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902_pm10:37
꿈에 또 김영하가 나왔다. 소설가 김영하 말이다. 그곳은 김영하의 집이었고 김영하의 어린 동생이 나왔다. 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 아이였다. 그애가 직접 자신이 김영하의 동생이라고 했다. 어머, 이렇게 어린 동생이 있다고? 꿈속에서도 나는 아이의 나이와 김영하의 나이를 가늠해보았고 김영하의 동생이라기보다는 아들일 가능성에 대해서 짐작해보았다. 저기 보이는 김영하. 알 듯 모를 듯한 표정. 진짜일까 아닐까 꿈속에서 허우적거리느라 현실에선 늦잠을 잤고 지각을 했다. 여덟 시 삼십오 분. 도서관에 도착해 있어야 할 시간이었다. 입사 이래 가장 확실한 지각이었다. 카카오 택시를 부르려다 어차피 지각이어서 말았다. 거실에는 가을의 아침 햇살이 한 가득. 주말이라 쉬는 남편이 거들었다. “출근에 목숨 건 것도 아닌데 뭐.” 맞는 말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차피 지각이었다. 발악을 해도 발광을 해도 지각이었다. 평소처럼 천천히 걸었다. 지하철 타기 전에 카페에서 아이스라떼도 테이크아웃 했다. 체념과 여유 사이 어디쯤을 걷는 기분이었다. 뭔가를 확실하게 망한 사람의 기분이 이렇지 않을까. 지하철에 앉아서 라떼를 마시며 오늘 아침 꾼 꿈을 정리해보았다. 왜 그런 맥락 없는 꿈을 꿨을까. 꿈에 김영하가 나온 건 반갑지만, 그 아이는 또 뭔가. 꿈에 백 번을 나온들 그가 나를 알겠나. 알 턱이 있나. 뭐, 알아달라는 건 아니지만.
참으로 오랜만에 하는 지각이었다. 자료실에선 가장 빨리 출근하는 편이었다. 컴퓨터와 자동대출반납기, 독서통장기의 전원을 켜고, 창문을 열고 등등을 거의 매일 했다. 그런 내가 지각을 했으니 무슨 일 있는 줄 아는 거 아냐? 아닌데. 그냥 늦잠 잔 건데. 나는 같이 일하는 선생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연신내역에서 내려 도서관까지 걸어 올라갔다. 출근 시간이 지나자 평소와는 확연히 다른 풍경이었다. 사람도 공기도 이것저것. 도서관 가는 길에 어떤 이야기가 떠올랐다. 순식간이었다. 걸어가는 중이었고 메모보다는 장면을 기억하기로 했다. 머릿속에서 내내 장면을 생각했다. 장면의 순서와 디테일을. 책상 앞에 앉는 대로 정리해야지, 하면서 계속해서 장면을 돌리고 돌렸다. 그래서 무슨 이야기가 나올까. 끝을 알 수는 없지만 이런 기회가 자주 오는 게 아니어서 반가웠고 이 순간을 어떻게든 확장시키고 싶었다. 출근 카드를 들고 총무과에 갔더니 그럴 수도 있죠, 그럴 수도 있어요, 라는 느긋한 대답이 왔다. 자리에 앉아 출근길에 떠올린 것들을 컴퓨터 메모판에 좌르륵 옮겨 놓은 다음 일을 시작했다. 일을 하다가도 이야기가 생각나면 또 한 번 메모판에 좌르륵. 글쎄다, 이 메모가 결국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모르는 채로 이어나가는 일이 어떤 의미인지도.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단 백배 천배 낫기 때문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