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직접 서명을 받은, 현재까지 최고의 유명인은 빌 클린턴 미국 전 대통령이다. 힐러리 클린턴의 남편, 그 사람 맞다.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전하면 다수가 농담인 줄 안다. 언젠가 어느 모임에서 '5개의 문장 중 하나는 거짓말'이라는 자기소개 게임을 했다. 참가자들은 각자 자신을 다섯 가지 문장으로 소개하는데, 그중 하나만 거짓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서로의 진실을 추리하는 게임이었다.
그때 내가 꺼낸 문장들은
1. 나는 빌 클린턴을 만난 적이 있다.
2. 나는 곰이 나오는 트레일을 걸어본 적이 있다.
3. 나는 56시간 동안 잠을 자지 않은 적이 있다.
4. 나는 한식, 중식, 일식, 이태리 요리를 배웠다.
5. 동해와 서해를 가로지르는 자전거 일주를 한 적이 있다.
거의 모든 사람이 1번을 골랐다. "대통령을, 미국 대통령을 만났다고? 진짜?" 그 말은 늘 웃음 섞인 반응으로 시작되지만, 이내 조용한 경청으로 이어지곤 한다. 그건 내 인생에서 일어난 일 중 꽤 또렷한 장면 중 하나니까. 그리고 나는 그런 반응을 마주할 때마다, 여전히 그날 아침의 긴장되는 서늘한 공기 속으로 되돌아가게 되니까.
2004년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자서전 '마이 라이프'가 출간되었고, 2005년 2월 빌 클린턴은 그 책의 홍보를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무려 강남 교보문고에서, 그래 우리가 즐겨 가는 그곳에서 무려 '빌 클린턴'의 자서전 사인회가 열린 것이다.
출판사나 서점에서나 진성독자 혹은 골드 멤버로 취급받는 나는 이 믿기 어려운 사인회 소식을 접하고 한번 해보는 거지 싶은 마음에... 가을야구 티켓을 예약하던 실력을 바탕으로 온라인 예약신청을 했다. 최종 결정은 나지도 않았지만, 그날의 회의는 다음으로 미루고, 마감은 먼저 해두고 나 홀로 사인회 준비를 꽤나 열심히 했다.
그리고 또 하나 학창 시절처럼 영작을 시작했다. 며칠을 고민하며 A4 한 장 가득 빌 클린턴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영어 문장으로 써 내려갔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가 어색하지 않게 입에 붙도록 외웠다. 회사 책상 서랍에도, 냉장고 문에도 그 메모를 붙여놓았던 기억이 난다.
마침내 초대장을 받고는 회사엔 휴가를 내고, 수능 시험날처럼 새벽같이 일어나 택시를 탔다.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이른 시간, 5시도 안 된 그 시각에 내가 강남 교보문고 앞에 줄을 설 줄이야. 하지만 교보문고 앞은 이미 꽤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공기는 묘하게 긴장돼 있었다. 미국 전직 대통령의 방문이었지만, 보안은 현직 못지않게 삼엄했다.
8시 남짓 서점 직원들이 출근한 뒤, 번호표를 나눠주고 그룹별로 시간대를 지정해 주었다. 건물 입구부터 안쪽 행사장까지 줄이 길게 이어졌고, 빌 클린턴이 서명을 하는 공간에는 한 사람씩만 들어갔다가 나올 수 있었다. 주변은 조용했으며 긴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거기다 사진 촬영도 금지되었다.
잔뜩 긴장한 채 사람들 틈에서 조용히 기다리던 그 시간. 그날 나는 마음속으로 여러 번 연습했던 문장들을 떠올렸다.
긴장감에 휩싸인 그 순간, 나는 그래도 꼭 한 문장은 전하고 싶다고 다짐했지만, 막상 그를 눈앞에 마주하자, 나는 모든 말을 잊었다. 긴장된 분위기와 짧은 만남의 특수성 때문에 길게 대화를 나눌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단연 매력적이었다. 손을 내밀며 웃는 얼굴, 모두의 시선을 끄는 존재감. 나는 준비했던 문장은 모두 잊고 단 한 문장만을 내뱉었다.
"Just like the moment you met President Kennedy, I will remember this moment."
당신이 존 F. 케네디를 만났던 그 순간처럼, 저는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하겠습니다.
그 한 문장에는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었다. 1963년, 15세의 빌 클린턴은 아칸소 주의 우수학생으로 선발되어 백악관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그는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었고, 그 순간이 그의 인생을 바꾸었다. 한 소년이 대통령의 손을 잡으며 꿈을 키웠듯이, 나 역시 그와의 만남이 내 안의 무언가를 바꾸리라는 직감이 있었다.
그는 내 말을 주의 깊게 들었고, 환하게 웃으며 악수를 하면서 "Thank you"라고 말하며 책 위에 그대로 적었다. 그 아래로 쓰여진 'Bill Clinton'의 서명은 대담하고 힘찬 필체였다. 둥글고 큰 'B'와 'C'가 눈에 띄었고, 'l'과 'n'의 곡선이 부드럽게 이어지며 그의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그대로 담고 있었다.
그 작은 방을 빠져나온 뒤, 나는 한참 동안 떨었던 것 같다. 또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행사장 바깥 한쪽 벽에 멍하니 서 있었다. 한마디 밖에 하지 못했는데, 너무 많은 말을 한 것 같은 느낌. 너무 많은 일이 지나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손에 쥔 '마이 라이프'는 따뜻했고, 거기엔 정말로 그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손에 든 책은 이제 단순한 자서전이 아니라 내 역사의 한 조각 같았다.
그가 서서 사인을 하던 테이블, 그의 눈빛, 그의 미소가 낯설게도 내 기억 안에 깊게 각인되었다. 모든 게 짧았지만, 그 한 문장과 한 사람은 내 안의 무언가를 바꾸고 있었다. 떨림은 쉽게 가시지 않았고, 지금도 문득 그 책장을 열면, 그날의 숨결이 되살아난다.
그의 자서전 '마이 라이프'에서 유독 기억에 남은 건 조부모에 대한 이야기였다. 배움이 길진 않았지만, 손자에게 늘 '당당하게 말하고, 남을 무시하지 말라' 가르쳤던 조부모. 그 사랑 안에서 성장한 그가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 그 장면이 오래 남았다. 화려한 정치 무대보다도, 한 사람의 기초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었으니까.
사실 클린턴의 정치는 복잡하고 논란도 많았다. 하지만 내가 그에게 끌린 이유는, 그 복잡함을 회피하지 않으면서도 끊임없이 균형을 찾으려 했다는 점 때문이다.
그는 좌우의 극단을 오가지 않으면서도, 뚜렷한 목소리를 냈다. 강경함과 유연함,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외줄을 걷는 듯한 정치인. 나는 그 줄타기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쪽이었다.
그는 빈곤한 환경 속에서 자라났고, 알코올 중독 의붓아버지 밑에서도 꿋꿋하게 버텼다. 음악을 사랑했고, 토론에 능했으며, 조지타운대와 옥스퍼드, 예일로 이어지는 학문적 경로를 밟았다. '가난한 남부 청년이 세계를 바꾼 이야기'라는 진부한 말이, 클린턴 앞에서는 실제가 된다.
'마이 라이프'를 읽다 보면, 그의 삶 전체가 하나의 리듬처럼 흐른다. 격렬한 선거전, 공화당과의 정면충돌, 낙태와 총기, 경제정책과의 끝없는 줄다리기. 그리고 개인적 위기로 인한 정치적 시련 속에서도 그는 미국을 경제 호황으로 이끌었다.
냉전 이후의 세계질서 속에서 '합리적 중도'라는 새로운 프레임을 구축한 그는 다리를 놓는 사람이었다. 정치적 좌우를, 인종과 세대를, 말과 현실을 이어주는 방식으로.
그리고 퇴임 이후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클린턴 재단을 설립하고 아프리카, 아시아, 중남미를 오가며 빈곤과 질병 퇴치에 힘썼다. 그는 여전히 전 세계를 누비며 기후변화, 공중보건, 경제발전을 위한 다양한 이니셔티브를 이끌고 있다.
그는 '전직 대통령'으로 머물지 않았다. 정치를, 삶처럼 계속해 나갔다. 그의 이야기는 한 시절의 회고가 아니라 지금도 이어지는 현재진행형이다.
그가 보여준 이 '다리 놓기'의 정치는, 이후 내가 어떤 정치인을 바라볼 때에도 기준이 되었다. 나는 그때부터, 갈등을 부추기기보다는 조율하고 연결하는 리더십에 매료되었고, 그것이야말로 진짜 정치라고 믿게 되었다.
나는 한동안 그의 인생 자체가 말하고 있는 '출신보다 중요한 건 방향'이라는 메시지를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었다. 아칸소의 가난한 소년에서 세계 최강국의 대통령이 된 그의 궤적이, 정치란 기술이 아니라 방향이고 방향은 결국 인간에 대한 믿음에서 나온다는 걸 실제로 보여준 사람처럼 느껴졌다.
사실 나는 클린턴이라는 인물에게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왔다. 단지 미국 대통령이라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김대중 대통령과의 인연 때문이다.
클린턴은 대통령직에 있을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리더십을 공개적으로 지지했고, 이후에도 DJ를 만나기 위해 여러 차례 한국을 찾았다. 두 사람 사이에는 동맹 이상의 공감과 존중이 느껴졌다.
서울 동교동에 있는 김대중 대통령 기념관을 방문했을 때, 나는 클린턴의 이름이 남겨진 전시물을 마주했다. 클린턴은 재임 시절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지지했고, 남북정상회담 이후에는 그것이 세계 평화에 기여할 가능성에 대해 긍정적으로 언급한 바 있다.
김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을 때도 클린턴은 공개적으로 축하를 보냈고, 이후 한국을 찾았을 때마다 DJ와의 만남을 이어갔다.
그 두 사람 사이에는 정치적 유불리를 넘어서는 일종의 '신뢰'가 있었다. 미국과 한국, 지도자와 지도자 사이에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경우는 흔치 않다. 나는 그 기념관에서, 단지 외교적 수사를 넘어선 진심을 읽을 수 있었다. 클린턴이라는 인물을 더 오래 기억하게 만든 또 하나의 장면이었다.
그는 여전히 힐러리와 함께 하고 있다. 대학 시절 연인이었던 두 사람은 재임 중 일어난 모니카 르윈스키 스캔들과 탄핵 위기라는 극심한 시련 속에서도 결혼 생활을 이어왔다.
힐러리가 2016년 대선에서 패배했을 때, 사람들은 "그때 이혼했으면 대통령 됐을 것"이라는 농담을 했지만, 그런 위기도 그들 부부의 한 페이지일 뿐이다. 그 후로도 그들은 함께 강연을 하고, 재단 활동을 이어가며 공적 영역에서의 파트너십을 유지하고 있다.
나는 그 농담을 처음 들었을 때 웃었지만, 곧 생각이 많아졌다. 정치 커리어를 쌓는 여성에게 요구되는 '독립성과 가족성' 사이의 모순을, 그들은 늘 온몸으로 감당해 온 셈이었다. 부부라는 문장은, 언제나 답보다 해석이 앞선다.
그리고 나는 그 시기를 기억한다. 힐러리가 대선에서 패배한 직후, 한 영상이 미국 언론을 통해 소개되었다. 힐러리와 빌 클린턴이 나란히 인근 산책로를 걸으며 산에 오르는 모습이었다. 말없이 걷는 두 사람의 뒷모습은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침묵과 동행. 패배와 위로. 지지와 의리. 나는 그 장면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부부란 결국, 사랑만으로는 버티기 어려운 관계일지도 모른다. 어떤 순간에는 믿음보다 의리가, 감정보다 습관이, 이상보다 함께 견뎌낸 시간이 더 오래 남는다. 힐러리와 클린턴은, 그 순간까지도 든든한 의리의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돌이켜보면 1998년, 나는 그의 부고를 썼다. 대학 시절, 신문방송학과 전공과목인 기사작성 수업에서 유명인사의 사망에 대비한 부고 기사를 미리 작성하는 과제가 나왔을 때도 나는 빌 클린턴을 선택했다.
당시 그는 아직 대통령직을 수행 중이었고, 미국 사회가 크게 흔들리던 시기였다. 언론사들이 프란치스코 교황이나 주요 정치인들의 부고 기사를 미리 준비해 두듯, 우리도 그런 실무 연습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직 대통령의 '가상 부고 기사'를 쓴다는 건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었다.
나는 단순한 부고가 아닌, 그 사람의 삶 전체를 압축해서 한 편의 글로 구성하려 했다. 정치인으로서의 커리어뿐 아니라, 그가 거쳐온 개인적 굴곡과 세계에 끼친 영향까지도 담고 싶었다.
그래서 클린턴에 관한 수많은 기사를 뒤졌고, 그의 연설문과 외교 정책, 국내 복지 개혁, IT산업 진흥 전략까지 섭렵했다. 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언젠가 다가올 미래를 '죽음을 전제로' 상상하며 쓰는 일은 나름의 사유 훈련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글은 내가 처음으로 '한 사람의 삶을 통째로 이해하려고 했던' 시도였는지도 모른다.
그는 단지 미국의 전직 대통령이 아니라, 나의 정치적 관심이 깊어지던 시기에 가장 자주 들여다보게 된 인물이었다. 그의 행보를 통해 나는 정치가 늘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균형과 방향의 문제일 수 있음을 처음 체감했다. 사인을 받기 전부터, 그리고 받고 난 이후에도 나는 그 사람을 읽고, 생각하고, 배워왔다.
'빌 클린턴에게 사인을 받았다'는 사실보다, 그 하루를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더 또렷해진다. 사인 하나가 사람에 대한 인식을 바꾸게도 하고, 어떤 감정을 오래도록 새기게도 한다. 나에게 빌 클린턴은 그런 사람이다. 논란도, 명성도, 매력도 가진 사람. 무엇보다, 내가 줄을 서서 마주한 유일한 대통령.
그중에서도 가장 선명하게 남은 건, 그날의 'Thank you'다.
그날 이후 나는, 누군가의 한 줄 문장을 기억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어졌다. 말에는 힘이 있다고, 문장 하나로도 누군가의 마음을 흔들 수 있다고. 그날 나는 그 사실을, 아주 짧고 또렷하게 체험했다.
그날은 내게 그런 날 중 하나다. 수능시험 날처럼, 대학 합격 소식을 들었던 순간처럼. 긴장이 끝나고 무언가 선명하게 남는 그런 날.
빌 클린턴이라는 이름을 들을 때마다 나는 자연스레 그날의 공기와 떨림, 그리고 그가 남긴 사인의 손끝 감각까지 떠올리게 된다. 누구나 그런 날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법이니까.
며칠 전, 빌 클린턴이 다시 서울을 방문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광화문 거리에서 시민들과 사진을 찍는 모습도 보았는데, 이제는 훨씬 나이가 든 얼굴이었지만 여전히 유쾌하고 사람들과 소통하길 좋아하는 그의 본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 토론과 악기를 좋아하던 소년, 그 호기심 많고 사교적인 기질이 여전히 그의 걸음과 표정 안에 살아 있는 것 같았다.
김영민 교수, 조선희 작가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 서명 이야기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들 모두 나에게는 각각 다른 방식으로 '말의 힘'을 보여준 사람들이었다. 내가 직접 사인을 받은 십여 명의 인물 중에서도 빌 클린턴은 단연 가장 유명한 사람이지만, 동시에 꽤나 인간적인 순간을 보여준 사람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