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기만 하던 당신에게..
아나운서로서 정말 중요한 덕목이 경청이었다. 출연자의 말, 인터뷰이의 말을 귀 기울여 들어야했고, 그들이 마음을 열고 더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마음을 다해 따뜻하게 반응해주어야 했다. 호기심을 갖고 끊임없이 질문해야 했다.
아나운서는 말을 많이 하는 직업 같지만 ‘내 이야기’는 하지 않는 직업이고, 사실 말하기보다는 ‘듣기’를 더 많이 하는 직업이다. 10여 년 동안 방송하며 이런 것이 몸이 익다보니 일상에서 대화할 때도 잘 듣고 잘 공감하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와의 대화를 즐겁게 여겨주었고, “처음 만난 사람한테 이런 이야기까지 털어놓기는 처음이에요. 혹시 저한테 최면이라도 거신 거 아니예요?(웃음)” “무슨 마법의 가루라도 뿌린 것 같아요. 상담소에 갔다 온 기분인데요.”라며 자신의 이야기를 술술 털어놓은 것을 신기해했고, 또 경청해준 나에게 고마워했다. 나는 ‘경청’이 방송을 하며 생긴 나의 최고의 선물이라며 뿌듯했고 때로는 어깨가 으쓱하기도 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런 대화를 마치고 돌아오면 마음이 헛헛했다. 상대방은 많은 이야기를 하며 속이 후련해지기도 하고 감정의 정화도 느끼는데, 내 마음은 조금씩 메말라가는 느낌이었다. 왜일까. 이런 대화가 반복될수록 나는 상대에 대해서 너무도 잘 알게 되는데, 상대는 여전히 나에 대해 모른다는 것이 갈증의 원인이었다. 관계의 균형이 맞지 않는 것이다. 마치 시소를 탈 때 올라갔다 내려갔다 해야 하는데, 나는 늘 아래에서 혼자 상대를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런 시소타기가 즐거울 리 없었다.
나도 내 이야기를 조금씩 해야 서로 알아갈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그래서 이제 나도 내 이야기를 해봐야지 생각했다. 그러나 그게 마음먹은 대로 쉽게 되지는 않았다. 나는 직업병으로 상대의 말을 끊지 못하고 공감하고 맞장구치며 이야기가 마무리될 때까지 듣는 편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대부분 끝도 없이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적당히 자신의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너는 어때?”라고 물어봐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나는 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하며 들었는데, ‘너 어떻게 지내는지 정말 궁금해’라는 마음으로 나에게 질문을 해주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상대가 나를 궁금해 할 때까지 기다리다가 결국 또 내 얘기는 못하고 만다.
이런 고민을 하고 있자니 내 친구가 생각났다. 중학교 때부터 친구였는데, 그 친구는 말수가 적고 얌전한 친구였다. 늘 잘 들어주고 잘 받아주었다. 워낙 말이 없다보니 그 친구와 함께 있을 때는 주로 내가 많은 말을 하게 된다. 내가 말을 하지 않으면 정적이 흐르는 것이 어색해서 나는 계속해서 내 이야기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와 그렇게 대화를 하고 돌아간 그 친구가, 지금 나처럼 ‘헛헛함’을 느끼지 않았을까. 자기도 풀고 싶은 이야기가 많이 있을 텐데,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만 마음속에 가득 쌓여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친구는 말이 전혀 없는 숙맥은 아니었다. 내가 궁금해서 여러 가지 질문을 하면 천천히, 그리고 명료하게 자신의 생각, 가치관을 이야기했고, 때로는 눈물을 흘리며 아픔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단지 자신이 이야기할 수 있는 상대의 ‘진정한 관심과 준비’가 필요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상대를 만날 수 있으면 참 좋을 것이다. 하지만 숱한 시도해보며 깨달은 것은 그런 상대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경청’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어딜 가나 항상 말하는 사람은 항상 말하고, 항상 듣는 사람은 항상 듣는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의 입을 막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차라리 듣기만 했던 사람이 입을 열어보자. 말할 수 있는 적절한 타이밍은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 내가 그 타이밍을 만들어보자. 말 좀 끊으면 어때. 좀 끼어들면 어때. 나도 내 얘기 좀 하면 어때.
끝도 없이 자신의 이야기만 하는 상대에게, 내 이야기도 적절히 섞어가며 서로 알아가는 것, 관계의 균형을 맞추는 것은 장기적으로 굉장히 중요하다. 나는 좋은 마음으로 들어주어야지, 맞춰주어야지 할 수 있지만 한 쪽으로 쏠린 관계, 만날 때마다 일방적으로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는 관계는 결코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참는 게 능사가 아니다.
건강한 나를 위해, 건강한 소통을 위해 내가 결단하고 실천하는 방법은 ‘나 중심으로 생각하기’이다. 그동안 ‘이런 이야기는 자랑으로 들리겠지?’해서 참고, ‘이건 너무 사소한 이야기지?’해서 참고, ‘이런 주제에는 별로 관심이 없겠지?’해서 참았다. 이렇게 상대 입장을 너무 많이 생각하니 결국 내 이야기를 못하게 된다. 그냥 그런 거 다 떠나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자. 내가 관심 있는 이야기에 상대도 관심 있게 들어줄 거라고 상대를 믿어보자. 그리고 혹시 관심 가져 주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나를 믿어보자.
또 한 가지 방법은 ‘적절한 타이밍에 끼어들기’다. 다만 무례하지 않게, 상대와 비슷한 주제로 끼어드는 것이다. 상대의 이야기에 비슷한 경험이나 생각이 있다면 “어, 그랬구나! 나도 그 마음 알 것 같아.”라고 하면서 나의 이야기를 곁들이는 것이다. 혹은 다른 경험이 있다면 “아 그랬구나, 나는 이랬었어.”라고 하면서 자신의 다른 입장을 나눌 수 있다. 그러면 상대의 말이 다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새로 내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서로 더 많은 것을 공감하고 더 깊은 이야기로 이어질 수도 있다. 나는 말을 끊은 것이 매우 무례하다는 생각으로 늘 모든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내가 이야기할 타이밍을 찾았는데, 그런 좋은 타이밍은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지레 겁먹고, 말 끊으면 안 되지 라고 생각할 필요 없다. 적절하게 맞장구치며 치고 들어가는 것도 때로는 필요하다.
나는 그동안 배워왔던, 또 내가 가르쳐왔던 경청과 전혀 다른 것을 실천하고 있다. ‘상대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들어주어야 한다.’ ‘상대의 중심에서 생각하고 말해야 한다.’ ‘말을 끊지 말고 끝까지 경청해야한다.’
좀 더 스스로에게 솔직하고 건강한 내가 되기 위해, 당당하게 나를 표현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이제 나는 청개구리처럼 이것들을 반대로 실천해보고 있다. 그러면서 조금씩 내 목소리를 더 많이 내게 되었고, 대화를 할 때도 내 마음이 더 시원하고, 상대도 나를 알고 이해해주는 느낌에 새로운 기쁨을 느낀다.
늘 듣기만 하던 나라면, 나를 표현하는 것이 어색하고 부끄러웠던 나라면 목소리 한 번 높여보자. 나 중심으로 생각해도 괜찮아! 말 좀 끊어도 괜찮아!
이 매거진의 글은
' 하고 싶은 말을 센스있게'
<말하기의 디테일>
의 일부 연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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