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줌(Zoom)에서 깜짝놀랄만한 발표를 내놨습니다. 바로 줌의 인공지능(AI) 시스템이 고차원 추론 중심의 '인류의 마지막 테스트'라고 알려진 AI 벤치마크 테스트에서 48.1% 점수를 기록했습니다. 이게 얼마나 놀라운 결과냐면요. 역대 가장 똑똑한 AI로 알려져 화제가 됐던 구글의 '제미나이 3 프로'가 기록한 45.85%보다 높은 성적입니다. 단 하나의 지표이긴하지만,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셈이지요.
대중은 물론이고 테크업계에서도 줌을 AI기업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은 많이 없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때 재택근무로 급성장한 화상회의 앱으로만 유명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사실 이번 성과도 다른 빅테크 소식에 비해 많은 주목을 받지는 못했습니다만, 저를 포함한 이를 알게 된 사람들은 모두 헐! 을 외친 것입니다. "이제 줌도 AI기업으로 껴주자"는 반응이 나옵니다.
줌은 AI제품을 기업에 판매하는 기업이 맞습니다. AI를 개발하는 기업이냐 물으면 '세모'입니다. 줌은 오픈AI나 구글처럼 거대언어모델(LLM)을 만들지 않습니다. 다만 소형언어모델(SLM)만을 자체 개발합니다. 이는 LLM보다 비용과 시간이 훨씬 덜 들어가고, 딱 필요한 곳에 특화된 모델입니다. GPT, 제미나이와 같은 아주 똑똑한 AI들과 경쟁하지 않습니다. 대신 AI시스템이 있습니다. 줌의 SLM과 함께 GPT(오픈AI), 제미나이(구글), 클로드(앤트로픽)같은 빅테크의 아주 똑똑한 모델을 한 데 모아놓은 시스템입니다. 줌을 사용하는 이용자들은 이 AI시스템 안에서 똑똑한 타 빅테크의 AI를 쓸 수 있습니다.
기업 내에서 자체적으로 뭘 하기보다는 똑똑하고 전문적인 타 업체에 '아웃소싱'하는 셈입니다. 기업에서 광고대행사에 광고 외주를 맡기는 것과 비슷합니다. 기업에서는 모든 일을 인하우스에서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컨설팅업체에 전략을, 세무법인에 세금 업무를, 홍보대행사에 마케팅과 홍보를 외주줍니다. 가끔 여러 회사에 같은 일을 맡기고, 경쟁을 붙여 제일 잘하는 대행사와 계약을 맺기도 하지요. 그게 줌이 취하는 전략입니다. 이렇게 되면 잘하는 것에 집중할 수도 있고, 자체 AI 개발에 돈과 시간을 쏟지 않아도 됩니다. 솔직히 줌이 AI를 만든다고 해봤자, 구글 오픈AI와 게임이 안됩니다. 이를 인정하고 아집을 버린 것입니다.
이런 줌의 전략을 업계에서는 '멀티 모델' 전략이라고 합니다. 그 안에서도 줌은 ‘연합(federated) AI’라고 표현합니다. 줌 시스템 안에 여러 똑똑한 AI 모델이 있고, 사용자의 요청에 따라 이 작업에 가장 적합한 모델을 0.1초 만에 판단해 답을 줍니다. 사용자는 자신의 답변이 어떤 모델의 답변인지 알 수 없습니다. 여러 나라의 군사들이 '연합'하듯 AI가 연합해 답을 내놓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회의 요약해줘”라고 줌 AI 시스템에 요청했다고 해보자. 쉬운 인사말 요약은 똑똑한 사람이 출겨할 필요가 없겠죠. 빠르고 싼 줌 자체 모델을 나서 답을 합니다. 회의 내용 중 복잡한 논리 추론 내용은 똑똑한 GPT나 클로드를 써서 답을 줍니다.
조금씩 세부 전략이 다르지만 멀티 모델 전략은 요즘 업계 표준이 되는듯합니다. 한참 AI 개발 경쟁이 붙어 너도나도 자체 AI를 개발했지만, 이제 어느정도 승자의 윤곽이 보입니다. 오픈AI와 구글, 클로드와 퍼플렉시티 정도가 잘 하고 있지요. 메타나 xAI 정도의 대기업만 포기하지 않고 반전을 노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경쟁에서 뒤쳐진 기업들은 PLAN B를 가동하는 것입니다. 내 AI가 매력적이지 지않다면, 잘하는 다른 기업의 걸 잘 모아놓은 '종합선물세트'를 만들어보자.
마이크로소프트(MS)도 기업용 AI 플랫폼에 멀티 모델 전략을 쓰고 있습니다. 다만 줌과 달리 사용자가 직접 자신이 쓸 모델을 골라 쓴다. ‘앱 스토어’처럼 AI를 모아놓은 것입니다. 예를 들어 기업에서는 코딩을 할 때는 ‘클로드’를, 고객 상담 봇에는 ‘GPT-4o’를 직접 골라서 쓸 수 있습니다.
양자컴퓨터 개발로 잘 알려진 IBM도 AI 플랫폼인 ‘왓슨엑스’에 자체 SLM과 프랑스의 미스트랄 AI 등 타사 모델을 함께 씁니다. 복잡한 사용자 지시를 이행하기 위해 순서대로 업무에 맞는 AI를 호출하는 ‘지휘(Orchestrated) AI’ 전략. 지휘자가 여러 악기 서로 다른 악기들을 제각기 적절한 타이밍에 연주하게 해 하나의 교향곡을 완성하듯 여러 AI 모델을 적재적소에 쓴다는 뜻입니다.
그럼 한국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AI 3강'을 하겠다며, '국가대표 AI'를 만들겠다며 AI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는 한국입니다. 자체 AI 모델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은 좋지만, 한국걸로 이미 개발이 한창 된 미국과 중국 프랑스 등 여러 나라의 AI를 이길 수는 없어보입니다. 우리는 오픈AI가 아니라 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모든걸 국산화하려는 것보다 '우리가 잘하는 것'에 집중하면 됩니다. 그리고 남이 잘하는 것은 빌려다 쓰면 됩니다. 예를 들어 한국어나 한국 법률, 문화에 특화된 AI는 국산화하되 코딩 등은 클로드나 오픈AI의 모델을 쓸 수 있는 것이지요. 비용을 줄이고,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AI 경쟁에서 살아남을 방법을 찾는 것도 AI 3강으로 가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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