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다른 태국] 첩보 전쟁

방콕 | 10

by 강라마

차오프라야 강변에 서 있는 만다린 오리엔탈은 흔히 “세계 최고의 호텔” 같은 수식어로 소개되지만, 냉전기의 방콕을 따라가다 보면 이 건물이 전혀 다른 얼굴로 다가온다. 총탄과 포성이 아니라, 속삭임과 메모가 오가던 비공식 회의장. 전쟁터와 본부 사이에 놓인 거대한 중계기 같은 공간이었다.

1950–70년대, 인도차이나 반도는 프랑스 식민 지배의 해체와 베트남 전쟁, 라오스·캄보디아 내전으로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 한가운데에서 태국은 미국과 긴밀히 협력하는 반공 동맹국이 되었고, 방콕은 자연스럽게 “이 지역에서 가장 안전한 후방 기지”가 되었다. 미국은 태국 전역에 공군기지·통신망·정보망을 깔았고, 베트남·라오스·캄보디아를 출입하는 외교관과 정보요원, 기자들은 방콕을 베이스캠프로 삼았다. 전선의 소식이 가장 먼저 도착해 정리되는 곳, 그리고 다시 세계로 흘러나가는 곳.

냉전기 방콕은 그런 도시였다.

태국 라마 9세 국왕과 미국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대통령(좌) | 태국 내 미군 스테이션 개장 기념(우)

방락, 오래전부터 “비밀에 익숙한 동네”

오리엔탈이 자리한 방락(Bang Rak) 구역은 지금은 카페와 갤러리, 헤리티지 호텔로 유명하지만, 20세기 초만 해도 좀 더 거칠고 복합적인 동네였다. 왕실 소유 부지와 외국 상사의 창고, 극장과 유흥가가 뒤섞인 공간

영화관을 개조한 프린스 시어터, 한때 카지노와 클럽이 들어섰던 골목들, 그리고 강변의 호텔과 영사관들까지. 이 지역은 원래부터 “낮과 밤의 표정이 다른 동네”였다. 낮에는 항구와 상업의 거리였지만, 밤이 되면 음악과 도박, 사교와 거래가 오가는 사적 무대가 펼쳐졌다. 이런 배경 때문에, 냉전 시기 외교관·기자·정보 관계자들이 이 일대로 자연스럽게 모여든 것도 어쩌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과거 왕실 카지노가 있던 공간 | 2025.11 | Thailand_Bangkok | Copyright © llama.foto

왜 하필 방콕인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미국과 소련은 인도차이나를 새로운 전략 요충지로 보기 시작했다. 프랑스가 물러난 뒤의 권력 공백 속에서, 각 나라의 내전과 혁명은 곧 냉전의 대리전이 되었다

태국은 직접적인 전장(戰場)은 아니었지만, 미국 입장에선 “우호적이고 비교적 안정적인 정부를 가진, 전선 바로 옆 나라”였다.

1950년대 이후 미국은 태국과 여러 방위 협정을 맺고 공군기지·통신 시설·훈련기지를 설치했고, 방콕에는 대사관과 군사고문단, 각종 원조·문화 기관이 집중되었다. 베트남·라오스·캄보디아에서 일어난 일의 보고서는 우선 방콕으로 모였고, 여기서 정리된 정보가 워싱턴·도쿄·런던으로 전달되었다.

USIS와 랏차담리, 이미지를 전하는 전초기지

이 시기 미국이 각국에 설치했던 조직이 USIS(United States Information Service, 미국공보원)다. 겉으로는 도서관·문화센터·영화 상영·영어 교육 등 “문화 교류”를 담당하는 기관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미국의 정책과 세계관을 알리고 여론을 우호적으로 만들기 위한 정보·홍보 조직이었다.

방콕에서도 USIS는 1950년대 중반부터 활발히 활동했고, 중심 거점 중 하나가 바로 랏차담(Ratchadamri) 일대였다. 당시 이 일대는 지금처럼 쇼핑몰과 콘도가 아니라, 대사관·스포츠 클럽·공원·공공기관이 집중된 “엘리트 지구”에 가까웠다.


USIS는 이 구역에서 미국 관련 서적과 잡지를 비치한 도서관, 강연회, 영화 상영, 영어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며 태국의 관료·학생·도시 중산층과 밀접하게 교류했다. 1990년대 후반, 전 세계 USIS 조직이 해체되면서 기능은 미국 대사관 공보과(현재의 Public Affairs Section)로 흡수되었고, 랏차담리의 시설도 문을 닫게 된다.

오늘날 같은 라인에 자리한 AUA 랭귀지 센터(AUA Language Center, 1952 설립)는 미국과 태국이 함께 만든 대표적인 이중국적(바이내셔널) 문화·어학 센터로, 설립 초기부터 USIS와 긴밀히 협력하며 영어 교육과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건물 자체가 USIS의 옛 청사를 그대로 쓴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냉전기 “미국식 정보·문화 네트워크”의 중요한 한 축이 이 랏차담리–AUA 라인에 있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BTS 랏차담리역 | 2025.11 | Thailand_Bangkok | Copyright © llama.foto

오리엔탈, 기자와 외교관이 모이던 살롱

뱀부 바(Bamboo Bar)와 로비, 강을 바라보는 테라스가 있는 오리엔탈 호텔은 냉전기의 방콕에서 단지 “비싼 호텔”이 아니었다.

냉전기 동남아를 취재하던 외신 기자들은 하노이나 사이공이 아니라 방콕을 거점으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 전선의 도시들은 위험했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출입이 막히거나 감시가 심해졌기 때문이다.

반면 방콕에는 각국 대사관과 군사고문단, 원조 기관, NGO, 유엔 기구, 그리고 이 지역의 정보를 취급하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모여 있었다.

이 기자들에게 오리엔탈은 몇 가지 이유로 이상적인 공간이었다.

이유는 대사관·정부 관계자와 만나기 좋을 만큼 격이 있고 동시에 비공식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만큼 “사적”이며 무엇보다 정보의 흐름이 강가를 따라 자연스럽게 모이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밤이 되면 바 한쪽 테이블에는 영어 신문사 특파원, 다른 쪽에는 대사관의 정보 담당관, 창가 쪽에는 국제기구 직원이 앉아 있었다. 공식 브리핑 자리에서는 절대로 나오지 않을 이야기들이, 재떨이와 노트 사이를 조용히 오갔다고 한다.


Bangkok Post’와 강변의 편집회의

1946년, 전 OSS(미 전략사무국) 출신 기자 알렉산더 맥도널드(Alexander MacDonald)는 방콕에 영자 일간지 「Bangkok Post」를 창간한다.

그는 태평양 전쟁 당시 군 정보·선전 분야에서 일한 경험을 가진 사람이었고, 전쟁이 끝난 뒤에도 “이 지역의 변화는 기록할 가치가 있다”고 말하며 방콕에 눌러앉았다.

초창기 방콕 포스트의 공식 편집실은 라차담넌 거리 인근의 작은 건물이었지만, 동료 기자들의 회고를 읽다 보면 “진짜 편집회의는 언제나 호텔의 바와 카페에서 시작됐다”는 이야기가 반복해서 등장한다. 강변의 테이블 위에서 외교관과 군사고문, NGO 관계자들이 들려준 이야기들이 밤새 정리되어 타자기 속으로 들어갔고, 다음 날 국제통신을 통해 세계로 퍼져나갔다.

라오스에서 발생한 쿠데타, 프놈펜의 정세 변화, 남베트남 군사작전의 실상 같은 것들이 가장 먼저 “방콕발 기사”로 전 세계에 알려졌다는 점에서, 방콕은 문자 그대로 “동남아 냉전의 비공식 편집실”이었다.

방콕 포스트 창간, 알렉스 맥도날드외 관계자들
옛 방콕 포스트이 있던 건물과 사무실
현 방콕 포스트 사옥 | 2025.11 | Thailand_Bangkok | Copyright © llama.foto

짐 톰슨과 제르멘 크룰, 전쟁 이후의 재건자들

오리엔탈이 이런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건, 전쟁 직후 이 호텔을 다시 살려낸 두 사람 덕분이기도 하다.

한 사람은 미국 OSS 출신으로 태국 실크의 가능성을 발굴한 짐 톰슨(Jim Thompson), 다른 한 사람은 프랑스 출신 아방가르드 사진가이자 레지스탕스 경력의 제르멘 크룰(Germaine Krull)이다.

일제 점령과 전쟁을 거치며 호텔은 거의 폐허가 되었지만, 1947년 두 사람은 투자자들과 함께 오리엔탈 경영에 참여하며 “40개 방짜리 작은 호텔”을 다시 열었다. 크룰은 유럽 호텔 문화를 바탕으로 바와 레스토랑, 서비스 디테일을 정비했고, 톰슨은 실크 커튼과 패브릭, 태국의 공예 감각을 불어넣었다. 그 결과 오리엔탈은 단지 묵는 곳이 아니라 “머물며 이야기하고, 듣고, 기록하는 공간”이 된다.

냉전의 초입에서, 이 강변 호텔은 국제정치와 예술, 사업과 첩보가 뒤섞이는 살롱으로 변모했다.


그 안에서 오가는 정보를 어느 정도까지 “첩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어도 이곳이 냉전기 동남아의 중요한 정보 교차점 중 하나였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총성이 아니라 타자기의 소리로 시대를 기록했던 도시, 포성이 아니라 재즈와 칵테일 사이로 정보가 오갔던 호텔.

그곳이 오리엔탈 호텔이다.

제르멘 크룰의 사진 작품
제르멘 크룰의 사진 작품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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