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들어서는 절기다. 이때부터 김장 등 겨울 채비를 하기 시작한다. 치계미雉鷄米라고 하여 마을 사람들이 곡식을 추렴해 마을 노인들을 대접하는 잔치를 벌이기도 했는데, 형편이 어려울 경우 미꾸라지를 잡아 추어탕을 끓여 대접했다. 입동에 날씨가 추우면 그해 겨울이 크게 추울 것으로 보았다.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www.nfm.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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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입동이다. 24절기는 언제나 약간 서두르듯 찾아오는데 그래서 좋다. 미리 준비할 수 있으니까. 이 글을 쓰는 11월 3일의 날씨는 서울 15.4도. 니트 윗도리에 트렌치코트를 껴입고 한쪽 어깨에 노트북이 든 가방을 메고 걷다 보면 더워서인지 무거워서인지 나이가 들어서인지 운동부족인지 약간 숨이 차고 땀이 나지만 나흘 뒤엔 찬바람이 쌩쌩 불어닥칠지 모를 일이다. 그나저나 너무 한쪽으로만 가방을 멨나. 어깨가 아프다. 한 달쯤 전부터 눈여겨 봐둔 백팩을 고민 없이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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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를 준비해본 사람이라면 겨울이 시작되는 이 시기가 다른 의미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이 시기만 되면 한 편의 완성된 글을 손에 쥐고 있어야만 할 것 같고, 그게 없으면 불안하고, 얇은 종이 뭉치에 지나지 않는 그것에 희망을 걸어보기도 했던 사람이라면. 대부분의 신문사에서는 12월 초부터 중순에 이르기까지 공모를 마감한다. 숱한 지망생들은 한 해 농사를 수확하듯 그동안 지은 글을 각 신문사 공모 양식에 맞춰 우편으로 보내거나 직접 제출한다. 나는 매해 새로운 글을 쓰기도 했지만 여의치 않으면 그해에 떨어진 글을 고쳐서 이듬해에 다른 신문사에 보내기도 했다. 직원의 실수로 어딘가에 떨궈져 심사자의 손에조차 들어가지 못했을 경우를 생각하면서. 매해 같은 글을 조금씩 고치는 버릇은 그때부터 길러진 걸지도 모르겠다. 2020년 겨울, 나는 소설을 모은 책 『겨울특집』을 준비하고 있었다. 지난 2018년 8월에 만든 『여름특집』, 같은 해 9월에 만든 『가을특집』에 이은 세 번째 소설집이었다. 각각 다섯 편의 단편소설을 실었는데 대부분 이십 대 중반부터 십 년 넘게 이어진 습작 시절에 쓴 것들이다. 남들은 창피해서 쳐다보지도 않는다는 오래전 습작을 나는 매년 꺼내서 고쳐보곤 했다. 어떻게 좀 해볼 수 없을까? 다시 살려볼 수 없을까? 이제는 그럴 만한 소설이 남아 있지 않다. 새로 써야 한다. 백지 앞에서 자주 머뭇거린다. 이제는 신춘문예를 준비하지 않아도 되는데, 누군가에게 심사받기 위해 쓰지 않아도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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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재학 중에 한 공모전으로 등단해서 몇 년 뒤 한국을 대표하는 소설가로 이름을 알린 작가가 있다. 내 또래이면서 그가 등단한 공모전에 나도 투고한 적이 있어서 그때부터 이름과 작품을 잘 알고 있었다. 몇 년 전 그가 쓴 에세이를 읽다가 어느 장면에서 오랫동안 멈추어 생각에 잠겼던 기억이 있다. 그가 등단하고 얼마 안 돼서 고향에 내려갔을 때 마을 입구에 등단을 축하하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는, 뭐 그런 장면이었다. 바로 그 장면에서 난데없이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왜였을까. 왜 그 장면이었을까. 그는 그 후로 발표하는 작품마다, 출간하는 책마다 주목을 받았고, 문학상을 여러 차례 수상했으며, 어떤 소설은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흔히 말하는 성공한 작가의 길을 걸었는데 그 시작부터 지나치게 대대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플래카드라니. 플래카드라니……. 그리고 그 대대적인 시작이 있었기에 그가 그런 작가가 된 게 아닐까 하는 모종의 의심이랄까, 어디까지나 질투에 가까운 감정이겠지만, 그런 게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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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출판의 세상에서는 작가가 몇 년도에 어디서 등단했는지 따위가 중요하지 않은 것 같지만 그 바깥세상의 사정은 다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어디가 안이고 어디가 바깥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기준으로 보자면 독립출판이 안, 한때 내가 그렇게 들어가고 싶어 했던 문단이라는 곳이 바깥이 되려나? 하지만 사회제도적으로 보자면 제도권 안에 있는 게 문단, 바깥에 있는 게독립출판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저 안은 여전히 출신에 따라 등단 작가인지 아닌지가 갈리고, 선후배와 동료 집단이 갈리고, 또 다른 어딘가에서 정식으로 등단한 평론가가 비평을 하고, 그게 정식 문예지에 실리고, 이런저런 상의 후보에도 오르고, 수상 작품집에 실리고 또……. 이 일련의 시간도 세상에는 분명히 존재하는데, 마치 평행우주처럼 나와는 끝내 만날 수 없는 것이지 않을까. 며칠 전 팟캐스트를 녹음하다가 진행자로부터 뜻밖의 질문을 받았다. 문예창작이나 국문학 전공자들은 독립출판하는 것을 꺼려 하지 않느냐, 이런 질문이었는데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아서 매우 신선했다. 그런가? 문학 전공자들은 독립출판을 부끄러워할까? 왜? 그리고 왜 나는 그것에 대해 생각해보지 못했을까? 아, 역시나 친구가 없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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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질문. 지금이라도 어딘가에 투고하고 싶은 생각은 없는지? 정말이지 이런 표현하고 싶지 않지만 ‘지나간 세월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너무 많이, 너무 오래 겪은 실패담이다. 다시 해보고 싶단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상금을 타고 싶단 생각은 들지만…… 못 탄다. 그건 내 돈이 아니다. 그 상금을 쪼개서 투고한 지망생들에게 고르게 나눠주는 공모전이라면 생각해보겠다. 소설을 쓰고 싶은 마음은 변함이 없지만 이제는 공모 소식을 알아보지도, 누가 당선되었는지 찾아보지도 않게 되었다. 공모전 당선이라는 타이틀이 한 작가 지망생에게 영광인 것은 여전하지만 내 세계에선 별로 중요하지 않아졌다. 한때 신인이었고 주목받는 젊은 작가였으나 이제는 심사자 명단에 오른 작가의 책도 읽지 않게 되었다. 아니, 사실은 그냥 핑계일 뿐 요즘은 책 자체를 잘 읽지 않는다. 한 권을 들고 시작부터 끝까지 단숨에 읽는 책도 점점 줄고 있고, 글을 쓸 때 필요한 책이 아니고서는 시작조차 쉽지 않다. 책이 재미없는 게 아니라 내가 책에서 재미를 못 느끼고 있다. 이런 내 모습을 보면 과연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나? 싶지만 간혹 어떤 책을 만나면 아, 아직 책을 좋아하고 있군, 하고 마음을 쓸어내린다. 이미 알고 있거나 새로 알고 싶은 작가의 글을 찾아 읽으며 그들이 꾸준히 구축해 나가는 세계를 들여다보는 일은 여전히 즐겁고, 나도 계속해서 쓰고 싶게 한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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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1일부터 14일까지 서울아트북페어 ‘언리미티드 에디션’이 열린다. 코로나19의 추이를 가늠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해 이번에는 참가팀의 수를 줄여 100팀이 선보이는 신간 100종의 전시와 판매를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동시에 진행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독립출판 행사 특성상 참가팀을 줄이면 관객도 줄고 관심도 덜 받는 것 아닐까 싶었다. 애초에 독립출판이란 것에 관심 있는 사람만 이 행사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그들은 대부분 독립출판 작가, 제작자이기도 했으니까. 그 바깥, 저 너머의 사람들에게도 닿을 수 있을까. 한편으론 이번에야말로 오직 책을 만나러 온 사람에게 온전히 책만 보여줄 수 있는 자리가 되지 않을까 기대도 되었다. 책과 독자가 1:1로 만나는 자리에서 과연 몇 명이나 눈을 맞추고 손을 내밀어줄까. 너무 외롭게 있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