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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미정 Nov 23. 2018

자존감과 자신감에 필요한 것

나를 소중히 여기는 법

자존감과 자신감은 다르다. 자존감은 나를 사랑하고 존중해주는 마음이고, 자신감은 자신의 역량으로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다.     


자신감에는 준비가 필요하고 숙련이 필요하다. 어느 한 분야에 전문가처럼 단련이 되면 그 분야에서는 자신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또 그 분야의 전문가도 전혀 생소한 분야에 오면 자신감이 전혀 없을 수도 있다.      

능숙하게 방송을 진행하던 아나운서도, 영어로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땀을 뻘뻘 흘릴 수 있다. 기계를 다루는 엔지니어가 그 분야에서는 척척 박사일지라도 남들 앞에 서서 발표를 하라고 하면 벌벌 떨 수도 있다.     


나는 자신감이 많은 사람인줄 알았다. 방송 진행10년을 하면서 수천 명 앞의 무대에도 서봤고, 긴장감 넘치는 생방송도 매일 진행했다. 또 내가 고민했던 스피치와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교육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감과 용기를 불어넣어주려 했다. 그런데 그런 나의 자신감이 산산이 해체되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몸도 마음도 지쳐 휴직을 하고 운동을 먼저 시작하려던 때였다. 나름 자신 있는 탁구를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어 동네 주민자치센터에 등록을 알아보았다. 그런데 탁구가 워낙 인기가 많아 신규 회원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몸을 움직이는 활동 중 등록이 가능한 것은 ‘재즈댄스’였다. 나는 몸치이고 춤을 배워본 적도 없지만 새롭게 도전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고 주민센터에서 주부들과 함께 하는 정도라면 충분히 따라갈 수 있을 것 같아 등록했다.     


그러나 내 예상과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주부들이었지만 그들의 몸동작은 능숙했다. 워킹 연습을 할 때는 그들의 걸음걸이와 표정에서 모델과 같은 포스가 느껴졌다. 어려운 아이돌 그룹의 춤도 멋지게 소화해내는 모습에 감탄마저 나왔다.      


나는 맨 뒷줄에서 이쪽저쪽 눈치를 보며 어설프게 따라 하기 바빴다. 워킹연습을 할 때는 이상한 걸음걸이로 앞으로 나가는 것조차 너무 부끄러웠다. 춤 동작을 천천히 하나하나 알려줬음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따라 하기가 어려웠고, 음악에 동작을 연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이런 부끄러움, 바닥으로 떨어진 자신감을 경험한 게 도대체 몇 년 만인가.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매 번 주변을 살피며 겨우 흉내만 내는 어설프고 초라한 내 모습이 참 낯설고 싫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자신감이란 내가 절대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상황에 따라, 주제에 따라 하늘과 땅 차이로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준비가 된 만큼, 연습과 반복과 숙련이 된 만큼 생기는 것이 자신감이다. 스피치 교육을 할 때 자신감이 없는 사람에게 ‘자신감을 가지세요!’라는 말을 쉽게 해왔던 나를 반성했다. 자신감은 마음만을 바꾼다고 갑자기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방송을 10년 했으니 당연히 사람을 만나고 말을 하는 것에 있어 자신감이 있을 수밖에 없고, 춤을 추던 주부들은 4년, 5년을 빠짐없이 일주일에 세 번씩 연습하고 또 연습했으니 그런 멋진 포스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마트에서 계산할 때 그런 걸 종종 느낀다. 대형마트 계산대에 있는 아주머니들에게 엄청난 포스가 느껴진다. 일의 속도, 능숙한 손놀림, 고객을 압도하는 말과 목소리, 그 와중에 고객과 대화를 나누는 유연함까지. 그들이 처음 시작할 때 모습은 어땠을까. 혹은 입사하며 자기소개를 할 때의 모습, 혹은 그들 자녀의 교사 앞에서의 모습은 어떨까. 다른 곳에서는 그 포스가 사라질 수도 있다. 하지만 몇 년 동안 숙련되어온 자신의 자리에서는 그 능숙함에서 아우라가 저절로 묻어난다.      


자신감이란 그런 것이다. 내가 준비하고 단련된 만큼 보여줄 수 있는 것, 내 안에 쌓인 내공만큼 저절로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스피치 코칭을 하면서 자신감이 없어 고민이라고 찾아온 사람들에게 내가 첫 번째로 하는 것은 같이 철저히 준비하는 것이다. 의사의 논문발표, 회장의 이임사 등을 함께 준비했다. 논문의 내용까지 같이 살펴보고 그것이 영어이면 잘 모르는 영어의 뜻을 묻고 찾아가며 핵심을 명료하게 발표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또 준비했다. 회장의 이임사를 준비할 때는 회장 임기 동안 있었던 수많은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그 중에서 인상 깊은 이야기를 찾아 함께 정리하고, 그것을 재미있게 스토리텔링으로 전하는 연습을 반복했다. 발표만 하면 온 몸이 빨개졌던 그 의사는 발표 후 처음으로 엄청난 칭찬을 들었다고 했고, 회장은 워낙 연습을 많이 해서 준비한 원고를 보지 않고 자연스럽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고 했다. 내가 해 준 코칭에 비밀의 묘약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난 단지 그들과 ‘철저한 준비’를 함께 했을 뿐이었다.       

한편 자존감은 자신감과 많이 다르다. 자신감은 내가 준비된 만큼 보여주는 것이어서 상대나 분야에 따라 상대적이지만, 자존감은 ‘나를 존중해 주는 마음’이기 때문에 분야나 상대에 따라 크게 요동치지 않는다. 역량이 뛰어나서, 성과를 내서 자존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를 사랑하고 아껴주는 것이다.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배우 손예진이 연기했던 윤진아의 모습을 통해 자존감의 회복이 저런 것이 아닐까 느낀 적이 있다. 주인공 윤진아는 회사 여직원 사이에서 별명이 ‘윤탬버린’이다. 상사들의 온갖 비위를 다 맞춰주고, 부당한 대우도 참는다. 회식자리에서는 상사들의 테이블을 돌며 고기를 굽고, 러브샷도 흔쾌히 응해준다. 노래방에서 불쾌한 스킨십도 참고 넘어간다. 여직원들은 윤진아를 보며 눈살을 찌푸리고, 상사들은 그런 그녀를 예뻐하면서도 자신들 필요에 따라 쉽게 이용해먹는다.     


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그러던 그녀가 회식을 거부하고 자기 목소리를 당당하게 내기 시작했다. 그녀의 실력이 변했거나 상황이 변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원래 똑똑하고 능력 있는 직원이었다. 바뀐 것은 그녀의 자존감이었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해 주는 남자에게 처음으로 ‘온전한 수용’을 경험한 것이다. (어떤 여성인들 정해인과 같은 남성에게 그토록 예쁨을 받는다면 자존감이 100까지 차오르지 않겠냐만은) 그녀는 자신이 정말 소중하다는 걸, 있는 그대로 사랑스럽다는 걸 경험했다. 꼭 연애를 해서 바뀐 것은 아니다. 그녀는 이전에 다른 남자친구와 오래 연애를 했지만 그때도 여전히 그녀는 ‘윤탬버린’이었고 연애의 자존감도 바닥이었다. 찌질한 전 남자친구와 깨끗하게 이별도 못하고 질질 끌며 창피한 모습까지 다 보여줬던 이 남자에게 자신의 모습 그대로 수용 받고 사랑받으며 달라진 것이다. 그녀는 회사에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노래방에서 탬버린치고 불쾌한 스킨십 참는 그런 거, 저 이제 그딴 거 안 하려구요. 지겨워서 못해먹겠어요.” 라고 부적절한 식사자리에서 명료하게 거절하고 자리를 나온다. 원치 않는 2차 회식자리도 당당하게 거부한다.      


이런 그녀의 모습에 상사들은 당황하기 시작하고, 동료 여성들도 하나 둘 용기 내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회사에 이상한 바람이 불자 불쾌한 상사가 윤진아를 불러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며 도대체 달라진 이유가 뭔지 묻는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사람을 도와주고 싶어서요. 그동안 제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모르고 살았거든요. 근데 나보다 날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지켜주려고 애쓰는 어떤 사람을 보면서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 사람이 덜 걱정하게, 안심할 수 있게 내가 내 자신을 더 잘 지켜나가야겠다, 라고”      


자신이 소중하게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하고 나니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법도 알게 된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통해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도 배우게 된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말에 집착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게 된 것이다. 


꼭 남자만이, 상대만이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나의 모습을 온전히 수용해 가면, 내가 나를 존중해 주면 나도 남의 시선보다 내 목소리를 더 소중하게 여길 수 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두려움 없이 표현할 수 있다. 자존감은 내가 하는 수많은 일을 좌우하기 때문에 정말 중요하다.     


나의 멋진 모습과 함께 내가 싫어했던 나의 모습, 실수, 창피하고 찌질한 나의 모습까지 모두 적어보자. 그리고 이 모든 게 나라고, 괜찮다고, 멋지다고 수용해주자. 당당한 표현은 건강한 자존감에서 나오고, 건강한 자존감은 수용과 존중에서 시작된다.      



이 매거진의 글은

' 하고 싶은 말을 센스있게'

<말하기의 디테일>

의 일부 연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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