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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킹맘 Nov 24. 2020

워킹맘에게 보내는 소소한 위로

 위로라고 쓰고 응원이라 읽겠습니다.

나는 좀처럼 위로를 잘 못한다. 누군가가 슬픔에 잠겨 엉엉 울고 있으면 어색하게 손을 올리거나 등을 도닥이며 '괜찮아'라고 말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어찌하면 좋을지 감이 잘 안 온다. 내가 위로를 잘 못하게 된 데에는 내가 위로를 자주 건네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영향일 미친듯하다. 나는 나 스스로에 대한 위로도 잘 못하는 편이다.


언제부턴가 위로는 사치처럼 느껴졌고 무책임한 행동이라는 생각조차 들었다. 내가 러닝머신 위에서 죽을힘을 다해 뛰고 있는 상황에서 누군가 '힘들지?'라고 말하는 것은 듣고 싶지 않았다. 당장 러닝머신을 끄고 더 이상 힘들게 뛰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당장 만들어 줄 것이 아니라면, '힘들겠구나', '다리가 아프겠구나'라는 내 슬픈 상황에 대한 품평은 듣고 싶지 않았다. 그건 나의 현실에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는 무책임한 행동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내가 굳이 누군가의 위로에서 매몰차게 등을 돌린 것은, 나의 힘들었던 현실은 내가 그토록 바라는 여정의 어딘가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고, 그 현실에서 나를 구원할 사람 또한 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정나미가 똑 떨어진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도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말로 건네는 손쉬운 위로는 전혀 어렵지 않다. 말 한마디와 따뜻한 포옹이 머 그리 어렵겠는가. 반면, 정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다면, 나의 위로는 얼음처럼 얼어버리고,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맨손으로 땅을 파거나 억만금을 들여 포클레인을 대동해서라도 그 사람을 수렁에서 끌어내고 싶을 것이다. 위로할 시간 따위는 없다.


여기서 내 판단이 잘못된 것 같다. 왜냐하면 내가 맨손으로 땅을 파 든 포클레인을 대동하든 타인을 수렁에서 끌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내 꿈을 이루기 위해 수렁으로 들어갔고, 힘들게 스스로 수렁에서 걸어 나왔듯이 타인의 선택은, 그로 인한 타인의 인생은 타인만이 좌지우지할 수 있다. 어쩌면 위로는 주어진 인생과 문제적 상황의 주인공이 아닌 타인이 어려운 상황을 지나고 있는 주인공에게 보낼 수 있는 유일한 응원 인지도 모르겠다.


워킹맘이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바로 피곤함과 무력감이다. 가정과 직장에서 일은 쉴 새 없이 쏟아져서 하루 종일 발은 동동거리는데, 좀처럼 내 마음처럼 일이 흘러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몸과 마음이 동시에 지쳐버린다. 주중에 일을 하고 주말엔 밀린 육아와 가사를 하다 보면, 나만의 온전한 휴식시간은 잊혀진지 오래이다. 며칠 잘 버티다 체력적으로 번아웃이 와서 주저앉아 버리기도 하고, 컨디션이 들쑥날쑥하다 보니 아이한테 화풀이를 하기도 하고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하며 멘털조차 흔들린다. 그러다 보니 우울감을 경험하는 워킹맘들을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굳이 워킹맘들을 위로하고 싶지 않다. 내가 고시공부를 하던 시절 한 번씩 지쳐서 눈앞의 어떤 책도 읽히지 않는 시기가 오면 찾아뵙던 교수님이 한분 계셨다. 부드럽지만 날카로운 눈매의 교수님은 내가 찾아가면 언제나 주스를 한잔 주시며 내가 하는 넋두리를 들어주셨고, "교수님, 법조인은 제길이 아닌가 봐요."라고 긴 이야기를 마무리하면, 별다른 이야기 없이 "지금 당장 집에 가서 자, 그리고 그다음에 다시 얘기하자."라고 하셨다. 물론 이상하게도 바로 집에 가서 실컷 놀다가 한숨 자고 다음날이 되면, 전날 들었던 다소 비극적인 신파는 내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교수님은 아마도 나의 피로는 지친 몸과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내 상황이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굳이 길게 다독이고 위로하는 조차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던 게 아닐까. 


당신이 가는 길은 옳다. 당신의 삶은 어떤 미혼여성이나, 아기를 기다리는 어떤 기혼여성 또는 커리어 복귀를 꿈꾸는 누군가에게는 매일 밤 기도하는 기도제목일 수 있다. 그리고 직업을 가지는 과정에서, 그리고 아기를 가지고 낳아서 키우는 과정에서 당신이 흘렸을 피와 땀과 노력은 모두 당신 인생의 큰 자산으로 돌아올 거라 한치의 의심조차 하지 않는다. 이렇게 옳은 길을 가는 당신이 오늘 매우 힘들고 억울하고 분하고 피곤하고 지친다면, 그저 잠시 쉬어가면 된다. 당신이 길을 잘못 든 것도 아니고, 깊은 수렁에 빠진 것도 아니니 큰일이 아니다. 그저 당장 반차를 내고(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는데 당신이 반차나 연차를 내도 회사가 갑자기 망하는 일 따위는 발생하지 않는다) 집으로 가 한 숨 자면 된다. 아니면 먹고 싶었던 음식을 먹으러 가거나, 만나고 싶었던 사람을 만나라. 사랑하는 사람들도 서로를 그리워할 수 있는 약간의 거리가 필요하 듯이 그렇게 푹 쉬고 나서 집으로 돌아가 당신만을 기다렸을 아이를 꼭 안아보면, 새삼스럽게도 세상에서 제일 예쁜 이 아이를 위해 당신은 세상 그 어떤 일도 해날 수 있는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좀 쉬어가면 어떤가. 멈추지만 않는다면 워킹맘이 가는 실에 실패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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