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로 보는 세기의 디자이너] 제9화
Hans Wegner 한스 웨그너(1914 ~ 2007)
"짝퉁이라도 디자인을 알고 사야한다..."
우드슬랩을 구매하면 의자를 고르면서 많은 고민을 한다. 디자인이 원목과 어울리면서 편안한지 , 우리 집과는 어울리는지, 하지만 진품은 워낙 가격이 고가에다 가품이라 할 지라도 누가 짝퉁이다 태클 거는 사람은 없다. 옷 가방 처럼 단속도 없다.
여기 한스웨그너라는 건축가이자 가구디자이너가 있다. 우리에게는 Y체어로 잘 알려진 사람이다. 한스웨그너는 몰라도 Y체어 디자인은 한번 쯤 봤을 법 하다.
한스 웨그너는 20세기의 거장, 의자디자인의 아버지... 많은 수식어들이 따라 다니지만.... 확실한건 그는 1000개가 넘는 디자인을 한 창의적인 디자이너이며 덴마크 디자인을 세계 정상의 반열에 올려놓은 가장 중요한 사람일 것이다.
Carlhansen&son 디자이너였던 한스웨그너지만 유년시절 Stahlberg의 견습생으로 일했다. 그는 곧 자신이 나무에 대한 감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물질에 대한 친근감을 갖게 되었다. 그는 군대에서 복무한 후에 코펜하겐에 있는 덴마크 예술 공예 학교와 건축 학회에 들어갔다.
코펜하겐에서 그는 1927년에 시작된, 목수 협회 가구 전시회와 알게 되었다.전시물들은 요하네스 핸슨, L. 폰토피단, NielsVodder, .J.vmersen, Moos 와 같은 마스터 Cabinetmakers사이의 실험을 위한 실험실이였다.
이후 1940년 아르네 야콥센이 시청 건축을 맡으면서 시청의 가구를 담당하게 된 웨그너는 Jacobsen과 Maewller밑에서 고용되었다. 야콥센이 추구한 엄격한 모더니즘이 그에게 영향을 미쳤지만, 그는 야콥센보다는 좀 더 전통적 형태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것에 관심을 가졌고 대량생산 방식보다는 우수한 장인 기술의 힘을 활용했다.
웨그너는 1951년 루닝 상과 같은 해 밀란 트리엔 그랑프리에서 스웨덴과 덴마크 에커버그에서 열린 프린스 Eugen메달에 이르기까지 여러개의 주요 디자인 상을 받았다. 1959년에 그는 런던의 왕립 예술 협회로부터 산업 분야의 명예 로얄 디자이너로 임명되었다.
그에 작품들이 동양적인 곡선이 많고 짜맞춤이 많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mortise and tenon(장부맞춤) , finger joints(손까락모양의 맞춤) , 팔걸이와 좌석 지지대에
전통적이니 joinery techniques(짜맞춤기법)를 사용하였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항상 예외적으로 높은 수준의 예외적인 것들을 만들고 싶었다
1944년 그의 첫 데뷰작이던 차이니스체어(no1~no4) 시리즈를 보면 전통 명나라 의자에 앉아있는
덴마크 상인들의 초상화에 영감을 받았다. 프리츠 핸슨이 생산한 첫번째 것은 재료의 근원을 살렸다고
말한다. 서양에서는 새로운 도전이였겠지만 명나라의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디자인이다.
그는 새로운 재료나 구조를 연구하기보다 전통 속에서 자신의 길을 찾았다.
"앉는다’는 행위는 자연의 섭리를 따른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어서 그 모습은
최대한 안정적이고 품위 있어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20세기 의자디자인중 하나만 고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위시본체어를 뽑을 것이다. 과언은 아니다
기존의 의자들처럼 등받이의 면을 꽉체운게 아니고 가는 활처럼 둥글게 휘어지게 하므로써 앉는 사람이 우아하고 품위있어 보이게한다. 이 등받이는 센터 지지대와 만나는데 그 센터지지대가 위시본(동물의 목과 가슴사이 v모양 뼈)처럼 생겼다해서 위시본체어 또는 Y모양이라해서 Y체어라 한다.
100 years of Hans J. Wegner_The Wishbone chair
피곡체어 - 공작의 날개라는 뜻으로 등을 완전하게 감싸는 형태의 크고 둥근 등받이는
매우 내추얼한 구조를 사용하지만 매우 화려하게 느껴짐 부채꼴몽양의 퍼져나가는 듯한 형태
The Chair 1949년
'The One & Only' 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 의자는 리처드 닉슨과 존 F케네디 사이의
TV토론에서 토론 중에 의장석에 앉아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여러겹으로 포겔수 있는 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