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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킹맘 Nov 18. 2020

워킹맘의 '워킹'이 어려운 이유

남자들의 세계에서 엄마로서 살아남는 위대한 도전에 함께 하시겠습니까?

살다 보면 뭔가 특별한 이유를 찾을 수는 없지만 그래야 할 것 같은 일들이 있다. 글씨는 오른손으로 쓰고, 밥은 하루에 세 번 먹으며,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할 것 같은 그런 일 말이다. 물론 글씨를 왼손으로 쓰고, 1일 1식을 하며, 아빠가 육아휴직을 하고 아이를 돌보는 집도 얼마든지 있지만 그런 이야기를 주변에 하면,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알 수 없는 "오~"하는 놀람의 감탄사를 마주하게 된다. 누구나 각자의 인생을 살고 있고, 필요한 의사결정을 하며 사는 이 시대에, "다름"이 머 그리 유별날 일도 아니지만, 이 "다름" 때문에 워킹맘은 힘들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회사생활 또는 조직생활은 남자들의 세계였다. 특히나 내가 다녔던 건설회사 같은 경우에는 여자들의 비율이 여전히 채 10%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아주 오래전부터 그래 왔었다. 그래도 지금은 21세기이다 보니 여자 직원이 "명시적"으로 할 수 없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입사 시에도 동일한 기준으로 채용심사를 받고, 승진 시에도 동일한 기준으로 승진심사를 받았으며 취업규칙을 아무리 뒤져보아도 여자인 나에게 불리한 조항은 별달리 찾아볼 수 없다. 20세기가 아닌 21세기에 살고 있는 현실에 사뭇 감사한 마음이 든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여자들이 흔히 말하는 유리천장에 부딪히고, 관리자로써의 문턱을 넘기도 전에 퇴사를 한다. 분명히 입사를 할 때는 남녀 비율을 대충 엇비슷하게는 뽑았을 텐데, 주위를 둘러보면 여자가 몇 명 안 남아있는 현실을 마주한다. 왜일까. 어쩌다 여직원들은 관리자를 넘어 최고 경영자까지 가는 여정에서 자꾸 중도하차하여 여성 등기임원 의무화까지 도입하게 만든 것일까. 여자들은 능력이 안 되는 것일까. 여자들은 게을러서 일까. 여자들은 최고 경영자는 부담스러워서 하고 싶지 않은 것일까.


내가 이 부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고민하게 된 시기는, 내가 관리자 직위로 넘어가야 한다고 느꼈던 시기, 직장생활을 어느 정도 한 어느 시점이었다. 가끔은 임원 회의에도 불려 가고, 내 밑으로 후배들도 꽤 많이 들어왔었다. 나는 친정의 도움으로 두 딸을 키우며 직장생활을 하는 워킹맘이었고, 회사는 아이를 돌보아야 하는 워킹맘의 특성상(나는 굳이 이것이 왜 워킹맘의 특성인지 모르겠다. 워킹대디의 특성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퍽 많은 배려를 해주었다. 예를 들면, 회의를 하던 도중에 4시 반쯤 지나자 콕 집어서, "XX 씨는 아이들 때문에 일찍 가봐야 하지요?"라고 말해준다거나, 외부 손님들과의 저녁식사에는 어련히 알아서 안 불러주는 그 정도의 배려였다. 누군가에게는 정말 고마운 배려일 수 있으나, 나는 왠지 모를 씁쓸함을 느꼈다.   


물론 배부른 소리일 수도 있다. 그리고 단언컨대 나에게 위와 같은 선의의 배려를 베푸신 분들은 결코 악의가 없었다고 믿는다. 당시 씁쓸함의 정체에 대해 고민하던 끝에 누구에게도 책임을 추궁하지 않는 선에서 워킹맘의 워킹이 어려운 이유가 바로 "고정관념" 때문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오른손으로 밥을 먹는 것이 정상이고, 왼손으로 밥을 먹으면 특이한 것처럼, (1) 경제활동은 남자가 해야 하고(신입사원 때는 잘 못 느끼겠지만 40대 정도 되면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여자들이 극히 줄어든다), (2) 아이가 어리면 엄마를 찾기 때문에 엄마는 집에 일찍 가야 하며(집에 일찍 간다는 것의 의미가 하던 일을 던져두고 간다는 것은 아닌데도 말이다. 그리고 아이가 어리면 아빠도 일찍 가야 한다), (3) 팀장이나 사장과 같은 관리직은 남자가 해야 하고(여성 임원 비율은 대기업조차도 터무니없이 낮다), (4) 회사에서 관리자가 되려면 회사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잦은 회식을 감수해야 한다(관리자를 회사에서 물리적으로 버티는 시간으로 뽑는다면 워킹맘은 영원히 관리자가 될 수 없다). 이쯤 되면 누가 21세기에 아직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냐고 화가 날법한데 미안하지만 아직도 회사에 계신 간부 및 임원분들은 대체적으로 이렇게 생각하신다. 왜냐하면 그건 바로 예전부터 이때까지 늘 그래 왔기 때문이고, 그분들이 목격해온 것이 그것이기 때문이다. 위에서 말하지 않았는가. 다들 오른손으로 밥 먹는데 혼자 왼손으로 먹으면 이상하다고.


여자들이 집에서 아이를 낳고 돌보고 키우는 지난 수세기 동안, 남자들은 경제활동을 하고 관리직에 오르며 회사에 충성해왔다. 그리고 그것밖에 경험해보지 못했다. 예를 들면, 어떤 여자가 있는데, 일을 매우 공정하고 효율적으로 처리해서 정시에 퇴근하고, 회식이 잡히면 미리 일정을 조율하여 기꺼이 즐겁게 참석하며, 신선한 아이디어로 조직의 목표를 설정하고 따스한 격려로 조직을 독려하여 목표의 달성을 이뤄내는 그런 "여자"는 좀처럼 보지 못한 것이다(물론 어딘가에 계셨을 수도 있지만 극소수였던 것 같다). 그런데 오늘날 갑자기 워킹맘이 여자이면서 경제활동을 하겠다고 하고,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데 심지어 남자들도 관리하겠다고 하니 이상할 수밖에. 우리는 일종의 문화충격을 겪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을 개선하려면 방법은 딱 하나이다. 워킹맘을 포함한 여자들의 워킹이 기존의 남성 관리자들의 고정관념으로 인해 조금 힘든 것은 현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들이 조금 더 버텨줘야 한다는 것이다. 회사에 다니면서 내가 느낀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성과가 탁월한 사람이 관리자가 되기도 하지만, 끝까지 버티는 사람 또한 관리자가 된다. 워킹맘들이 20년 이후에 이 회사에 들어올 딸들을 정말 생각한다면, 더럽고 치사해서 그만둘게 아니라 열심히 성과를 내고 버텨서 남성 관리자들을 고정관념으로부터 탈피시키며, 결국 그분들의 옆자리를 쟁취해야 한다. 그래야만 여성 간부 및 임원들의 비율이 늘어나면서 다음 세대에는 여자가 경제활동을 하고 관리직을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으며, 회사에 오래 앉아 있는 시간보다는 성과를 확실하게 내는 사람이 인정받는 시대가 올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내가 왜 잔다르크도 아닌데 더럽고 치사한 꼴을 봐가면서까지 그런 희생을 해야 하느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단언컨대, 남을 바꾸는 것보다는 나를 바꾸는 게 훨씬 쉽다. 그런 차원에서 워킹맘들에게 드리고 싶은 한마디는, 그대의 워킹이 고단할지라도 계속 워킹을 하시라는 것이다. 멈추지 않고 하루하루 워킹을 하다 보면 내가 겪은 씁쓸함이나 불편함을 내 딸에게 대물림하지 않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사랑하는 딸에게 장난감도 사주고, 맛있는 간식도 사줄 수 있지만, 여자의 사회생활에 한계를 부여하는 고정관념에 얽매인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꿔줄 수 있다면 그거야 말로 비교할 수도 없는 정말 큰 유산이 되지 않겠는가. 이렇게 스스로를 달래 가며 오늘도 나의 워킹은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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