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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킹맘 Nov 26. 2020

잃어버린 둘째의 권리를 찾아서

사랑해서 미안하고, 미안하니까 더 사랑해.

내가 둘째를 낳던 2017년 즈음에, 어디서 시작됐는지 모를 이런 분석이 세간에 돌았다. 그 내용인즉슨 첫째가 부모로부터 사랑받고 자라다가, 어느 날 엄마가 둘째를 안고 집에 나타나면, 첫째는 마치 남편이 첩을 데리고 들어온 것을 목격한 정부인과 같은 감정을 느낀다나 어쩐다나. 그래서 둘째를 낳는 경우 첫째가 퇴화하거나 이상행동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누가 분석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꽤나 생생하고 있을 법한 분석이라 나는 크게 의문을 가지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덕에 나는 임신기간 내내 둘째를 낳았을 때 첫째가 받을 충격에 심취해 고민했고, 둘째가 태어난 그날부터 첫째의 눈치를 살뜰히 살폈다.


첫째가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나는 둘째를 낳자마자 조리원을 마다하고 친정으로 향했다. 그리고 한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산모의 몸으로 아침마다 첫째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하원하면 놀아주며, 가끔은 첫째와 주스 한잔을 곁들인 데이트를 즐기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 몸은 피곤해졌고, 둘째는 많은 시간을 아빠와 보내게 되었다. 덕분에 둘째의 출현에도 불구하고 다행히도 첫째는 별다른 위기(?) 없이 잘 지나갔는데, 어제 문득 둘째가 충격 고백을 했다.


어제의 상황은 대략 이렇다. 퇴근해 보니 첫째가 유치원에서 피곤했는지 이미 잠들어 있었고, 혼자 놀기 심심했던 둘째는 엄마를 격하게 반겼다. 옆에 와서 안기고 말 걸고 세상 귀엽디 귀여운 자태로 엄마에게 접근했는데, 엄마는 뒤늦게 저녁식사를 해야 했고, 저녁식사를 하며 남편, 부모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둘째가 소외되어 소리 없이 식탁을 떠나 어디선가 놀고 있었다. 식사를 마치자 한층 아래인 우리 집으로 내려오면서, 내가 안고 내려올 땐 기분이 한창 좋아졌는데, 내가 "엄마가 우리 땡떙이 많이 커서 이제 힘들어서 못 안아주겠다"라고 말하며 침대에 내려주자, 그때부터 나를 떠나 아빠에게 싹 붙어 버렸다. 심지어 나에게는 등을 돌리고, 아빠가 화장실이라도 갈리치면 울면서 매달리고 "엄마는 정말 싫어"라는 발언까지 서슴지 않는 게 아닌가. 그래거 억울한 마음에 내가 "땡땡아 너 엄마한테 왜 그러는 거야"라고 물었더니 뜻밖에도 우리 딸이 하는 말이 "엄마가 나 아기 때 쭈쭈 안 줬잖아. 아빠가 더 많이 줬잖아, 그리고 나 3살 때 어릴 때도 안 안아줬잖아"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물론 네 살배기 우리 둘째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눈치도 빠르고, 언어 구사도 남들보다 다소 유창한 편이긴 하지만, 둘째의 신생아 시절, 첫째를 내가 돌보기 위해 유축해서 남편에게 먹이게 한 일, 아이들을 안을 일이 있으면 내가 첫째를 안아주고 둘째를 남편에게 맡겼던 일을 둘째가 이렇게 소상하게 기억하고 있을 줄이야. 둘째의 이 말 한마디가 나에게는 지난 3년간 둘째와 함께 놀아주지 못했던 순간들이 주마등같이 스쳐가며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마음이 쓰라렸다.


그렇다. 나는 두 아이의 육아에 있어 그렇게 몰빵 하지 말았어야 했고, 당시 나의 행동을 후회한다. 첩과 정부인의 비교만 해도, 지금 다시 곱씹어보면 우리 사랑스러운 둘째는 결코 첩이 아니며, 첫째도 결코 나의 정부인이 아니다. 정부인과 첩은 위계상 상하관계에 있고, 오늘날의 일부일처제를 공유하는 일반 사람들의 인식에 비추어 보면 정부인은 적절하고 첩은 부적절한 느낌이기 때문이다. 첫째가 시기적으로 나에게 먼저와 준 아기이기는 하지만, 첫째에 비해 둘째가 조금이라도 부적절하거나 덜 사랑받아야 할 이유는 단언컨대 하나도 없다. 


당시 둘째가 어려서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던 내 잘못이 컸다.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어린 시절 익힌 지식은 계속 사용하지 않으면 쉽게 잊혀지지만 감정은 잘 잊혀지지 않는다. 더욱이 엄마가 나를 두고 언니만 안아주고, 먹여주고, 재워줌으로써 둘째가 느꼈을 서운함은 둘째가 아직까지 기억하는 것만 보아도 매우 강렬했을 것이다. 첫째를 둘째의 출현으로 인한 충격으로부터 전적으로 보호하기보다는, 충격에 자연스럽게 노출시킴으로써 결국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도록 했어야 했다. 굳이 변을 하자면, 나도 엄마는 처음이라.. 몰랐다. 


어제의 아침드라마스러운 모녀의 말다툼은 결국, 엄마가 사과하고 둘째의 눈이 스르륵 감기는 그 순간까지 엄마가 열심히 책을 읽어주고 놀아주는 것으로 평화롭게 잘 마무리되었다. 아이가 아직 잠들어 있는 시간에 일찍 출근을 해버려서 오늘 아침 컨디션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둘째가 어제의 서운함을 빨리 잊고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언젠가 내 둘째 딸이 이렇게 후회하는 내 마음을 알아줄 수 지 모르지만, 이것 한 가지만큼은 알아줬으면 좋겠다. 엄마가 언니 못지않게, 본인도 깊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아니, 엄마가 그릇이 작아 평생 남편 한 명 사랑하기도 벅찬면이 있지만, 두 명의 사랑스러운 공주님이 와주셨으니, 엄마가 조금 더 힘을 내보려고 하고 있다는 것과, 엄마를 꼭 닮은 딸로 태어나줘서 너무나도 고맙다는 것, 또 본인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까지 부디 다 알아주면 안 되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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