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최애 작가에게 서명을 받았습니다

by 강마레

이제와 되짚어보면, 어린 시절 나는 활자가 품은 의미를 알아차릴 때의 즐거움을 어렴풋이 알았던 것 같다. 책장을 넘기는 시간은 늘 특별했고,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조금씩 성장했으니까. 그래서일까. 저자의 서명은 단순한 사인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한 권의 책과 맺은 인연, 그리고 그 책을 통해 성장해 온 여정을 기록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난 평소 책에 밑줄 긋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 까다로운 독서가지만(간혹, 제도용 자와 샤프펜슬을 이용하곤 한다.) 몇몇 저자들 앞에서만큼은 그 원칙이 무너졌다. 그들 앞에서는 기꺼이 펜을 꺼내 들고 서명을 청했다.


그 서명들은 책장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나에게는 단순한 추억을 넘어 생각의 방향을 틀게 한 순간들이었다. 책과 저자를 향해 나아가는 그 여정은, 나에게 늘 깊은 의미였다. 지금도 여전히 기꺼이 서명받고 싶은 저자를 기다리고 있다. 물론 내가 그들에게 다가가야 하기에, 그 만남은 더욱 소중하고 쉽지 않은 기다림이기도 하다.


내 서재에는 장르를 크게 구분하지 않고 쌓여있는 책들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정치학 옆에 소설이, 과학책 옆에 예술 에세이가 자리하고 있다. 한 달에 적어도 5-6권은 읽는 습관 덕분에, 여행 가방에는 항상 책 두 권이상이 자리하고 있다. 주말부부라 서울을 오가는 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전자책이 편하지 않냐고 묻지만, 종이책의 질감과 무게, 그리고 책장을 넘기는 소리마저 독서의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그런 내게 저자의 서명이 담긴 책은 특별한 존재감을 지닌다.


물론 전자책도 읽는다. 핸드폰으로 이용하면 구매가 편리하고 곧바로 읽기 시작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전자책용 리더기도 유용하다. 도서관을 이용하면 비용을 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서명을 받을 수 있는 건 오직 종이책뿐이니, 전자책으로 읽고도 소장하고 싶은 책은 꼭 종이책으로 구입하는 편이다.


이 브런치 '그들의 서명, 사유의 여정'을 기획하고 시작하게 된 것은 2025년 4월 이터널저니의 심야책방에서 김영민 교수를 만난 덕분이다.


함께 온 후배에게 "빌 클린턴과 문재인 전 대통령, 최장집 교수에 이어 김영민 교수까지 서명한 책을 갖게 되었다"라고 말했을 때 그녀는 "정치계 F4를 완성했네"라고 농담을 던졌다. 그때 문득 내 인생에 흩어져 있던 특별한 서명들의 의미를 기록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업무나 지인들과의 만남을 통해 적지 않은 유명인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고, 그중에는 유명 저자도 꽤 있었다. 하지만 내게 의미 있는 저자가 아니라면, 서명받지 않았다.


이를테면 2002년경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처음 한국을 찾았을 때 소수의 사람들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는 인기작가였고, 또 흥미로운 소설을 많이 쓰고 있었지만 그의 문학이 내겐 그렇게까지 인상적이지 않았다. 그 외에도 서명을 받지 않은 국내 저자들을 이 글이나 연재글에 거론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해 더 이상 언급하지 않을 생각이지만.


그렇다. 내게 저자의 서명은 꽤 신중한 선택이었다. 당시 내 삶에 진정한 영향을 준 저자들에게만 그 자격을 부여했다고나 할까. 적어도 내게 말이다.


한 번은 서점에서 우연히 마주친 유명 작가에게 말을 걸지 못하고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다. 평소 그의 책을 좋아했지만, 그의 책을 좋아했던 마음과는 별개로, 내면을 뒤흔든 문장 하나가 즉시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말없이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친구들은 "왜 사인이라도 받지 않았냐"라고 물었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아쉽지 않았다. 내 기준이 까다롭다는 것을 그때 다시 한번 깨달았다.


흥미로운 것은 서명을 받는 순간마다의 에피소드다. 한 번은 국회에서 열린 서명숙 작가의 '영초언니' 출판기념회가 열렸을 때다. 그곳에서 서명숙 작가의 지인이기도 한 조선희 작가를 만났다.


당시 나는 서명숙의 '영초언니'는 이미 다 읽은 상태였지만, 조선희의 '소셜 세 여자'는 막 읽기 시작한 참이었다. 행사의 주인공인 서명숙 작가의 사인을 받기 위한 줄은 너무나 길기도 했고, 다음 기회도 모색할 수 있었던 데다, 당시 나는 이제 막 읽기 시작한 '소셜 세 여자'에 더 흥분해 있었다.


망설임 끝에 다른 저자의 출판기념회에 온 조선희 작가에게 다가가 책을 내밀었다. "아직 다 읽지 못했지만, 인물이나 시대적 배경, 지금까지 읽은 부분이 너무 인상적이에요." 나의 솔직한 고백에 그녀는 오히려 반가워했다.


"독자가 책을 읽어가는 과정이 저에겐 더 흥미로워요. 다 읽고 나면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언젠가 알려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날의 주인공인 서명숙 작가의 사인은 받지 못했지만, 오히려 그 우연한 만남이 내게는 더 특별한 기억으로 남았다.


그렇다면, 왜 서명인가? 그것은 내 지적 여정의 지도를 그리는 일이기 때문은 아닐까? 리영희 선생의 시대적 고민이 20대의 나에게 사회적 책임을 생각하게 했고, 소설가 조선희의 시선은 30대의 나에게 역사 속 다른 여성들의 삶을 들여다보게 했다. 김영민의 철학은 40대의 나에게 끊임없는 질문을 던졌다. 그들의 서명은 내 책장에 남은 흔적이자, 내 생각을 형성한 이정표였다.


내가 빌 클린턴 앞에서 "당신이 케네디를 만났던 그때처럼, 나도 당신을 기억할게요."라고 말했을 때, 환한 미소로 답했던 "고마워요"를 기억한다. 물론 영어로.


벽돌책 수준의 그의 자서전에 대한 긴 감상을 외우듯 준비해 갔지만, 정작 상황은 한 마디밖에 할 수 없었다. 또 그의 답은 너무나 흔해빠진 세상 간단한 인사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순간은 역사의 순간이 개인의 기억으로 이어지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그것은 부산의 어느 봄날, 아직 대통령이 되기 전 '운명'을 고민하던 시민 문재인에게 책을 내밀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 서명 수집의 여정은 계속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유명 식당 벽에 걸린 연예인 사인처럼 가벼운 것이 아니기에, 오직 내면에 진정한 울림을 주는 저자들을 찾아가는 여정이 이 이야기의 본질이니까.


사유의 깊이를 일깨우는 김영민, 세 여성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본 조선희, 시대의 양심으로 살아간 리영희, 역사의 변곡점에 선 문재인, 제주의 길을 걸으며 삶의 철학을 찾은 서명숙, 그리고 한 마디 인사에도 따스함을 담아낸 빌 클린턴, 시대를 기록하는 소설을 써온 조정래 작가에 이르기까지. 이들과의 만남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내 생각을 확장시켰다.


그렇다고 이들 저자의 책만이 더 훌륭하다거나 절대적이라는 의미는 전혀 아니다. 내게 영향을 미친 한 권의 책, 한 명의 저자, 그리고 한 줄의 서명. 그 안에는 사상의 변화와 성장의 순간들이 담겨있기에 소중할 따름이다.


책과 사람, 그리고 사상은 한 줄의 서명을 통해 조용히 우리 삶에 스며든다. 이 글은 그 흔적들을 따라 걸어본, 나만의 작은 사유의 여정이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