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곳 베이에서 특별한(?) ‘인친’이 몇명 생겼습니다. 바로 우버기사들입니다. 술자리는 우버를 타고 이동하는 편인데, 종종 우버기사들과 이야기를 하게 되고, 인스타 친구까지 됩니다. 스토리를 올리면 메시지를 보내오기도 하는데, 낯선 사람의 메시지에 잠시 버퍼링이 걸렸다가 이내 그의 스토리가 줄줄이 떠오릅니다. 콜럼비아에서 왔고, 축구를 좋아하지 않으며, 하루에 300달러를 벌며, 사실 그러면 안되지만 싼 차를 렌트해서 우버기사를 하고 있다, 같은.
미국에 와서 가장 당황스러운(?) 것은 팁 문화도, 분리수거 없는 쓰레기처리 방법도, 카페마다 이름을 꼭 물어보는 직원도 아닙니다. 바로 스몰토크. 언제 어디서든 내가 누구고, 어떤 일을 하고, 언제 무슨 이유로 여기에 정착했는지 말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는 점. 그리고 누구라도 어떤 사람인지, 뭐하러 여기 있는지 듣고 적절한 리액션을 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는 점.
엘리베이터에 같이 탄 같은 층 이웃의 골든리트리버의 이름은 마일로입니다. 5층부터 1층까지 내려가다가 마일로는 공 놀이를 가장 좋아한다는 점, 이 아파트가 개 키우기엔 별로인 이유를 구체적으로 알게 됐고, 한국에 있는 나의 강아지 쿠키와 그녀의 출생의 비밀까지 모두 나눴습니다.
5명의 여성 무리의 옆 자리에서 와인을 먹다가 시작된 이야기 끝에 저는 그 모임이 엄마와 이모 그들의 딸들 등 2대에 걸친 자매들의 서부 여행이고, 얼마 전 사별한 한 사람을 위로하기 위해 자매와 딸들이 시간을 냈다는 사실을 알게됐습니다. 아 물론 사별한 남편이 사업가, 사위는 애리조나에 있으며 자신의 딸은 교사라는 것을 알게됐고지금은 마음이 괜찮아졌다는 점까지.
미국의 스몰토크에 대해선 많은 해석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이 문화가 낯선 우리는 “도대체 미국은 왜이렇게 스몰토크를 좋아하느냐”는 다소 두려움 섞인 의문을 제기하며 진지한 토론을 시작하기도 합니다. 독일에 사는 한국인 친구가 최근 뉴욕에 놀러왔는데, 미국 공항에서부터 ‘스몰토크 지옥’에 빠졌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한참을 낯선사람이 말 걸었을때 한국과 독일 그리고 미국의 반응 차이에 대해서 떠들었지요.
미국인들이 친절해서 그렇다거나, 영어가 모국어기 때문에 스몰토크는 그들의 자신감의 표현이라거나, 자기 얘기를 하는것을 꺼리지 않는 발표문화 때문이라는 등 스몰토크에 대한 스몰토크는 아주 다양하게, 길게 가능합니다.
스몰토크를 잘 하려면 여러 특성이 필요합니다. 내 물음 끝에 어떤 상대의 대답이 나오더라도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 예상치 못한 대답도 각오하는 마음, 타인을 알고 싶고, 배우고 싶다는 호기심과 너가 어떤 사람이든 (적어도 겉으로는) 편견없이 또다른 질문을 이어갈 수 있다는 여유. 저는 이 모든 것을 <순발력>이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일종의 사회적 반사신경입니다.
사대주의자는 아니지만(?) 지난 4개월 간 보고 느낀 미국은 그런 나라입니다. 땅덩이도, 경제 규모도, 인구도, 기업들 시총도 큰 미국은 직관적으론 느리고 둔해야 맞습니다. 그러나 면면히 보면 순발력을 잘 발휘하는 구석들이 꽤 많아요. 특히 중요할 때 잘 발휘하는 것 같습니다.
실리콘밸리의 변화가 빠른 테크업계를 엿보다 보니 이런 순발력을 더 잘 느낍니다. 예시로 메타 이야기를 해볼까합니다. 미국의 큰 빅테크 ’메타‘는 원래 소셜미디어 기업입니다. 2020년대초에 ’메타버스‘가 미래가 될 것이라며 사명도 ’메타’로 바꾸고, 메타버스 사업에 올인했습니다. 그러다 2023년 챗GPT가 나오고 AI붐이 일어나자 메타는 금새 자신들의 정체성을 ‘AI회사’로 바꿨습니다. 혹자는 “메타버스 사업의 실패인정“ ”뼈아픈 전략의 수정”이라 비판하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시가총액이 2조가까이 되는 큰 회사가 변화에 맞춰 그런 순발력을 발휘해 순식간의 자신들의 모습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큰 컨테이너선이 마치 모터보트처럼 빠르게 방향을 바꾸고, 속도를 내고, 순식간에 유턴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선후관계는 모르겠지만, 스몰토크 문화와 미국이 여러모로 큰 나라라는 점엔 분명 연관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거대한 사회를 유연하게 움직이는 힘은 어쩌면 매일하는 이런 사소한 대화 속에서 길러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도 어렵지만! 우버기사의 물음에 대답해보고, 때로는 먼저 질문하려고 노력합니다. 스몰토크를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니까, 최근 친구가 꿀팁을 하나 줬습니다. 그 비결을 공유하면서 글을 마칩니다.
정답은 바로 칭찬하기. 미국에 와서 ”by the way I love your outfit!”과 같은 칭찬을 진짜 많이 들었는데, 저도 받은대로 돌려 실천하는 것입니다. 네 셔츠 진짜 예쁘다, 네 내일 정말 마음에 든다 같은! 사람들을 보면서 칭찬할만한 것을 순발력있게 찾아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