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다른 태국> 조각의 시작

방콕 | 17

by 강라마

태국 예술은 오래되었다.
왕궁 벽화도, 사원의 조각도, 불상의 선도 이미 완성된 미학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토록 깊은 전통을 가진 나라에 ‘예술 대학’은 언제 생긴 걸까.

그 질문을 품고 찾은 곳이 실파꼰 대학교(Silpakorn University)였다.

실파꼰 대학 | 2026.02 | Thailand_Bangkok | Copyright © llama.foto

실파콘의 출발점은 캠퍼스가 아니라 왕 타 프라(Wang Tha Phra) 궁전이었다.

이 부지는 원래 라마4세의 아들인 나리사라 왕자가 거주하던 공간이었다.
왕실의 공간이, 훗날 ‘예술을 가르치는 학교’가 된다.

1933년, 이곳에 작은 미술학교가 세워진다.
이름은 쁘라닛 실파 학교(Praneet Silpa School).

태국 최초의 근대 미술 교육기관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이탈리아 출신 조각가 한 사람이 있었다.

실파꼰 대학 | 2026.02 | Thailand_Bangkok | Copyright © llama.foto

그의 본명은 코라도 페로치(Corrado Feroci).

태국 이름은 실파 비라시(Silpa Bhirasri).

그는 라마 6세 시기 초청되어 태국에 들어온 조각가였다.

당시 태국은 근대 국가로 변모 중이었고, 서구식 기념비 조형과 공공 미술이 필요했다.

그가 설계하고 제작한 작품들은 지금도 방콕 도심 곳곳에 남아 있다.


<실파 비라시 대표 조형물>

-민주기념탑 중앙 부조 조형
-전승기념탑에 있는 동상
-라마 1세 동상
-라마 6세 동상(룸피니 공원)
-탁신 대왕 기마상

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가 추축국이 되면서 그는 위험에 처한다.

그는 태국 국적을 취득하고 이름을 바꾼다.
코라도 페로치는 사라지고 실파 비라시가 남는다.

이 선택은 단순한 귀화가 아니라 그가 태국 예술사에 남겠다는 선언이었다.


1943년, 쁘라닛 실파 학교는 공식적으로 실파꼰 대학교로 승격된다.

태국 최초의 예술 중심 대학.

이때부터 예술은 왕실 장인의 기술이 아니라 국가가 제도화한 학문이 된다.

여기서 중요한 건 ‘기술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예술을 이론과 철학으로 교육했다’는 점이다.

실파콘은 조각·회화뿐 아니라 건축·고고학·미술사 연구까지 확장된다.

태국 전통을 ‘보존’이 아니라 ‘연구 대상’으로 다루기 시작한 것이다.

실파꼰 대학 | 2026.02 | Thailand_Bangkok | Copyright © llama.foto
실파꼰 대학 | 2026.02 | Thailand_Bangkok | Copyright © llama.foto

실파콘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전통을 부수는 것이 아니라 전통을 분석하게 만든 것이다.

태국 예술은 그전까지 왕실·사원 중심의 기술 전승 체계였다.

실파꼰 이후, 그것은 논문이 되고 연구가 되고 비평이 된다.

예술은 ‘보여주는 것’에서 ‘해석하는 것’으로 이동한다.


실파꼰 대학교는 전통을 지킨 학교가 아니라 전통을 질문하게 만든 학교였다.

그래서 이곳은 태국이 자신의 문화를 스스로 해석하기 시작한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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