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 | 9
방콕 강변에는, 서로를 바라보는 두 개의 거대한 탑이 서 있다.
하나는 태국의 밤하늘을 금빛으로 물들이는 호텔, 다른 하나는 약 30년째 멈춰버린 콘크리트의 유령.
두 건물 모두 같은 도시에서 태어나 같은 시대를 살았고, 같은 건축가의 꿈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한 건물은 세계적인 루프탑 명소가 되었고, 다른 하나는 방콕의 가장 유명한 ‘미완성의 상징’이 되었다. 도시는 이렇게 말 없는 건물들로 자신의 운명을 기록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중심에는, 태국 현대 건축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한 남자가 서 있다.
그의 이름은 랑싼 톳수완(Rangsan Torsuwan).
1990년대의 방콕은 지금과 전혀 다른 도시였다.
쑤쿰윗은 막 개발되기 시작했고, 사톤·실롬은 외국 대기업들의 본사가 몰려오면서
‘동남아의 뉴욕’이 되겠다는 거대한 야망으로 가득했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랑싼 톳수완이다.
유럽과 미국의 건축 이론을 받아들인 그는, 태국에서는 이례적이던 포스트모던 양식과 그리스 신전 기둥, 대형 곡선 발코니를 대담하게 도입했다.
그가 설계한 건물들은 당시 태국 부유층 사이에서 “유럽 스타일의 고급 건축”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모든 감각과 야망을 담아 두 개의 건물을 설계한다.
하나는 스테이트 타워(State Tower), 다른 하나는 사톤 유니크 타워(Sathorn Unique Tower).
두 건물은 한 남자의 인생 전체를 바꿔놓는 ‘쌍둥이 같은 프로젝트’였다.
스테이트 타워는 계획 당시부터 태국에서 전례 없는 규모였다.
상업시설, 레지던스, 호텔이 모두 결합된 초대형 복합 개발(Mixed-use) 모델은 지금은 흔하지만 당시에는 매우 혁신적이었다. 곡선 발코니가 수백 개 이어지고, 거대한 도릭 기둥이 건물 전면을 장식했다.
그리고 가장 상징적인, 황금 돔(Golden Dome). 오늘날 ‘르브아 호텔(lebua)’이 자리한 이 돔은 애초에 “태국의 부흥을 상징하는 룩소리(Luxury) 아이콘”으로 설계되었다.
그러나 이 꿈의 건물도 완성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건축주의 논란, 소유주 변경, 투자 철수 등 여러 난관이 있었지만 2000년대 초, Challenge Group이 건물을 인수하고 르브아(lebua)가 상층부를 운영하면서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시로코(Sirocco), 스카이바(Sky Bar), Mezzaluna 이 레스토랑들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야외 다이닝’이라는 명성을 얻으며 전 세계 여행자들의 버킷리스트로 떠올랐다.
그리고 2011년 영화 행오버 2가 르브아의 황금 돔을 전 세계 스크린에 보여주면서 이 건물은 단숨에 방콕의 아이콘이 된다. 스테이트 타워는 외형만 보면 완전히 성공한 건물처럼 보인다.
하지만 진실은 훨씬 복잡하다.
하층부에는 지금도 비어 있는 상가와 폐점된 공간들이 남아 있고, 초기 미분양·부실채권 문제는 오래도록 이 건물의 발목을 잡았다. 지금의 화려한 모습 뒤에는 1990년대 개발 붐이 남긴 경제적 상흔이 아직도 희미하게 남아 있는 것이다. 즉, 성공한 스테이트 타워조차 “온전히 승리한 건물”은 아니다.
그러나 바로 옆 건물의 운명은 훨씬 더 비극적이었다.
스테이트 타워보다 더 고급스럽고, 더 예술적인 고급 레지던스가 될 예정이었던 곳.
바로 사톤 유니크 타워다.
공정률은 80~90%까지 진행되었다. 실제로 내부 계단, 엘리베이터 홀, 객실 구조는 대부분 완성되어 있다.
그러나 1997년,태국을 뒤흔든 아시아 금융위기(IMF)가 모든 것을 바꿨다.
투자금은 끊기고, 개발사는 파산하며 공사는 그대로 중단된다.
그리고 건물은 방콕 도심 한복판에서 그 상태로 약 30년 가까이 멈춰 서 있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곳을 ‘고스트 타워(Ghost Tower)’라 부르기 시작했다.
한때는 유명 사진작가들과 도전적인 여행자들이 이 건물에 몰래 들어가 촬영을 하기도 했다.
어둡고, 텅 비고, 바람만 부는 47층의 공간은 방콕의 어두운 시대를 그대로 봉인해놓은 듯했다.
도시는 발전했지만, 이 타워는 과거의 상처를 그대로 간직한 채 남아 있었다.
1993년, 태국을 뒤흔드는 하나의 사건이 터진다.
랑싼 톳수완은 당시 태국 대법원장 암살 모의 교사 혐의로 체포된다.
이 사건은 국가적 충격이었다. 사건은 길게 이어졌고, 15년 넘게 재판이 반복되었다.
*2008년: 유죄 → 25년형
*2010년: 항소에서 최종 무죄
법적으로는 무죄였지만, 그가 가진 기업, 프로젝트, 신뢰, 자금줄은 이미 모두 사라진 뒤였다.
그의 이름은 논란의 중심이 되었고, 그가 설계한 두 건물의 운명은 그의 인생과 함께 갈라져버렸다.
스테이트 타워는 다른 재벌 그룹의 손에 들어가 완성되었고, 사톤 유니크 타워는 그대로 멈춰버린 것이다.
하나는 방콕의 ‘부활’을 상징하며 매일밤 관광객들이 셀카를 찍는 장소가 되었고, 다른 하나는 경제위기와 인간의 욕망, 비극의 상징으로 도시의 어둠 속에 조용히 서 있다. 도시는 이렇게 말 없는 건물들로 자신의 역사를 기록한다. 그리고 그 역사 속에는, 완성된 꿈도 있었고, 미완성으로 남겨진 꿈도 있었다.
그러나 두 건물이 말해주는 것은 단 하나다.
도시의 운명은 건축물에 새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