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카페에서 음료를 주문하면 꼭 이름을 물어봅니다. 처음 몇 번은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직원들이 제 이름을 제대로 못알아들어서. 이름은 다은(Daeun)이고, 영어이름은 ‘다나’라고 발음하는 Dana를 씁니다. 이름이 ‘다은’이라고 히면 직원들은 못알아 듣고 되묻는 일이 부지기수입니다. 스펠링을 불러줘도 마찬가지입니다. D대신 T를 쓴 음료를 받아들기 일쑤였습니다. 역시 한글이름이라 어려운 것일까 하고 ‘다나’를 불러줘도 마찬가지입니다. Tana로 쓰거나, 음료를 내어주는 직원이 ‘데이나‘라고 저를 부르기도 합니다.
나의 한국인 악센트가 문제인 것일까 생각했습니다. 또 Dana는 보통 ‘데이나’라고 발음하는데, 내가 너무 특이하고 생소한 발음의 영어 이름의 쓰나, 자기 검열도 해봤습니다. 카페에서의 작은 일이지만, 낯선 곳에서 문제가 생기면 보통은 남보단 내 탓이라고 생각하니까.
몇 번 그런 상황을 마주한 뒤 ‘다’ 발음이 영어권에선 생소하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Da-가 이어지는 단어가 있더라도 그 뒤엔 Dai- 또는 Day가 돼 ’데이-’가 됩니다. ‘다’라는 발음을 제대로 해야하는 일상적인 영어 단어는 아직도 못찾았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카페에 가서 그냥 큰 목소리로 스펠링을 불러줍니다. “다나, D는 Dog에 쓰이는 D이고, a, n, a”야 라고. 내 이름 또는 발음이 문제가 아니라, 그냥 저들에게도 생소한것이니까요.
그들에게 제 이름이 생소하듯, 저도 이곳 사람들의 이름이 생소합니다. 서로가 서로의 이름이 생소해요. 그래서 이름을 질문 한 뒤 발음법을 다시 묻는 일,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고, 스펠링까지 읊어주는 일은 아주아주 흔합니다. 빨간머리 앤의 앤이 “제 이름은 앤이에고 뒤에 E가 더 붙은 ANNE”라고 하는 것처럼. 한국에서도 흔히들 ‘해’인 것인지 ‘혜‘인지, ’연‘인지 ’현‘인지 되묻는 것과 비슷한데, 훨씬 더 그렇게 상호 확인해야할 일이 많은 것이지요.
관련해 지난 8월 미 뉴욕 IBM으로 출장을 갔을 때 일을 덧붙입니다. IBM이 미 US오픈을 후원하면서 US오픈 앱 안에 IBM의 AI 챗봇 기능이 들어갔습니다. IBM 측에서 “경기를 보면서 선수에 대해 궁금한 것을 바로 물어볼 수 있다”며 아주 중요하게 “선수 이름 발음법도 알려준다”고 부연했습니다. 당시 이름 발음법따위를 알려주는게 내세울 기능이야?라고 다소 삐딱하게 바라봤습니다만, 이후 아주 필요하고 당연한 기능이라고 생각을 고쳐먹었습니다.
스펠링을 알면 달라질까요? 명함을 받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 전 화상미팅앱으로 알려진 ‘줌‘ 회사에 다녀왔어요. 사무실 투어를 하고, 제품 설명도 듣고, 프로덕트 엔지니어링 담당 사장 인터뷰를 했습니다. 명함에 표시된 그의 이름은 “Velchamy Sankarlingam”. 당연히 못 읽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인솔해준 줌 본사 커뮤니케이션 팀 직원에게 물어봤는데, 그녀의 답변이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벨챠미 ㅅ…. 기사에 쓰지 마세요”.
발음법을 묻는게 제 짧은 영어 실력을 드러내거나, 무례한 일일까봐 아는 척 하고 넘어간 적도 많습니다. 뒤에 가서 한국어로 기사를 써야 할 때 챗gpt한테 슬쩍 물어보기를 반복했죠. 여러 경험들을 한 뒤 “어떻게 발음해요?”라고 묻는 것이 존중이고 자신감의 표현이라는 것을 압니다.
수많은 어려운 이름은 미국의 다양성을 방증합니다. 특히 제가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는 다양성의 상징같은 주라서 “캘리포니아는 캘리포니아지 미국이 아니다”라는 말까지 있지요. 그 중에서도 실리콘밸리는 더합니다. 재팬타운에 가면 일본같고, 코리아타운에 가면 한국같고, 테크 기업에 가면 중국 또는 인도같고, 축구장에 가면 멕시코같은 곳입니다.
이름만 다르겠어요. 각자가 가진 이야기가 수만가지입니다. 스몰토크를 이어나가기 어려운가요? “어떻게 여기에 오게됐는지”만 물어봐도 수십분을 보낼 수 있습니다. 어제 은행에서는 베트남계 교포2세를 만났습니다. 미국인이지만 조선사를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공대에서 MBA로 로스쿨로 피벗한 변호사의 이야기, 대학생때 우연히 남극에가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가 지구과학을 연구하게된 박사생 등. 이번주에만 수많은 삶을 겪었습니다.
글로벌 스케일로 다양한 다른 사람의 인생을 엿보며 간접 경험하는 것은 럭키한 일입니다. 대체로 에너지 있고 성공한 사람들이 모인 이곳 실리콘밸리는 그런 경험을 하기에 특히 더 좋은 곳이지요. 얼마나 좋냐면 때론 너무 많은 가능성과 길들에 혼란스럽고, 방금 들은 이야기들을 술 먹은 내가 까먹을까 걱정될 정도로.
이 지역의 다양성을 십분 활용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멍청해보일까, 창피한 일일까 자기 검열하지 않고 일단은 많이 물어야겠지요? 이름 발음이야, 챗GPT가 알려주겠지만, 지혜와 인사이트는 묻지 않으면 아무도 안 떠먹여줄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