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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너를 사랑하기로 하자

그리고 너와 나는 서로를 믿어주기로 하자!!

by 워킹맘

꾸준히 브런치 글을 올리지 못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고 산지 조금 되었다. 그래도 나는 풀타임 직장을 가지고 있고 일차적인 노력과 관심은 그 직장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에 있다 보니, 가끔 '아! 브런치에 이런 글을 쓰고 싶다'라는 영감이 오더라도 바로 글로 남기기가 쉽지 않다. 일단 쓰던 서면 먼저, 일단 고객 회의 먼저, 일단 회사일 먼저 챙기다 보면 브런치에 남기고 싶었던 생각이나 감정들이 점점 희미해지는 것이 매일같이 아까울 뿐이다.


그런데 오늘은 뭔가 약간의 시간이 났고 브런치가 쓰고 싶었다. 예전에 쓰려고 생각해 뒀던 주제도 아니고 그냥 매일같이 막내의 어린이집에서 오는 키즈노트 알림장에 달린 아이의 해맑은 모습을 보는 순간, 그냥 최근에 느꼈던 이름 모를 이 감정을 남기고 싶었다.


우리 큰 딸은 이제 4학년의 시작을 앞두게 되었다. 그동안도 배우고 싶은 게 많아 이 학원, 저 학원 보내달래서 보냈던 게 꽤 되어서, 수학 정도는 집에서 혼자 문제집을 풀며 복습했으면 했는데 기어이 수학 학원도 보내달라고 했다. 가끔 만나는 내 친구들의 아이 이야기나, 소셜 미디어에서 올라오는 '7세 고시'를 포함한 대치동 생존기를 듣다 보면 우리 아이만 어떤 준비 없이 이대로 4학년을 맞이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내가 챙겨주지 못한 게 많은데, 수학 학원 하나 더 보내주는 것이 머 그리 대수일까 싶어서 큰맘 먹고 보내주기로 했다.


큰 딸은 확실히 고학년이 되니 달라졌다. 먼저 아직도 엄마랑 자고 싶어 하긴 하지만 방을 하나 달라고 했다. 그리고 방을 직접 꾸미고 매일같이 정리한다. 그렇게 딸의 방은 우리 막내도 감히 어지럽힐 수 없는, 우리 집에서 가장 깨끗한 장소가 되었다. 그리고 조금 무서워하지만 혼자 자려고 노력한다(물론 전혀 시킨 적이 없다). 뿐만 아니라 얼마 전에 나한테 이직 제안이 왔을 때도, 본인이 생각하는 바를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가끔은 딸 같고 가끔은 친구 같은 딸에 가까워지고 있다.


조신한 성격으로 학원 선생님들로부터 찬사(?)를 받는 우리 큰 딸이 다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있다. 바로 내가 이렇게 해 저렇게 해 하는 것을 싫어한다. 수학학원에 가게 된 결정적인 계기도, 내가 수학문제집을 풀었으면 좋겠다고 했고, 수학 문제집을 집에서 풀기 시작했는데, 곱셈 자릿수가 늘어나면서 일종의 버벅대는 모습을 나한테 보이면서 스스로 짜증이 난데에 있었다. 자존심이랄까 자존감이랄까 묘한 감정이 생겨나는 시기에 스스로 자랑스럽지 못한 모습을 엄마한테 들킨 게 마음이 상한 모양이었다.


우리 큰 딸이 유독 좋아하는 말이 있다. 자신의 친구들은 엄마들이 학원을 보내려고 안달이고, 친구들은 학원을 그만두고 싶어 안달인데, 엄마는 학원을 자꾸 못 가게 하고, 자기는 너무 다니고 싶은 것이 우리 집이 이상하다는 내용이다. 딸이 이 말을 유독 좋아한다고 느낀 것은 이 말을 나한테 자주 푸념처럼 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한정된 자원에서 아이 셋을 키워야 하니, 그중 얼마라도 너희가 원하지 않는 것에 쓰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하는데, 큰 딸은 본인이 엄마의 푸시나 관리 없이도 스스로 학원을 다니고 싶어 한다는 사실, 스스로 숙제하며 학원을 제대로 다니고 있다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우리 딸은 이렇게 작은 어른으로 자라나고 있었다.


아이의 인생이 이대로 엿가락처럼 주욱 늘어나 갑자기 스무 살이 되고, 서른 살이 될 걸 생각하면 이 아이가 어떻게 이 세상을 헤쳐나갈 것인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요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미 대치동 트랙에 올라선 아이들도 있고, 부모님이 미국 주식에 상당 금액을 증여해서 성인이 되면 상당한 목돈을 만들어주거나, 부동산을 이미 준비해 놓는 등 부모가 아이들을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것들은 매우 다양한 것 같다. 부모가 무엇을 해주든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뭔가를 더 해주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도 없다. 나는 일을 한답시고 아이들에게 이런 것들을 살뜰히 챙겨서 아이의 인생을 미리 대비해주지 못하는 것에 가끔 마음이 초조해지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이제 작은 어른이 된 우리 딸이 엄마가 챙긴답시고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하라 하면 싫어할 것이 걱정되기도 한다. 물을 끔찍이도 무서워했던 아이가 이제 접영까지 하고, 피아노가 어려워 한차례 포기했다가 재개하여 이제는 콩쿠르에 나가서 상도 받는 순간에도 본인 '스스로' 해냈다는 데에 굉장한 뿌듯함을 느끼는 것이 내 눈에도 보였기 때문이다. 조금 이끌어주면 완벽해질 것 같으면서도, 조금 흔들어버리면 깨질 것 같은 아이의 섬세함은 나를 한동안 고민하게 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딸을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굳이 딸의 인생을 계획하고 이끌지 않기로 결심한 데에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독립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좋아했다는 이유도 있다. 우리 엄마는 따스한 가정을 만들어 주셨고, 스스로 많디 많은 책들을 읽으면서 늘 인생의 지혜를 나누어 주셨지만 정작 어떠한 결정을 내릴 때에는 내가 하게 내버려 두셨다. 학원을 다니기 싫다면 끊어주고, 무슨 대회를 나가겠다면 데려가 주시고, 대학교나 직업을 선택할 때에도 내가 물어보는 것들에 대한 답변 외에는 결코 먼저 나서지 않으셨다.


엄마가 이끄는 데로 가면 편안하지만, 정작 그 공은 엄마한테 있다. 반면, 엄마가 굳이 이끌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어딘가로 가게 되면 그 공은 아이가 독차지할 수 있다. 결국 마지막에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라는 말을 하면서 아이의 공을 탐내는 일 따위는 전혀 만들고 싶지 않아서 나는 아이와 내 인생 사이에 선을 두고 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그 선 뒤에서 아이가 노력하고 바둥대며 헐떡이는 모습을 응원하고 바라보며 사랑해 주기로 했다.


그렇다고 완전히 손을 놓을 생각은 아니다. 아이의 목적지를 내가 모르기 때문에 내가 차에 태워서 어딘가로 데려갈 수는 없지만, 아이가 스스로 목적지를 찾는다면, 나는 기꺼이 내비게이션이 되려고 준비 중이다. 수학학원을 다니고 싶다면, 열심히 학원비를 벌고 좋은 학원을 같이 알아봐 주고 손 잡고 선생님께 찾아가 주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아이가 목적지를 고르는 과정에서 엄마가 치열하게 버티는 커리어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이런 일 저런 일을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간접 경험을 늘려줄 생각이다.


첫째를 이렇게 키우면, 아마 둘째도, 셋째도 그 길을 가게 될 것이다. 어쩌면 이미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의 인생을 걱정하거나, 무언가 만들어 내려고 하기보다는 오늘도 자신의 하루를 오롯이 견디며 성장하며, 엄마와의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는 지금의 아이들을 그대로 사랑해 주고 싶다. 그리고 그 아이가 잘 자랄 것이라는 사실을 단 한순간도 의심하지 않는 강력한 믿음을 보여주고 싶다. 그렇게 아이들도 엄마가 기꺼이 언제든 자신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아이도 믿어주고, 힘들 때든 좋을 때 든 엄마를 찾아주면 기쁠 것 같다. 얘들아! 보고 있나? 우리는 이렇게 서로를 믿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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