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 | 16
시암(Siam)의 화려한 쇼핑몰 숲을 지나 횡단보도 하나를 건너면, 거짓말처럼 소음이 사라지는 구역이 나타난다.
방콕의 심장부에 있지만, 방콕 같지 않은 곳.
태국 최고의 엘리트들이 숨 쉬는 곳, 줄라롱콘 대학교다
줄라롱콘 대학교는 요즘엔 관광객의 발길도 잦은 공간이다.
하지만 캠퍼스 안으로 들어가도, “여기가 태국 최초의 대학이다”라는 표지판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대신 보이는 건 오래된 건물 사이를 천천히 걷는 학생들, 유난히 단정한 교복, 그리고 생각보다 조용한 공기다.
이곳은 뭔가를 외치는 공간이라기보다 이미 정해진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는 장소에 가깝다.
줄라롱콘 대학교는 1917년, 라마 6세에 의해 설립됐다.
태국 근대사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국립 대학’이다.
이 시점이 중요하다.
이 대학은 혁명 이후가 아니라, 왕권이 아직 국가의 중심이던 시기에 만들어졌다.
목적도 분명했다. 지식인을 키우기 위함이 아니라, 국가를 운영할 사람을 길러내기 위해서.
초기의 학생들은 장차 관료, 판사, 외교관, 의사가 될 사람들이었다.
줄라롱콘은 처음부터 ‘국가 내부용 대학’이었다.
그래서 이곳에는 거리의 소음보다 사무실의 공기가 더 잘 어울린다.
캠퍼스를 걷다 보면 건물 배치부터가 묘하게 정돈돼 있다.
과하게 크지도, 불필요하게 튀지도 않는다.
왕의 이름을 딴 대학답게 모든 것이 ‘적당한 위계’를 갖고 있다.
중앙에는 기념비와 박물관이 있고, 그 주변으로 학부 건물들이 질서 있게 배치돼 있다.
과시보다는 지속성을 염두에 둔 구조다.
이곳이 100년 넘게 유지된 이유는 눈에 띄어서가 아니라, 늘 같은 방식으로 굴러갔기 때문이다.
줄라롱콘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이 하나 있다.
바로 대학생 교복이다.
오늘날 태국 대학생들이 입는 흰 셔츠와 검은 하의, 단정한 규범은
이곳에서 시작됐다.
지식인은 자유로운 존재라기보다 국가를 대표하는 얼굴이어야 한다는 인식.
줄라롱콘의 학생들은 그 기대를 몸으로 먼저 배웠다.
그래서 이 대학의 교복은 개성을 표현하기 위한 옷이 아니라, 제도의 일부에 가깝다.
캠퍼스 안 박물관을 둘러보면 줄라롱콘이 어떤 대학인지 더 분명해진다.
전시는 학생 운동이나 저항의 역사가 아니라, 학과의 발전, 왕실과의 관계, 국가 제도 속에서의 역할에 집중돼 있다.
이곳은 ‘무엇을 바꾸었는가’보다 ‘어떻게 유지했는가’를 기록하는 공간이다.
그래서 오히려 솔직하다.
자신이 무엇을 해왔는지, 그리고 무엇을 하지 않았는지를 알고 있다.
사람들은 종종 줄라롱콘과 탐마삿을 나란히 놓는다.
하지만 두 대학은 같은 방향을 바라본 적이 거의 없다.
탐마삿이 헌법과 시민을 이야기할 때, 줄라롱콘은 행정과 제도를 정리했다.
하나는 흔들었고, 다른 하나는 받쳐왔다.
태국 근대사는 이 두 역할이 동시에 존재했기에 무너지지 않았다.
오늘날 줄라롱콘은 여전히 태국 최고 대학 중 하나다.
의대, 법대, 공대, 행정 분야에서 가장 많은 엘리트를 배출한다.
해외 정상급 인사들이 방문하는 이유도 이 대학이 ‘태국의 현재 권력 구조’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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