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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미정 Oct 20. 2023

오스트리아 빈에서 만난 훈데르트바서

비엔나 여행기 2

세 여자의 비엔나 여행, 둘째 날.

다행히 아주 곤히 잤고 아침엔 상쾌하게 일어났다. 가이드 투어가 아침 9시에 시작되기 때문에 늦지 않게 일어나야 했다. 오스트리아는 역사와 예술이 살아있는 도시이지만, 사실 그만큼 잘 알지는 못해서 가이드의 도움을 받아보자고 신청했던 반나절의 인문학 투어였다. 요즘은 한국의 '마이리얼트립'과 같은 곳에서도 예약이 쉽게 되니, 현지의 관광지나 현지 홈페이지가 아니어도 쉽게 예약도 결제도 가능하다(는 걸 이제 알았다).


가이드의 이름은 남자이름이었다. 신재호. 우리는 "가이드가 잘생겼으면 좋겠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약속장소에 가니 한 남자가 인사를 건네왔다. 60대로 보이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었다. (잠시 실망했지만) 인상이 좋았다. 그리고 우리 셋 뿐이어서 더욱 좋았다. 신청자가 많으면 20명까지도 가능한 투어였는데, 겨울 비수기여서 그런지 신청자가 더 없었던 모양이다. 그는 인사를 건네고 우리에게 수신기를 나누어주었다. 세 명 밖에 없는데 굳이 수신기가 필요한가 생각했지만, 가이드가 옆에 붙어있지 않아도, 걸어가며 우리를 향해 얼굴을 돌리지 않아도, 미술관 옆방에 있어도 그 목소리가 이어폰을 타고 내 귓속에 또렷이 들리니 정말 편리하고 좋았다. 그는 30년가량 오스트리아에 살았고, 여행을 무척 좋아한다고 했다. 이곳에서 자녀들을 모두 키웠고, 대학생인 딸과 미술 전시도 같이 다닌다고 했다. 빈에서 살아가는 삶은 어떨까. 부럽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다.


그의 섬세한 설명에 많은 것들이 새롭게 보였고, 몰랐던 이야기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역시 가이드 신청하길 잘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이것들을 공부하고 찾기는 쉽지 않았을 테니. 어릴 때는 '무슨 촌스럽게 가이드 투어야. 여행은 내 소울 따라 자유여행이지!'라는 생각이었으나, 이제는 여행 준비도, 공부도, 지도를 찾고 경로를 짜는 것도 정말 쉽지가 않다. 어쩌면 그 과정까지 여행의 일부일지 모르나, 하루하루 아이들 먹이고 씻기고 재우기 버거운 것이 일상이 되니 그렇게 바지런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빌려둔 오스트리아 여행책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아무 준비도 없이 왔는데 이렇게 재미있는 역사이야기를 해주며 명소에 잘 데리고 다녀주시니, 이처럼 즐겁고 고마운 일이 또 어디 있는가.


네 시간의 여정 중 가장 기억에 남은 두 가지는 훈데르트 바사의 건축물과, 클림트의 '키스'였다. 트램을 타고 시내 중심을 둘러보던 중 좀 독특한 건물이 보여서 '특이하네'생각하며 지나쳤는데 그 부근에서 내리라고 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의 화가이자 건축가 훈데르트바서와 그의 건축물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다다른 곳이 조금 전에 봤던 '좀 독특한 건물'이었다. 외관이 우선 알록달록했다. 층별, 집별로 다른 노랑, 파랑, 주황, 하양, 보라 등이 섞여있었다. 그리고 층간 구분도 자로 잰듯한 반듯함이 아닌, 어린아이 손으로 찰흙을 빚은 것 같은 조금은 삐뚤빼뚤해 보이는 부드러운 곡선으로 건물이 이루어져 있었다. 더욱 특이한 것은, 건물 1층이나 옥상에만 나무가 빼곡한 것이 아니라, 건물 중간중간에도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도록 지어졌다는 것이다. 이곳은 빈 시내의 한복판인데, 마치 숲 속에 집을 지어 나무와 엉켜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마치 동화책에 나오는 집 같다.


처음 마주한 훈데르트바서 하우스


가까이 다가가 걸어보니 건물만이 곡선이 아니었다. 바닥은 돌로 깔려있음에도 불구하고 산속의 땅처럼 봉긋 솟은 곳과 낮은 곳이 어우러져 오르락내리락 펼쳐져있었다.  바닥의 돌 중에 빨간 돌로 굽이굽이 이어진 모습은 흐르는 물을 표현한 것이라고 가이드가 설명해 주었다. 도심 속의 아파트이지만,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싶어 했던 설계자의 섬세함이 느껴졌다. 그는 '자연에는 직선이 없다'는 건축신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는데, 그 신념이 이 모든 곳, 모든 것에 깃들어있는 것 같았다. 이 건물의 이름은 '훈데르트바서 하우스'. 훈데르트바서가 빈 시의 의뢰를 받아서 리모델링한 공공주택이다. 아파트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이 동화 같은 집은 저소득층 가정에게 제공되었는데, 그 경쟁률 또한 어마어마했다고 한다.


기둥과 벽에 알록달록한 타일들이 멋스럽게 붙여져 있어 마치 예술작품 같았다. 그 타일은 건축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붙이도록 둔 것이었다고 한다. 알록달록 삐뚤빼뚤, 그는 자연을 닮은 건축뿐 아니라, 건축을 하는 그 모든 과정까지도 '자연스럽게' 흘러가듯 둔 것 같다. 노동자들이 무심코 하나씩 붙였을 그 타일들이 동화 같은 집과 어우러져, 마치 순수한 어린이의 그림을 보는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건설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붙였을 타일들


가이드가 창문을 유심히 보라고 했다. 8층 정도 되어 보이는 이 아파트는 집마다 곡선도 색깔도 다르지만, 자세히 보니 창문이 조금씩 다르다. 창의 크기, 창의 위치, 창의 모양까지도. 어느 집은 리모델링 전의 모습이 남아있는 유럽스타일의 새하얀 격자창이고, 어느 집은 갈색의 나무 격자창, 또 다른 집은 까만 프레임의 창이었다. 어떤 집은 창문 앞으로 아주 작은 테라스가 있고, 창문 주변으로 다른 색과 다른 모양의 타일로 꾸며진 곳도 있었다. 훈데르트바서는 사람의 눈을 '영혼의 창'이라고 하는 것처럼 창문은 거주자의 영혼을 반영한다고 생각했단다. 그래서 자신들의 창문과 테라스에서 손이 닿는 곳까지는 벽의 회반죽을 긁어내고 자신들의 개성에 따라 장식할 수 있게 했다고 한다. 


건물 끝쪽으로는 계단처럼 층이 다르게 지어져 있어, 대부분의 층이 나무 빼곡한 옥상 정원을 품고 있다. 이런 건 본 적이 없는 건물이어서, 뭐라고 쉽게 언어로 표현하기가 무척 어렵다. 안에는 사람들이 실거주하고 있어 들어가 볼 수는 없었지만, 나중에 궁금해서 책자를 사보니, 집집마다 각기 다른 개성이 있었다. 색색깔의 타일조각들로 동물이나 곤충, 나무, 해 등 자연의 모습이 표현되어 있었다.


훈데르트바서 하우스 책자에 실린 모습들


바로 맞은편에 '훈데르트바서 빌리지 (Hundertwasser Village)라는 건물이 있어 들어가 보았다. 작은 여러 상점이 있었고, 가운데 커다랗게 구불구불한 바 테이블이 있는 카페가 있었다. 이곳 역시 바닥은 돌들이 모여 물과 흙을 표현하고 있었고, 계단도 맨손으로 빚어 만든 것처럼 자연스러운 곡석의 형태였다. 요즘 건출기술이면 반듯하게 계단 내고 건물을 올리는 것쯤이야 무척 쉬운 일일 텐데, 일일이 곡선을 만들고 돌과 타일을 붙여가며 모든 부분을 섬세하게 짓는 것이 얼마나 수고스러운 일이었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이층으로 올라가 훈데르트바서의 그림들이 파는 곳을 구경했다. 알록달록한 색채감, 해맑은 아이가 그린 듯한 순수한 느낌이 들어,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었다. 여러 그림을 집에 걸어두고 보고 싶은데, 마침 포스터만큼 커다란 달력에 그의 그림이 달별로 예쁘게 들어가 있는 게 있어 구입했고, 그의 건축에 관한 책자도 하나 샀다.


훈데르트바서 빌리지. 대부분이 곡선으로 만들어져 있다.


자연을 닮고, 그의 철학을 고스란히 품은 독특한 건축물은 오스트리아에 있는 슈피텔라우 쓰레기 소각장, 쿤스트 하우스 빈, 블루마우 온천마을 호텔, 산타바바라 성당 외에도 세계 각 곳에 그의 건축물들이 있는데, 한국의 제주 우도에도 '훈데르트바서 파크'가 생겼다는 사실을, 일 년이 지난 지금에야 알게 되었다. 내가 한국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이 제주, 그중에서는 우도였는데, 그 아름다운 곳에 그의 철학이 담긴 파크가 생겼다니 정말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유럽여행을 원 없이 할 수 있어 폴란드에 1년 살면서도 한국에 한 번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는데, 우도에 펼쳐진 '훈데르트바서 파크'가 궁금해 처음으로 한국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의 우도 갤러리에도, 현장에서 일하는 인부들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중요하게 여겼고, 그의 다른 건축들과 마찬가지로 건물에 붙일 타일 크기와 각도, 모양들을 인부들이 스스로 선택하게 했다고 한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훈데르트바서와 그 철학에 대한 여운이 많이 남아 공부를 했다. 사온 책자를 꼼꼼히 살펴보고 인터넷으로 검색도 해보았다.

그는 세계적인 환경운동가이기도 했다. 자연보호와 산림운동, 반핵운동을 적극적으로 주도했고, 생전에 "인간은 자연에 초대된 손님답게 행동해야 한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 실제로 우도에 있는 훈데르트바서 파크에 가면 "인간은 자연에 초대된 손님입니다. 예의를 지키세요(You are a guest of nature-Behave)."라는 말이 입구에 쓰여있다고 하는데, 그저 손님을 끌어모으려는 달콤한 말이 아닌 자연을 존중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느껴진다.


제주 우도에 지어진 훈데르트바서 파크 - 사진 조선일보


그의 별명은 '자연을 사랑한 건축치료사'. 그의 이름은 100개의(Hundert) 물(wasser)이라는 뜻으로 스스로 개명했다. '평화로운 곳에 흐르는 백 개의 강'이라는 뜻으로 지은 것이라고 하는데, 그 뜻을 알고 나니 그 이름을 다시는 잊어버릴 일이 없을 것 같이 강렬하게 기억되었다. 그의 건축물을 통한 첫 만남, 가이드가 들려주는 생생한 이야기, 그의 그림과 작품들이 잊히지 않아 집에 돌아와서도 그의 이야기와 작품들을 한참 찾아보았고, 훈데르트바서 빌리지에서 사 온 멋진 달력을 잘 보이는 곳에 걸어두었다. 밝은 동심이 전해지는 그의 그림은 아이들도 좋아했다.


동심이 느껴지는 훈데르트바서의 그림들 - 사진 wiki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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