 놀러갔어요. 처음 받은 인상은 서울대같다는 점. 우후죽순 필요에 따라 제각기 다른 건물을 올려 통일감은 적고 캠퍼스는 엄청 큰 서울대. 버클리도 딱 그랬습니다. 인근의 또다른 명문대인 스탠퍼드는 참 건물들이 다 예쁘고 관광지같았는데(안암느낌?) 딱 비교가 되더군요. 하지만 버클리쪽이 도리어 더 역동적으로 느껴져 좋았습니다.
버클리엔 특이한 문화(?)가 있습니다. 바로 ‘버클리 타임’. 모든 수업이 공식적으로 정해진 시간보다 10분 늦게 시작하는 제도입니다. 예를들어 시간표 상 수업시간이 오전 10시~오전 10시 50분이면, 실제 수업은 오전 10시 10분에 시작한다고 해요, 교수와 학생 등 모든 버클리 구성원 사이에서 통용되는 것이고, 수업에 10분 늦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한 마디로 “공식적으로 늦으라”는 것입니다.
버클리는 종합대학이다보니 캠퍼스가 넓고 건물 사이 거리가 멀어서 생겨난 관행이라고 합니다. 비공식적으로 여러 다른 미국 대학에도 ㅇㅇ타임이라는 것이 있지만, 이 처럼 ‘지각 제도화’를 한 것은 특이한 사례라고 해요.
지각은 통상 사회적으로 비난받을만한 잘못입니다. 업무상 급한일, 천재지변 등으로 인한 지각을 정상참작해주기도 하지만 그것이 당연한 것은 아니며, 아마 “그런 것도 계산해서 일찍 나왔어야지”라고 핀잔을 들을 각오를 해야합니다. 사유가 어떻든 늦으면 커피 정도는 내가 살 각오를 해야하고, 사과하지 않으면 욕먹습니다. 한국의 대학가에서도 ‘관악타임’ ‘신촌타임’같은 말이 자주 사용되지만, 이는 허용이 아닌, “늦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조롱과 자조의 단어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버클리 타임’은 이런 상식을 뒤집습니다. 늦을 수 있고, 늦더라도 누구도 미안해 하지 않아도 된다는 쿨함. 심지어 ‘지각 사유’에 대한 잣대도 없습니다. 전 수업 장소가 멀어서든, 늦잠을 자서든 상관없습니다. 각기 다른 상황에 대해 이건 되고, 저건 안된다고 평가하지 않습니다. 갓 입학한 새내기 학생도, 심지어 교수님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시간과 상황을 통제할 수 있고 그래야한다는 오만함 대신 “그럴 수도 있지”하는 인정과 이해의 태도입니다.
시간을 잘 지키고, 자기 통제를 잘 하고, 철저하게 살며 실패하지 않는 것은 당연히 미덕으로 여겨집니다. 유행을 넘어 하나의 생활 양태로 자리잡은 ‘갓생’도 이런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그렇게만 살 수는 없어요. 의지로 못할 것이 없고, 모든 것은 나의 작위에 대한 작용 또는 반작용이라는 마음으로 살다보면, 제 손에 잡히지 않고 인과관계가 불분명한 일들에 심히 취약해집니다. 가령 변하는 사람의 마음, 시간의 흐름, 원인모르게 생겨난 병같은 것들. 그리고 그런 일들에 나를 탓하고, 종종거리기도 합니다. 당연하게도 그런 일들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버클리의 묻고따지지도않는 ‘10분의 여유’가 부럽습니다. 어쩔 수 없는 조금의 어긋남을 이해하는 그런 관용이 우리 사회에도 좀 늘어났으면. 그리고 생각합니다. 스스로나 사회의 기대와 다르게 흘러갈 수 있고, 그래도 괜찮으며, 통제 밖의 상황을 절대 나를 다그치는 재료로 사용하지 말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