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구구절절

66. 인쇄

20170929_am12:06

by 강민선

휴관일 아침부터 일어나 사과 한 쪽을 먹고 지하철 세 번 갈아타고 버스 한 번 갈아타고 고양 시 일산까지 다녀왔다. 평소의 내 주요 행동반경에 비하면 엄청나게 멀고 까다로운 길이었는데 이렇게 힘들게 고생해서 찾아가면 왠지 더 좋은 인쇄소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근거 없는 믿음 때문이었다. 삼십 분에 한 대 다니는 마을버스를 타고 도착한 허허벌판, 거기서도 좀 더 안으로 들어가야 보이던 공장에 파일을 맡기고 다시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세 번 갈아타고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출발할 때부터 시작된 생리통이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잠깐 잠이 들려던 차에 문자가 왔다. 가제본이 완성되었으니 찾아가라고. 가제본이야 다음에 찾아가도 되었지만 이제 막 완성된 내 책이 지금 이 세상 어딘가에 있다는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침에 입었던 옷을 주워 입으며 카카오택시를 불렀다. 도저히 지하철 세 번에 버스 한 번을 다시 탈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었으니. 택시가 서울을 벗어나 고양시에 접어들면서 할증이 붙기 시작했다. 인쇄소에 도착했을 땐 만팔천 원이 넘는 택시비를 내야 했지만 괜찮았다. 내 책을 만날 테니까.

집으로 돌아올 때에는 다시 마을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세 번 갈아탔다. 택시비가 비싸기도 했지만 가제본된 책을 확인하기엔 대중교통이 편했다. 대중교통이 편하긴 뭐가 편해! 이렇게 멀리까지 올 필요가 없었다는 것을, 모든 결과는 공을 들인 시간과 수고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가제본 된 책을 통해 절감하면서, 이 책과는 비교도 안 되게 멀쩡한 책들이 잔뜩 쌓여 있는 합정 교보문고에서 퇴근하는 남편을 기다렸다. 벌써 퇴근 시간이었다.

“이 정도면 괜찮은데?”

“여기 본드 자국 봐. 색깔도 책이랑 너무 안 맞고. 부드럽게 넘어가지도 않아.”

“그거야 인쇄소에 얘기하면 되는 거잖아.”

“너무 멀어. 자주 왔다갔다 하면서 의견도 나누고 수정도 하고 그래야 하는데 너무 멀어.”

“그러게 왜 그렇게 먼 곳으로 갔다 왔어.”

“글쎄.”

글을 쓰는 건 꿈을 꾸는 일이지만 표지를 만드는 건 그 꿈에서 깨는 일이라고 줌파 라히리가 말하지 않았던가. 책에 옷을 입히는 일, 제본은 역시 꿈에서 깨는 일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시작했다. 시작했으니 끝을 봐야지. 집에서 먼 곳으로 인쇄소를 정한 일은 일단 잘못이었다. 자주 다니고 친해지려면, 그래서 책에 대해 의논도 하고 앞으로 나올 또 다른 책들도 믿고 맡길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 가까워야 했다. 그걸 간과했다. 인쇄하는 사람은 책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어야 하지만 내 마음도 잘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렇게 쓰고 보니 이것 역시 꿈을 꾸는 일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현실에선 아직 책 한 권 나오지 않았다. 책이라는 것이 마음을 어떻게 형상화하느냐의 문제라는 것을, 만들어보기 전까지는 완전히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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