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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선 Feb 25. 2021

입춘立春

02.03.(양력), 태양 황경 315°

24절기 중 첫 번째 절기로, 이때부터 봄이 시작된다고 여긴다. 음력 새해의 첫째 절기이기 때문에 농경의례와 관련된 행사가 많다. 입춘이 되면 집집마다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과 같은 입춘축立春祝을 대문이나 문설주에 붙인다.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www.nfm.go.kr)


청탁 받은 원고를 넘기기 전에 출력해서 박수영¹에게 보여줬더니 다른 때와는 달리 오랫동안 집중해서 읽어주었다. 청탁 받은 원고이기 때문일 것이다. 원고에는 빨간 볼펜 자국이 우수수 나 있었다. 지금껏 많은 원고를 보여줬지만 이렇게 적극적으로 피드백을 받아보긴 처음이었다. 역시 청탁 받은 원고이기 때문일까 생각하고 있는데 박수영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상하네”라고 말했다. 원고에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갔다는 거다. 잘 쓰고 싶어서 긴장한 건지, 부담감 같은 게 문장에 나타난다고 했다. 생각을 너무 많이 한 탓인지 복문도 많고, 문장이 길어지니 앞 뒤 호응도 안 되고, 불필요한 부사, 조사도 많고, 뭐도 많고, 뭐도……. 이렇게 지적을 많이 받아보기도 처음이었다.


쓰는 동안 나도 느꼈다. 내가 무척이나 어렵게 쓰고 있다는 것을. 몇 날 며칠을 붙잡고 있어도 200자 원고지 20매는 좀처럼 채워지지 않았다. 단지 매수를 채우는 게 다가 아니기에 어렵사리 메꾼 분량을 다음날 훅 덜어내고, 그다음 날 또 훅 덜어내는 식이어서 전체 원고는 아주 느린 속도로 이어졌다. 기껏 써 놓은 문장을 덜어내기가 아까워서 어떻게든 붙잡고 같이 가려다 보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글이 나오거나 아예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하루 종일 돌부처가 되어 노트북 앞을 지키고 앉아 있느니 일찍 자고 다음날 써보자 하고 침대에 누웠다가도, 새벽녘 한 줄기 섬광 같은 아이디어에 눈이 번쩍 떠져 글을 이어나가 보기도 했다. 물론 날이 밝으면 사정은 또 달라졌지만. 이런 과정 중에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간 걸까? 잘 쓰고 싶고, 잘 써야 하니까. 당연하지 않은가. 돈도 주는데.


온갖 첨삭으로 너덜너덜해진 원고를 바라보며 내가 말했다.

“이상하네, 정말 많이 고쳤는데.”

박수영이 짧고 굵게 답했다.

“장고長考 끝에 악수惡手.”


생각을 너무 많이 하면 도리어 판단력이 흐려진다는 이 속담의 뜻을 잘 알면서도 나의 뇌 속에는 어떤 프로그램이 깔려 있는지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일단은 악수하는 두 사람이 먼저 떠오른다. 아마 속담을 처음 들었을 때 잘못 이해했던 게 완전히 걸러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는 것 같다. 일일이 열거하긴 부끄럽지만 내겐 그렇게 잘못 이해한 단어와 문장이 머릿속에 잠재되어 있는 경우가 더러 있다. 정확한 뜻을 알게 된 다음에도 이전에 먼저 투입된 잘못된 정보가 모국어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마치 어떤 사물을 외국어로 말하기 전에 일단은 머릿속에서 모국어를 생각한 뒤 번역해서 말하듯이. 그러고 보니 내겐 모국어라고 해서 다 바르고 정확한 말도 아니거니와 숨 쉬듯 자연스럽게 내뱉기가 여전히 서툴러서야 무슨 글을 써서 밥을 먹겠다고 덤벼든 거야…… 여기까지 생각한 뒤 나는 박수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지나친 장고 끝에 악수를 두었구나.


아무튼 박수영의 도움으로 악수 같은 문장, 다시 읽어보면 허허 웃음만 나오는 허술한 문장을 빼거나 고칠 수 있었고, 불필요하게 반복되는 부사를 시원하게 제거할 수 있었다. 한 명에게만 보여줘도 이토록 허다한 오류가 발견되는데, 두 명, 세 명, 네 명, 다섯 명이 이 글을 본다면 얼마나 많은 오류를 찾아낼 것인가, 라는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수정본을 편집자에게 보냈다. 언제나 그랬듯 다 쓴 글을 편집자에게 보내는 순간이 가장 떨린다. 밤새 쓴 고백 편지를 짝사랑하던 이에게 건네는 것도 아닌데 원고를 보낼 때마다 그와 비슷한 감정이 일곤 한다. 어쨌든 글 속에는 내가 있고, 바보 같고 멋없고 아무리 아닌 척 해도 다 티가 나는 어설픈 진심이 녹아 있기 때문이겠지. 그걸 가장 먼저 읽게 되는 타인이 바로 편집자인 거고.


편집자에게 보내는 글이 처음도 아닌데 특히 이번에 더욱 긴장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이번 글의 주제가 ‘독립출판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독립출판하는 사람이 자기 경험을 쓰는 게 뭐가 어렵겠느냐 할 수도 있지만 막상 쓰려고 보니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했다. 독립출판을 시작하는 풋풋한 설렘을 꺼내기에도, 독립출판만의 특별한 가치를 나열하기에도 왠지 멋쩍었다. 사랑의 유효 기간이 지나버렸다고나 할까.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한계에 부딪힌 느낌이었다. 녹록치 않은 현실을 이미 겪어서 알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립출판 최고야, 완전 멋져요! 외치는 것만큼 공허한 건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무엇이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도움이 될까. 열흘 가까운 시간 동안 매일 생각한 끝에 답을 내놓을 수 있었고, 더 생각한다면 또 다른 답이 나올지도 모르겠지만 그것 또한 장고 끝의 악수가 될 수 있으니 더 큰 악수가 나오기 전에 그쯤에서 멈추었다.


두 번째 이유는 이 글을 의뢰한 편집자가 내게는 아주 특별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독립출판이란 걸 시작할 수 있게 해준 작가이면서 동시대를 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느껴지는, 앞으로 들려줄 이야기가 늘 궁금한 ‘백 퍼센트의 작가’²이기도 하다. 그런 작가에게 의뢰를 받았으니 AI가 아니고서야 어찌 긴장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편집자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작가는 마감을 잘 지키는 건 기본이고, 편집자에게 연락을 잘 하지 않으며, 편집자의 연락에는 재깍 답하는 작가라는 얘기를 바람결에 들어둔 터라 나도 그렇게 하리라 굳게 마음먹었다. 무엇보다 잘 쓰고 싶었다. 적어도 나한테 의뢰한 것을 후회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마감을 지켰다. 나의 선택이 묘수일지 악수일지 감도 잡지 못한 채 이어나간 깜깜한 여정이었지만, 길이 보이지 않을 때마다 작가가 세심하게 작성해서 보내준 제안 메일과, 박수영이 졸린 눈을 비벼 가며 첨삭해준 교정지를 지도 삼아 목표했던 지점에 무사히 도착했다. 최후의 마침표를 찍고 나자 마치 하나의 인생을 압축해서 살아낸 느낌이었다. 매일 이렇게 쓰다가는 글 써서 밥 먹기는 글렀다고 생각하면서도, 모든 글을 이런 자세로 쓴다면 세상에 못할 게 없을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밥은 글 쓰기 전에 먹어두자. 그래야 또 다시 이런 원고 청탁이 들어왔을 때 든든하게 쓸 수 있을 테니까. <끝>



1. 가명, 함께 사는 사람


2. 표면적으로는 책이 나오면 무조건 다 사서 읽는 작가를 말함. 이면에는 작품에 드러나거나 드러나지 않은 작가의 삶과 시선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의 영역이 있다. 작가의 이름을 밝히지 못한 건 편집한 책이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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