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angkwon Lee Mar 20. 2022

회의록과 '일잘러'의 상관관계

회의록을 잘 쓰는 사람은 왜 일을 잘할까? 


사람들은 회의록이라는 것을 쓰기 싫어하는 것 같다. 


물론 나도 회의록 쓰는 것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격렬한 미팅을 방금 끝냈는데 다시 그 미팅 내용을 기록해야 한다니 생각만 해도 귀찮고 힘 빠지는 시간이다. 그 결과 회의록을 잘 쓰지 않게 되고, 이는 어느새 조직 안에 습관이 되어 회의는 많은데 기록물은 없는 상황이 만성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사람들이 회의록을 쓰기 싫어하는 이유는 대체로 2가지이다.


첫 번째 이유는,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유형의 사람들에게 회의록을 써야 한다고 말하면, "회의록? 그게 왜 필요해? 나는 회의록 없어도 다 회의 내용이 다 기억나"라고 대답한다. 회의록을 작성하는 것이 시간낭비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두 번째는 이유는, 회의에 참가한 상대방도 이미 회의 내용을 잘 이해하고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회의에 참가한 사람들 모두 열심히 참여했기 때문에 굳이 다시 내용을 정리할 필요가 없고 각자 맡은 부분을 성실하게 추진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마도 조직생활을 해보신 분들이라면 잘 알 것이다. 단 한 번의 회의만으로 깔끔히 일이 마무리되고 추진되는 일은 별로 없다는 것을 말이다. 미팅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논의하는 안건이 복잡할수록 더더욱 그렇다. 내가 이해한 회의의 내용과 상대방의 내용이 달라 일이 추진되기도 전에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고, 문제가 발생될 경우 서로 책임을 전가하는 일도 허다하다. 


물론 이 모든 것이 단순히 회의록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라도 결론짓기는 어렵다. 애초에 회의 자체가 엉터리로 진행되었을 수도 있고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이 다른 급한 업무가 갑작스럽게 터졌을 수도, 추진하는 사람의 역량이 생각보다 낮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회의록은 이러한 문제까지 모두 해결하는 만능열쇠는 아니다. 


그러나 회의록은 위와 같은 문제가 발생할 위험을 현격하게 낮추고 일이 원만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 조직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잘 알 것이다. 문제가 발생할 위험을 낮추고 일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얼마나 큰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사람을 일반적으로 '일잘러'라고 부른다. 



결국 회의록은 평범한 사람을 일잘러로 만드는 강력한 무기인 셈이다. 


회의록에는 어떠한 마법이 있기에 평범한 직장인을 일잘러로 만들어 줄 수 있는 걸까? 


나는 회의록의 핵심기능으로 크게 3가지를 이야기하고 싶다. 


1. 회의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의 공동의 문제 인식과 대응계획을 갖도록 한다.

일을 잘하는 사람들은 문제를 '개인'에서 '팀' 또는 '조직'의 차원으로 확장해서 생각할 줄 안다. 일이라는 것이 나 혼자 똑똑하고 성실하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제를 해결하려면 결국 내가 문제를 잘 이해하고 있는 만큼 팀(또는 고객)도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는 회의가 끝난 후, 사람들이 바라보는 문제와 대응계획이 저마다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럴 가능성이 생각보다 높다) 사람들마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포인트가 다를 수 있고 각자 처한 상황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회의록은 특정한 문제와 연관된 모든 사람들이 공동의 문제의식과 대응계획을 형성할 수 있도록 정리된 문서이다. 


2. 일이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추진시킨다) 

회의는 무언가를 함께 논의하고 결정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자리는 회의가 아니라 단순한 '모임'에 불과하다. 그러나 어렵게 논의되고 결정된 사항들이 미팅이 끝난 후, 흐지부지 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너무나 아쉬운 일이다. 회의를 하느라 낭비한 시간과 에너지가 아까울 정도이다. 회의록에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당사자간에 협의한 내용과 의사결졍된 사항들이 정리가 되어 있다. 예를 들어 A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B라는 사람이 C라는 과제를 D라는 일정까지 수행하여 E에게 전달해줘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렇게 담당자(B)와 추진과제(C), 기한(D) 그리고 검토자(E)까지 정한 내용을 회의록에 담아 회의 참석자 모두에게 공유함으로써 문제 해결을 위해 일이 추진될 수 있도록 한다. 


3. 일이 정확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다. 

일이 추진된다고 해서 반드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모두가 아는 불편한 진실이다. 특히 여러 사람이 하나의 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하는 팀 프로젝트의 상황에서 빈번하게 발생한다. 회의를 통해 협의된 문제 상황과 대응계획이 참석자에게 명확하게 전달되지 못한 상황이라면 발생 가능성은 더욱 높다. 나는 상대방이 A라는 결과를 만들어 오기를 기대했는데, 상대방은 전혀 엉뚱하게 C라는 결과를 만들어오는 상황이다. 이렇게 되면 거의 대부분 다툼으로 발전하기도 하는데, 회의록이 없는 상황에서 주로 발생하는 문제이다. 회의록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목적으로 의사 결정된 사항들과 관련자들의 역할과 책임을 규정한 문서로서 참석자들 간의 오해나 왜곡을 최소화한 상태로 일이 추진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렇다면 회의록을 잘 쓰기 위해서는 어떠한 역량과 기술이 필요할까? 


1. 미팅의 목적을 정확히 이해하기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은 미팅의 목적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다. 목적 없이 진행되는 회의는 없다. (만약 그렇다면 그 회의는 다시 한번 필요성 자체를 재검토해봐야 한다) 회의가 소집된 분명한 이유가 있고 회의를 통해서 논의되고 결정이 되어야 하는 사항이 필수적으로 존재한다. 보통 회의를 소집한 사람이 잘 알고 있다. 자신이 어떠한 회의에 참석하게 되었다면, 회의를 소집하게 된 사람에게 미리 회의를 소집한 배경과 목적을 물어보는 것이 좋다. 만약 그 사람이 너무 바빠서 회의 전에 그것을 알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회의 시작 초반에 직접 물어보고 정확히 이해하도록 한다. 회의의 목적을 이해하게 되면 자신이 회의를 소집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회의가 어떻게 흘려갈지 예측을 할 수가 있고 회의 내용 중에서 필요한 내용과 불필요한 내용을 가려낼 수 있게 된다. 


2. 핵심 파악 능력 (의사결정사항을 중심으로) 

회의의 내용이 복잡하고, 참석자가 다양할수록 핵심을 파악하기가 점차 어려워진다. 동일한 주제에 대해서 각각의 참석자가 자신의 관점으로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 논의되는 주제가 널뛰기하듯이 왔다 갔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의의 목적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사람을 속도감 있게 진행되는 회의 내용 속에서도 무엇이 핵심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은 회의록에 담아야 할 내용과 그렇지 않은 내용을 가려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회의 자체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고 갈 수도 있다. 


그렇다면 회의 목적에 맞는 내용이라면 모두 회의록에 담으면 되는 걸까? 결코 그렇지 않다. 회의에 나온 모든 내용을 적다 보면 회의록이 아니라 속기록이 되어 버린다. 시시콜콜한 모든 발언들이 다 기록되어 있는 지루한 속기록 말이다. 회의록에는 핵심적인 내용들만 간결하게 기록되어야 하는데, 핵심적인 내용이라 함은 회의의 목적에 맞는 것이면서 회의를 통해 의사 결정된 사항을 의미한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회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언가를 함께 논의하고 결정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회의를 통해 의사 결정된 사항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서 아래와 같이 기록되면 매우 좋다. 


고객에게 웹페이지 인도 전, 오류점검을 위해 A(담당자)가 QA를 00월 00일에 진행하여 완료하기로 함


3. 간결하게 글 쓰기

가끔 불과 30분간 진행된 짧은 회의가 2~3페이지가 넘는 분량과 마치 수필을 방불케 하는 장황한 내용으로 작성된 회의록으로 탈바꿈된 사례를 본다. 힘겨운 회의를 끝내고 왔더니, 이제는 엉터리 회의록을 이해하기 위해서 에너지를 써야 할 판이다. 결국 이런 회의록은 읽히지 않고 곧바로 폐기되거나 참석자가 회의 내용에 대해서 서로 다른 해석을 할 여지를 남겨준다. 회의록은 가급적 1장을 넘기지 않는 것이 좋다. 아무리 길어도 2장을 넘어가서는 안 된다. 회의록은 나를 위한 문서이기도 하지만 결국 회의에 참석한 모든 사람을 위한 문서이기 때문에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쉽고 명확하게 보여야 한다. 회의록에 정해진 포맷은 없지만 아래의 구성을 따라 간결한 문체(개조식)로 작성된다면 최소한 기본 이상은 할 수 있다


    회의록 

        - 날짜 : 2022년 00월 00일

        - 장소 : A 회의실

        - 참석자 : A 팀장, B 차장, C 매니저


    미팅 아젠다 (목적)

            1. 000

            2. 000

            3. 000


    미팅 주요 내용

            1. (1번 아젠다) 

                - 의사결정 사항 위주로 작성 (예: A 문제는 B/C 이슈를 고려하여 00/00까지 결정하기로 함)  

            2. (2번 아젠다) 

                - 의사결정 사항 위주로 작성

            3. (3번 아젠다) 

                - 의사결정 사항 위주로 작성 


        Action Items 

            1. 추진 과제명, 담당자, 기한 

            2. 추진 과제명, 담당자, 기한 


지금까지 사회생활을 하면서 회의록을 잘 쓰는 사람이 일을 못하는 경우는 한 번도 보지 못 했다. 소위 '일잘러'라고 평가받는 사람들이었고, 명확한 일처리와 공유로 조직의 중요한 업무에 배정되어 빠르게 성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작성된 회의록의 퀄리티를 살펴 보면 작성자가 장차 앞으로 얼마나 빨리 성장하고 어떠한 역할을 맡게 될 것인지 충분히 짐작이 가능했다. 그분들은 빠른 시일 안에 특정한 프로젝트에서나 조직에서나 리더십의 역할이 주어지는 편이었다. 회의록을 잘 쓰는 사람이 '일잘러'가 되고 빠르게 성장하여 리더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아래와 같다. 


중요한 사항을 기억하고 잘 잊어버리지 않는다.  

핵심을 빠르게 파악하고 간결하게 정리하여 공유할 수 있다.

복잡한 상황의 문제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정확히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다. 


만약 성장하고 싶고 '일잘러'로 인정받고 싶다면, 절대 회의록 작성을 남에게 미루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오히려 먼저 나서서 회의록을 작성하고 피드백을 받으면서 실력을 키워나가는 소중한 기회로 활용했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여행처럼 사는 인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