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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장래희망은, 귀여운 할머니(미국 버킷리스트)

by 고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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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늦었지만 남은 1년 8개월간 미국에서 무엇을 하고, 이루면 좋을지 버킷리스트를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1. 일 2. 여행과 경험들 3. 사람 4. 자기개발 5. 투자 이렇게 다섯 카테고리로 나눠봤어요. 손흥민 경기보기, 요세미티 가기와 같이 이미 이뤄낸 단건의 목표도 있고,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창업자 100명 만나기, 2년간 블로그를 꾸준히 쓰기와 같이 임기 끝까지 꾸준함을 발휘해야 비로소 글자 위에 시원한 한 줄을 그을 수 있는 항목들도 있습니다. 100개정도 써보자고 생각만하고 미루고 미루다 일주일전쯤 시작했는데, 사실 아직도 끝을 못냈습니다.


버킷리스트가 쉽지 않은 이유가 있습니다. 원래 미래 계획을 잘 하지 않습니다. 계획을 세우더라도 일간, 주간, 월간에 꼭 해야하는 일들을 잊지 않게 적어두는 정도에 그치며, 꼭 무언가 계획해야 한다면 o나 x로 나눌 수 있는 것들을 선호합니다. ‘몸짱되기’보단 ‘다음달까지 3키로빼기’를, ‘일본어공부하기’

보단 ‘이달 안에 일본어 동화책 3권 읽기’가 제 스타일입니다. 계획이 틀어질때 오는 셀프실망감이 속상하고, 기대없이 마주한 것에서 오는 기쁨이 크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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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먼 꿈도 잘은 안키우는 편이에요. 이동진 평론가의 좌우명과 비슷하게 그저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면 반드시 기회는 온다고 생각합니다.(대신 주어진 기회들 앞에선 상처받을 각오를 하고서라도 ‘예스맨’이 돼야함) 하지만 꿈이 필요한 순간도 있더라구요. 어떤 계획을 하고 의사결정을 할 때. 고작 2년짜리 버킷리스트를 쓸 때에도 내가 나중에 뭐가되고싶은지 기준이 있으면 보다 빨리 쉽게 쓰겠죠.


그래서 꺼내보는 나의 레어한 꿈! 제 장래희망은 귀여운 할머니입니다. 몇 년 전에 ’장래희망은 귀여운 할머니’라는 에세이책을 읽고, 좋아서 친구와도 돌려 읽은 뒤, 작가의 꿈을 ‘손민수‘ 했습니다.


IMG_5352.jpg 긍정적이고 밝고 일상을 소중히 여기고 취향이있는 똑단발의 귀여운 할머니 아네뜨

소박한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귀여운 할머니가 되는건 꽤 어려운 일입니다. 먼저 ’할머니‘가 되는 일부터 쉽지않아요. 아무리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언제든 알 수 없는 병이나 사고가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런 두려움을 20대에 경험할 일이 있었고, 최근 드라마 ‘은중과 상연’을 보면서도 건강하게 나이드는 기적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또 ‘나이많은 여성’이란 광의가 아닌, 말그대로의 할머니가 되기 위해선 결혼해 자식도 낳아야합니다. 그 자식도 자식을 낳아야 합니다. 나의 결혼...과 출산...육아...그리고 자식의 결혼과 출산 육아. 이 모든 일엔 정말 많은 행운이 필요할 것입니다.

겨우겨우 얻어낸 할머니 타이틀에 ‘귀여운’이란 수식이 붙기 위해선 더 피나는 노력이 수반됩니다. “남자가 귀여우면 끝이다”라는 여자들의 흔한 잡담처럼, 귀여우려면 확실히 멋지고, 예쁘고, 대단한 것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한것 같아요. 여러 이미지를 아우를 수 있는 것은 지금 생각으론 ‘반전’! 소식좌처럼 생겨서 3인분을 먹는다거나, 찌든 직장인의 함박웃음, 미녀의 덧니, 마냥 천진해보이던 사람의 똑부러진 모먼트들. 그저 멋지고 좋은 것 이상의 색이 있는 사람들이 저는 귀엽습니다.

주름과 검버섯을 얻어도 사진찍기와 화장하기를 좋아하고 싶습니다. 지식과 지혜가 이미 많지만 호기심을 잃지 않고 싶어요. 원칙과 품위를 지키는 꼬장꼬장함과 자주 깔깔 웃는 밝음을 동시에 갖고싶습니다. 안귀엽던 사람이 귀여워지긴 어려워질테니, 지금부터 차곡차곡 귀엽고싶습니다. 쓰다보니 그냥 욕심쟁이같기도.



IMG_5276.jpg 사실 내가 아는 가장 귀여운 것은 쿠키다. 귀여우려면 개가 돼야 할까? 사진 속 쿠키는 광견병 주사를 맞고와서 화가 났다.

버킷리스트의 39번쯤 써내려가며, 어떤 항목이 나를 더 귀엽게 만드나 생각합니다. 앞으로 미국에서의 2년과 할머니의 시기까진 시차가 크기에, 물론 많습니다만, 그런 생각이 꽤 도움이 되는것 같아요.

늘, 늘 귀여울 방법을 고민하며 좋은 선택을 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꼭 버킷리스트를 완성하기로 계획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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