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 2~3년 차 기자들이 중심이 된 책모임에서 “김영민 교수 진짜 유쾌하다”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그 후 몇 년이 지나 내가 김영민 교수의 글을 접하게 된 것은 2018년 9월 경향신문의 '사유와 성찰' 칼럼란에 게재된 "추석이란 무엇인가"였고 직접 만난 건 지난 4월이다.
명절을 앞두고 찾아오는 스트레스를 지적인 사유로 환기시킨다는 후기 속에 그의 글은 SNS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공유되고 있었다. 어떤 이는 그를 "학계의 아이돌"이라 불렀고, 누군가는 "철학계의 BTS"라는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그날 이후, 나는 김영민 교수의 새 칼럼이 나올 때마다 챙겨 읽곤 했다. 정치, 역사, 철학, 문학을 넘나드는 그의 글은 항상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특히 독자에게 생각할 공간을 남겨준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김영민 교수의 글을 읽고 나면 나도 모르게 그 주제에 대해 조금은 더 깊이 생각하게 되곤 했다.
신문방송학을 전공했지만, 철학도로 불리며 철학을 부전공한 나에게 그의 성찰적인 문장들은 브런치에서 우아하게 마실 수 있는 에스프레소 한 잔 같았다. 처음엔 인상을 찌푸리게 되지만 마시고 나면 이상하게 또 한 잔이 생각나는 그런 맛. 짧지만 강렬하고, 쓰지만 깊은 여운을 남기는.
"죽음을 생각하면 삶이 가벼워진다."
'추석이란 무엇인가'라는 인기 칼럼이 포함된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이 책은 내 월요병 치료제가 되었다.
월요일 아침마다 자기 최면을 걸었다. "이번 주 회의도 죽음보단 낫다... 죽음보단... 낫다..." 실제로 40대에 접어들고 보니, 죽음이 그리 멀리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죽음을 생각함으로써 죽음을 삶으로부터 몰아낼 수 있다."
이 문장 역시, 어지간한 심리상담보다 강력한 철학 처방전이었다. 불안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역설의 미학, 그것이 김영민 철학의 첫 번째 매력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삶의 유한함에 대해, 그리고 그 유한함이 삶에 부여하는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고전 텍스트를 읽음을 통해서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은, 텍스트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시대가 무너져도 '읽을 줄 아는 사람'은 살아남는다는 그의 메시지. 논어를 현대인의 관점에서 재해석한 이 뛰어난 에세이집에서 그는 공자의 가르침을 통해 혼란스러운 현대 사회의 희망을 찾게 된다.
10년 간의 수료 상태를 딛고 석사 논문을 워밍업 하고 있을 때 그의 "공부란 무엇인가"를 읽고 키득거렸던 기억이 난다. 지난겨울 석사 논문을 겨우 쓰고 지금은 국내 학술지에 제출했던 논문을 다시 수정해나가고 있는 지금도, 그때의 그 글들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공부는 괴로운 것이다. 괴롭지 않다면, 그것은 오락이다."
누가 내 생활을 훔쳐본 줄 알았다. 이 문장은 대출금처럼 자꾸 떠오르는데, 유튜브 쇼츠를 보는 순간에도 죄책감이 드는 마법의 문장이다.
"공부는 정신의 척추 기립근을 세우는 일이다."
이 문장을 떠올릴 때면 자세가 고쳐진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등을 세우게 되었을 것이다. 육체와 정신의 자세가 얼마나 연결되어 있는지 상기시키는 문장.
"호기심에서 출발한 지식 탐구를 통해 어제의 나보다 나아진 나를 체험할 것을 기대한다."
사실 매일 나아지는 건 아니다. 어제보다 덜 한심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내 성장곡선은 기본적으로 '지그재그'지만, 장기적으로는 상승 곡선이라 믿는다.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이며, 그 문제를 다루는 데 정치가 있습니다."
덕분에 나는 요즘 뉴스 볼 때마다 느끼는 인간이 왜 이렇게 어려운 존재인지 이해하곤 했다. 결국 다 인간이 문제라는 걸 철학자가 확인해 줬다.
"삶이 그토록 고단한 것이니, 사람에 대한 예의는 타인의 삶이 쉬울 거라고 함부로 예단하지 않는 데 있다."
이 문장은 사람을 조용히 만든다. 침묵이 최고의 공감일 때가 있다. SNS에서 타인의 삶에 '부럽다'나 섣부른 위로의 댓글을 안 달게 된 계기. 그들도 때때로 낙심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연대감.
"인생은 허무하다."
이렇게 대놓고 말해주는 사람이 드물기에, 허무 앞에서 오히려 안심이 된다. 나만 허무한 게 아니었어!
"허무는 인간 영혼의 피 냄새 같은 것이어서, 영혼이 있는 한 아무리 씻어도 지워지지 않는다."
마음속 피비린내에 향수를 뿌리는 헛된 짓을 멈췄다. 허무함을 인정하고 함께 살기로 했다. 내 영혼의 룸메이트, 허무씨.
"인간이 영혼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듯이, 인간은 인생의 허무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
허무와 공존하는 기술, 요즘 유행하는 '공존의 미학'은 이걸 말해야 하지 않나 싶다.
2024년 ‘가벼운 고백’에서는 그의 또 다른 매력인 '드립력'이 유감없이 발휘된다. 짧은 단문 형식으로 일상의 소소한 관찰과 생각들을 위트 있게 풀어낸 이 책은 무거운 학문적 주제를 다루는 그의 다른 저서들과는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외로울 때가 제정신이다."
이 말을 듣고 안심했다. 그러면 나는 매주 몇 번씩 제정신이었네! 오히려 계속 즐거운 사람이 더 이상한 게 아닐까?
"고백은 가볍게, 그러나 진심으로."
"삶의 무게를 덜어내는 것은 가벼운 고백에서 시작된다."
자기 전 잠깐 꺼낸 말 한 줄이, 어쩌면 나를 구할지도 모른다. 나와 폐친 이기도 한 김영민 교수는 이 책 출간 당시 해외에 머물고 있었는데, 신간을 구매해 페북에 올린 그날 내 페북 게시글에 직접 등판해 ‘좋아요’를 누르고 가셨다.
가장 최근작인 ‘한국이란 무엇인가’는 지난해 계엄에서 출발해 철학적 국가정체성이 무엇인가라는 고민을 선물했다.
"한국은 정의할 수 없는 나라다. 그래서 더욱 정의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의 안 되니까 도망치고 싶고, 또 정의하고 싶다. 한국은, 연애 같네. 헤어지자마자 보고 싶은 그 마음... 그게 한국인의 정체성인가?
"한국의 정체성을 다시 묻는 일은 공동체에서 필수적이다."
질문이 많아야 정체성이 건강하다. 그런데 요즘은 질문하면 피곤하단다. 그 피로감 속에서도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 그것이 김영민이 우리에게 남긴 숙제일지도 모른다.
김영민 교수가 출간해 온 책들을 차례로 읽으며 그의 생각을 쫓아가던 중, 운 좋게도 그를 직접 만날 기회를 얻었다. 부산에 있는 이터널저니의 심야책방에서 그를 초대한 것이다.
심야책방 행사장에서 그는 예상과 달리 소박하고 차분했다. 학계의 스타에게 걸맞은 화려함이나 거창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자신의 인기에 약간 당황하는 듯한 모습마저 보였다.
그리고 방송에 출연하거나, 정면의 얼굴을 노출하거나 독자들과 사진을 찍지 않는 것에 대한 작지만 확고한 생각도 인상적이었다. “누군가가 알아보는 삶은 행복할 리 없다는 것”
또 그곳에서 나는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내가 알게 모르게 그의 책을 모두 보유하고 있고, 전부 읽었다는 것이었다. 책장에 쌓여있던 다채로운 주제로 구성된 그의 책들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누군가 "선생님은 어떻게 이렇게 다양한 주제를 흥미롭게 풀어내시나요?"라고 물었을 때, 그는 "저도 그냥 궁금한 것을 찾아보는 것뿐입니다"라고 담담히 답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 '그냥'이라는 말 뒤에는 끊임없는 독서와 사유, 그리고 치열한 자기 성찰이 숨어있다는 것을.
행사가 끝나고 책에 서명을 부탁드렸다. 심야책방에 오면서 손에 챙겨 온 것이 신간 ‘한국이란 무엇인가’였다. 조금 마음의 여유가 있었자면 첫 책인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나 ‘공부란 무엇인가’, ‘가벼운 고백’에 서명을 받았을 것이다.
김영민의 책들은 매년 조금씩 다른 주제를 다루면서도, 인간의 근본적인 고민들을 관통한다. 죽음, 희망, 공부, 인간됨, 허무, 고백, 그리고 정체성. 하지만 결국에는 '인생이 허무하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살아보자'는 메시지로 수렴되는 듯하다.
"죽음도, 공부도, 고백도, 다 그냥 지나가는 일이다. 다만 조금 더 생각하고, 조금 더 웃으며 살아낼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겠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