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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마루 Aug 13. 2022

백석의 국수

[지금은 새벽 두시 반] 제5화

점심에 냉면을 먹었다. 물냉으로... 백석의 시를 새벽 한밤중에 읽으면 군침이 돌아 참을 수가 없다. 그래서 마트에서 두 끼 정도는 냉면을 사놨다.


우리가 백석을 시로 만날 수 있었던 시기는 1935년~1941년까지 불과 7년이다. 우리는 전쟁으로 인해 천재 시인을 잃었다. 이후의 소식은 안타까운 노년의 사진 한 장과 그의 사망 소식이었다. 1936년 1월 20일, 서른세 편의 시가 실린 그의 유일한 시집 "사슴"이 단 100부만 출간되었다. 백석은 시인들의 시인이라 불린다. 동주 시인도 책을 빌린 돈이 없어 도서관에서 필사해 그의 시를 읽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동주 시인의 시는 백석의 시와 많이 닮아 있다. 


백석의 시에는 100여 개가 넘는 수많은 음식이 나온다. 맨모밀국수, 가재미 회국수, 흰밥과 가재미, 수박씨, 호박씨, 무이징게국, 달재 생선, 붕어곰, 송구떡, 섞박지, 매감탕...하나같이 토속적인 음식이다. 특히 흰밥과 가재미, 그리고 고추장은 가장 많이 나오는 음식이다. 서울 이남 사람은 `냉면`이라고 하지만 평안도와 이북에서는 `냉면`은 따로 없고 그냥 모두를 국수라 한다. 평양 옥류관에서 먹어 본 사람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히수무레하고 맛이 슴슴하다 한다. 꿩국물 육수의 담백함과 동치미 국물이 쏘는 맛이 면발과 잘 어우러지는 맛을 낼 것이다. 이 시는 국수의 재료와 만드는 과정, 역사성과 사람의 정서를 모두 담고 있다. 다 같이 모여서 음식을 먹던 시골 마을의 풍경이 그대로 담겨있다.


백석 -국수

눈이 많이 와서

산엣새가 벌로 나려 멕이고

눈구덩이에 토끼가 더러 빠지기도 하면

마을에는 그 무슨 반가운 것이 오는가보다

한가한 애동들은 어둡도록 꿩사냥을 하고

가난한 엄매는 밤중에 *김치가재미로 가고

마을을 구수한 즐거움에 사서 은근하니 *흥성흥성 들뜨게 하며

이것은 오는 것이다


이것은 어늬 *양지귀 혹은 능달쪽 외따른 산옆 *은댕이 *예데가리밭에서

하로밤 뽀오햔 흰김 속에 접시귀 소기름불이 뿌우현 부엌에

*산멍에 같은 *분틀을 타고 오는 것이다


이것은 아득한 녯날 한가하고 즐겁든 세월로부터

실 같은 봄비 속을 타는 듯한 녀름볕 속을 지나서 들쿠레한 구시월 갈바람 속을 지나서

대대로 나며 죽으며 죽으면 나며 하는 이 마을 사람들의 으젓한 마음을 지나서 텁텁한 꿈을 지나서

지붕에 마당에 우물둔덩에 함박눈이 푹푹 쌓이는 여늬 하로밤

아베 앞에 그 어린 아들 앞에 아배 앞에는 왕사발에 아들 앞에는 새끼사발에 그득히 사리워 오는 것이다


이것은 그 곰의 잔등에 업혀서 길여났다는 먼 녯적 *큰마니가

또 그 집 *집등색이에 서서 자채기를 하면 산넘엣 마을까지 들렸다는

먼 녯적 큰 아바지가 오는 것같이 오는 것이다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닉은 통티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궅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고담(枯淡)하고 소박(素朴)한 것은 무엇인가 

                                                               『문장』1941년 4월 발표 


*김치가재미 : 북쪽 지역의 김치를 넣어 두는 창고, 헛간

*흥성흥성 : 여러 사람이 활기차게 떠들며 계속 흥겹고 번성한 분위기를 이루는 모양.

*양지귀 : 햇살 바른 가장자리

*은댕이 : 가장자리

*예대가리밭 : 산의 맨 꼭대기에 있는 오래된 비탈밭

*산멍에 : 이무기? 뱀의 평안도의 말

*분틀 : 국수 뽑아내는 틀

*큰마니 : 할머니의 평안도의 말

*집등색이 : 짚등석, 짚이나 칡덩쿨로 짜서 만든 자리

*자채기 : 재치기

*댕추가루 : 고추가루

*탄수 : 석탄수

*삿방 : 삿(갈대를 엮어서 만든 자리)를 깐 방

*아르궅 : 아랫목

*고담(枯淡) : (글, 그림, 글씨, 인품 따위가) 속되지 아니하고 아취가 있음


백석의 흑백사진을 포토샵으로 살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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