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905_am12:02
먼 길을 나서는 중이다. 집에서 자그마치 전철로 열 정거장. 한강진역에 있는 다시서점에 가는 길이다. 다시서점은 처음 가본다. 해방촌에 독립서점이 많다고 하지만 자주 안 가게 된다. 오히려 여행 차 지방에 내려갔을 때 그곳 독립책방을 찾게 된다. 그리고 한 권씩 꼭 사온다. 독립책방에서는 왠지 그래야 할 것 같고, 안 사면 미안하고, 미안하다는 인사를 꼭 하고 나와야 할 것 같고 그렇다. 그래서 웬만하면 살 책을 정하고 간다. 그 책이 거기 있다는 정보를 확인한 후에 길을 떠난다. 그 책을 알게 되기까지 시간이 좀 걸리지만 어쨌든 알게 되면 찾게 되고 보이게 된다.
녹사평-이태원-한강진
사람들은 이곳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 난 왜 이곳이 여전히 낯설고 어색할까. 이곳에서 한 번도 편했던 기억이 없어서일까. 거리상 멀어서 자주 안 갔기 때문에? 오랜만에 큰 맘 먹고 가면 꼭 식당이나 카페에서 고생을 해서? 여러 이유가 있어서 그동안 꺼려 왔을 테지만 오늘은 여기밖에 올 데가 없었다. 그 책이 여기 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핸드폰으로 메모하면서 한강진역에 왔고 네이버가 말해준 대로 3번 출구로 나와 서점까지 십 분정도를 더 걸었다. 가을이라고 하지만 아직 땀이 났다. 낯선 땡볕을 열심히 걸어서 서점까지 찾아왔는데 문이 닫혀 있었다. 열두 시부터 오픈한다고 해서 일부러 열두 시 삼십 분쯤 도착하도록 왔는데 아직도 문이 닫혀 있는 것이다. 독립서점은 왠지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근처에서 좀 기다릴까 하다가 문득 서늘한 기운에 인스타그램 계정을 살펴보니 월요일 휴무로 되어 있지 않은가. 네이버만 믿고 왔더니 이런 낭패가. 네이버는 왜 최신 정보를 갖고 있지 않은가. 믿을 게 없어서 네이버를 믿다니, 내 잘못이지 뭐. 다시 왔던 길을 터덜터덜 걸어 나왔다. 그래도 이곳에 왔으니 뭐라도 하고 가야지 싶어서 책을 사면 들러서 읽고 오려고 미리 정해 두었던 카페에 갔다. 사실 여기도 난관이었다. 어색하기로는 이태원 카페만한 게 없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태원의 식당이나 카페에서 고생했다는 것은 사람이 많기도 했지만 그 어색함을 견딜 수가 없어서였다. 무슨 외국에 온 것처럼 어색하고 불편했는데 차라리 외국이라면 더 나았을 거다. 이들은 같은 한국인이면서도 나와는 어떤 차이가 느껴졌다. 다른 성정을 가진 사람들만 모이는 곳 같았다. 나만 느끼는가. 마음으로 느껴지는 것이기에 작은 차이일 수도 있고 아주 큰 차이일 수도 있다. 열등감일까 피해의식일까. 준 사람은 없고 받는 사람만 있는. 그래도 용기를 내서 자리를 정하고 주문을 했다. 내가 느끼는 것은 아무것도 아닐 거라고, 모든 사람은 다 똑같다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면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들고 자리로 와서 노트북을 열고 그때부터 경주마처럼 양쪽 눈 옆을 막고 글을 썼다. 글이 안 써져도 그냥 아무 말이나 막 썼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자유로워질 길은 그것밖에 없으리라 여기면서 그냥 달렸다.
오늘 여기서 그 책을 살 수 있었다면 내 마음이 달라졌을까. 지금 이 카페에서 그 책을 읽으며 그동안 이곳에 느낀 거리감과 어색함을 떨칠 수 있었을까. 내가 앉은 카페 이층에는 커다란 창이 나 있어서 용산구가 훤히 내려다보였다. 이층밖에 안 되는데도 다 내려다보일 정도로 높이가 있었다. 저 아래가 하나의 거대한 웅덩이 같았다. 바로 아래에는 오늘 가려고 했던 서점의 작은 간판도 보였다. 목적지를 목전에 두고 낯선 곳에 머물고 있는 내가 또 낯설게 느껴졌다. 같은 서울이자 집에서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 곳에 와 있으면서도 국경을 건너 온 것처럼 어색해하는 나, 비정상인가요?
독립출판물을 검색하는 데에는 역시 인스타그램만 한 게 없나 보다. 그 책이 있는 곳을 금세 찾을 수 있었다. 휴무일은 따로 없었고 어이없게도 우리집에서 가까웠다. 다시 한강진역으로 돌아가 6호선을 탔다. 이태원을 지나 공덕과 대흥, 광흥창을 건너 상수에 다다르자 깜깜한 우주에서 드디어 대기권 안으로 진입한 기분이었다. 1번 출구로 나와 서점이 있는 곳까지 오 분 정도 걸었다. 건물 3층에 올라가자 정말 독립책방이 있었고 내가 찾던 그 책이 거기 있었다. 주인이 “밖에 더워요?”라고 물었는데 나는 뜻밖의 질문에 당황해서 “괜찮아요.”라는 이상한 대답을 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내 얼굴에 땀이 맺혀 있어서 그렇게 물어본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맞는 대답을 한 거였을지도. 몇 가지를 더 구경하다가 원래 사려고 했던 그 책 한 권만 계산했다. 서둘러 계단을 내려오면서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데 굳이 서두를 필요 있었나 후회가 들었다. 그래도 뭐, 다음 기회에.
산 책을 가방 속에 넣고 마을버스를 탔다. 반대쪽에서 타는 바람에 신촌까지 갔다가 되돌아와야 했지만 버스에서 내리진 않았다. 이미 지쳐 있었다. 버스는 지친 나를 싣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고 예상보다 조금 늦어버렸지만 무사히 집까지 운반해주었다. 집에서 출발하기 전에 좀 더 꼼꼼히 알아보고 갔더라면 이태원까지 헛걸음 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고,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괜히 낯설고 시끄러운 카페에 가서 경주마처럼 억지로 글을 쓰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마을버스로 다섯 정거장 거리인 서점에서 생각보다 빠른 시간 안에 책을 사서 여유 있는 오후를 보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좋았으련만. 시간은 이미 흘렀고 오늘은 저물었고 어찌 됐든 그 책은 내 손에 들어와 있으니 그걸로 만족스러워 해야 하나.
침대에 누워 오늘 산 책을 펼쳤다. 오늘 나를 위로해줄 누군가가 있다면 바로 너야, 모든 게 다 너 때문이었으니까, 라는 심정으로 읽어 나갔다. 글쎄, 왜 너였을까. 왜 내 눈에 네가 들어온 걸까. 그 많고 많은 책 중에서. 소개글 때문이었을까. 구성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싼 가격 때문이었을까. 어떤 문장 때문이었을까. 모르겠어. 그냥 내 눈에 네가 띄었고 널 찾기 위해서 긴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었어. 그저 여행을 떠나기 위한 목적이 필요했던 거였을지도 모르지만. 무엇이 먼저든 어떠니. 여정의 끝에 결국 널 찾아서 반갑고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