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미정 Mar 07. 2024

감동의 순간 - 자발적 수면분리

두 딸 엄마의 해외 육아

수면 분리는 두 아이가 어릴 때부터 나의 중대한 과제였다.

잘 때 예민한 편이어서 작은 소리에도 쉽게 잠들지 못하고 잘 깨는데, 어린아이 둘을 끼고 자니 출산 이후 몇 년 동안 잠을 잔 것 같지 않았다. 육체적이 피로와 육아 스트레스가 쌓여 육아 상담을 받으러 간 적이 있는데, 내가 준비해 간 세 가지 질문 중 하나는 수면분리 방법이었다. 당시 두 딸이 다섯 살과 세 살이었는데 둘이 같이 재우면 슬슬 수면 분리를 해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돌아온 전문가의 답은 의외였다.


"엄마가 힘들고 필요하시면 하세요. 근데 아이를 위해서라고 한다면 굳이 서두를 필요는 없어요. 해외 전문가들도 의외로 수면분리에 대해서는 관대해요."


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전문가의 말에 힘을 얻어 구체적인 방법을 모색해 실행해 옮겨보려 했던 것인데... 늘 수면이 부족한 나의 건강상태로 보아 수면분리는 꼭 필요한 것이었지만, 전문가들은 늦은 수면분리에 관대하다는 말에 맘이 약해졌다. 그래, 아이들은 엄마 아빠 옆에서 자야 더 안정감을 느끼겠지.. 생각하며 또 한참을 끼고 잤다.


그러나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중, 절호의 찬스가 찾아왔다. 나라를 옮겨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 살게 된 것! 남편의 발령으로 폴란드에 오게 되었는데, 아이들도 좀 더 컸겠다 수면분리를 시도하기 좋은 때였다. 세 개의 방 중 가장 큰 방을 아이들에게 내어주고, 같이 자고 같이 놀 있도록 꾸며주었다. 분홍색 벨벳 커튼을 달고, 레이스 자수 커튼을 속커튼으로 달아 공주방처럼 아늑하게 만들었다. 자기 전에 아이들의 침대에 누워서 각자 원하는 책을 한 권씩 읽어주고, 기도해 주고, 자장가 음악도 틀어놓는 리추얼도 만들었다. 방에서 나올 때는 무섭지 않도록 천정에 유니콘이 비치는 조명도 켜주었다.


하지만 무서움이 많은 첫째는 새벽에 악몽을 자주 꾸는지 울며 불러대기 시작했다. "엄마아~~~~" 자다 깨서 불려 가면 나와 남편도 피곤해서, "무서운 꿈 꾸다가 깨면 엄마 옆에 와서 자도 돼"라고 알려주었다. 그랬더니 첫째는 새벽마다 우리 방 침대에 와서 잤고, 자다 깨서 아무도 없으니 무서웠던 둘째까지 우리 방으로 달려왔다. 넷이서 좁은 더블침대에 몸을 구겨 잠을 잤다. 결국 불편한 나는 아이들 사이를 비집고 나와 넓은 아이들 방으로 도망갔다. 이 무슨 난장판인가.


몇 달간 시도했던 수면분리를 실패로 끝났고, 결국 나와 남편이 한 아이씩 데리고 잤다. 그랬더니 엄마랑 자겠다고 싸우고 어떤 날은 아빠랑 자겠다고 싸워서, 공평하게 매일 하루씩 바꿔가며 자기로 했다. 그제야 평화가 찾아왔다. 나와 아이, 이렇게 둘만 있으니 자기 전에 쫑알쫑알 이야기도 하고, 살을 비비며 장난도 치고, 책도 읽어주며 오붓한 시간을 보내다 잠들 수 있었다. 나도 침대에서 아이 하나만 끼고 있는 그제야 천천히 아이의 눈을 바라보며 아이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느낄 수 있었다. 솔직히 남편과 두 다리 뻗고 편히 자는 것보다 훨씬 더 행복했다.


해가 바뀌어 아이들이 이제 여덟 살, 여섯 살이 되었는데도 그렇게 수면분리를 못하고 있었다. 이제는 할 생각도 안 하고 있던 어느 날, 주말에 남편이 아이들에게 제안을 했다. "주말에만 너희 둘이 자볼래?" 아이들은 싫다고 했다. "둘이 아침까지 잘 자면, 내일 워터파크 갈게!" 사실 워터파크는 이미 우리 계획 속에 있던 것이었는데, 그걸 몰랐던 아이들은 신이 나서 "둘이 잘래!"라고 크게 외쳤다. 그것이 회유와 보상으로 이루어진 첫 번째 수면분리였다.


워터파크로 회유한 수면분리


그런데 바로 어제, 저녁에 씻고 았던 첫째가 둘째에게 말했다.


"야, 주아야, 오늘 언니랑 잘래?"

"싫어, 엄마랑 잘래. 무서워."

"언니가 기도해 줄게"


겁쟁이 첫째가 이런 제안을 했다는 게 너무 신기했고, 동생이 싫다고 하자 달래 가며 계속 설득하는 모습은 더 신기했다. 사실 수면분리의 실패는 겁이 많은 첫째의 공이 훨씬 더 컸기 때문이다.


엄마들이 수면분리를 간절히 원하면서도 막상 아이가 이제 혼자 자겠다고 하면 엄청난 허전함을 느낀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나는 아직 완전한 분리가 아니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엄마랑 떨어져서 작은 침대에 둘이 나란히 누워 인형을 하나씩 안고 동생에게 포켓몬 책을 떠듬떠듬 읽어주며 둘이 쫑알쫑알 떠들고 의지하는 모습이 정말이지 대견했다. 엄마만 없으면 그렇게 무섭다고 울더니, 둘이서 그렇게 싸워대더니, 이런 날도 오는구나. 둘 낳길 정말 잘했다 싶은 순간이었다.


불을 끄지 말아 달라고 해서 작은 등을 켜두고 인사를 하고 나왔다. 항상 밤에 재우는 게 큰일이었는데, 인사만 하고 방문을 닫고 나오니 혼자만의 시간. 남편은 야근으로 집에 없었고 갑자기 밤에 생긴 자유시간에 얼떨떨했다. 조용한 그제야 내 손톱이 좀 자란 것이 보여 손톱을 깎기 시작했다. 딱, 딱, 딱. 거의 다 깎아갈 무렵 두 아이들이 방에서 쪼르르 나왔다.  


"엄마, 손톱 깎는 소리 때문에 시끄러워서 못 자겠어."

두 아이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그래 니들이 이렇게 순순히 잘 리가 없지.


"그랬구나. 미안. 이제 다 깎았으니까 들어가서 자. 잘 자!"


그러고 나서 나는 책을 읽고 원고를 쓰고 있었다. 이 시간에 일하는 게 가능하다니! 참 신기하고 고요한 밤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두 아이들이 자기 인형 하나씩 들고 또 쪼르르 내 서재로 달려왔다.


"엄마, 같이 자자"

"오늘 너희 둘이 잔다며. 한번 같이 자봐. 엄마 일하고 있어."

"그럼 우리 안방에서 자면 안 돼?"

"안방? 그래, 그럼 둘이서 엄마 아빠 침대에서 자"

"응 엄마, 일 다하면 안방에 와서 같이 자자"

"어? 그래. 다 끝나면 갈게, 둘이 먼저 자"

"엄마 꼭 와야 돼~!!"


결국 그 말에 나는 자정에 두 아이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선잠을 잤다. 둘 다 곤히 잠들어 아침까지 둘이 둬도 될 것 같았으나 아이들과의 약속을 깨고 싶지 않았다. 신뢰가 깨어지면 수면분리는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큰 그림이었다.


자발적 수면분리 도전 첫날


아, 그러고 보니 결국 같이 잤기 때문에 이번 건은 수면분리라고 할 수는 없겠구나. 그래도 둘이서 자보겠다고 스스로 이야기하고 도전해 본 첫날이었다. 도전이라고 하기가 무색하게 연이어 쪼르르 달려 나와 같이 자자고 했지만, 그마저도 정말 귀여웠다. 엄마 아빠 없이 둘이서 스르르 잠든 것도 참 기특했다. 이만큼 컸구나. 2년 전, 기저귀도 못 뗀 둘째를 데리고 폴란드에 왔는데, 그게 아주 먼 옛날처럼 느껴졌다.


사실 요즘은 별로 수면분리를 하고 싶지 않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첫째와 혹은 둘째와 한 명씩 포근한 침대 속에서 실컷 뽀뽀를 하고,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고, 책을 읽어주고, 살갗을 맞대고 부비는 시간이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둘 다 엄마를 찾지 않고 각자의 방에서 자겠다고 하면 조금 서운해지는 순간이 내게도 오려나. 그날이 오기 전에 너희들의 애착을 마음껏 누려야겠다. 사랑해 아그들아.




(메인 사진 © by Westend61 / Cavan Images)

매거진의 이전글 오스트리아 빈에서 만난 훈데르트바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