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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미정 Apr 18. 2019

참지 않고, 욱하지 않고, 지혜롭게 말하는 법

참는 게 미덕이라고?

참는 게 미덕이다. 져주는 게 이기는 거다. 좋은 관계를 위해 인내해야 한다.

과연 그럴까?

이렇게 살다가 마음의 병이 깊어져 심리상담소를 찾는 사람이 많다. 참는 것이 미덕이라 하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질병인 화병에 걸린 사람도 많다. 화병은 감정표현이 억제돼 오랜 기간에 걸쳐 쌓이면서 나타나는 병이다.      


매사에 참고 사는 사람, 정말 위험한 사람이다. 할 말이 많은데도 입을 꾹 닫아버리는 것은 소통의 통로를 막아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의 병을 키우는 것은 물론이고 상대와의 관계에서도 결국 파괴적인 결말을 가져온다. 매사에 져주고 참는 사람은 착한 듯 보이고 배려하는 듯 보이지만, 그것이 ‘기쁨’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닌 상대와의 관계를 위한 ‘인내’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그것은 쌓이고 쌓여 결국 폭발하고 말기 때문이다.      


그들은 참을 수 있는 데까지 참다가 한계에 달하면 관계를 포기하거나, 떠나거나, 불같은 분노를 보인다. 그런데 평소에는 말없이 참기 때문에 상대는 불편한 마음을 전혀 모르다가 갑작스러운 반응에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온순한 사람인 듯 했다가 한 순간에 관계를 끊어버릴 수도 있는 무서운 사람으로 느껴진다.       


참고 참다가 갑자기 ‘우리 헤어져’ 하는 연인, 상사의 만행에 찍소리도 안하고 참다가 어느 날 사표를 내미는 사람. 착한 아내로 참고 살다가 갑자기 폭발해 그동안 쌓인 것을 모두 토해내는 사람. 이런 사람들의 극적인 행동에 상대도 놀라고 상처를 받게 된다.      


‘내가 져주고 말지’ 라며 관계와 대화를 승패로 생각하거나, ‘내가 참아야 갈등이 없지’, ‘누군가는 희생해야지’ 라고 흑백논리로 생각하는 것은 유연성이 없는 경직된 관계 방식이다. 이들의 대화법은 참거나, 확 지르거나 둘 중 하나다. 그래서 참다가 병이 나거나 욱해서 관계가 깨진다. 이런 이분법적 사고방식은 건강하지 못하다. 더 나아가 위험하다. 내가 굳이 이기거나 지지 않아도 나의 생각을 부드럽게 전할 수 있고, 입 꾹 다물며 참지 않아도 내 의견을 조곤조곤 이야기 할 수 있다. 이렇게 하는 게 참고 참다가 한 번에 터뜨리는 것보다 훨씬 더 건강한 관계를 만드는 길이다.     


내가 아는 한 언니는 누구에게든 헌신적이고 배려하는 여성이다. 결혼해서도 남편에게 다 맞춰주며 현모양처로 살았다. 그래서인지 어느 샌가 전세가 역전되어, 공주대접 받고 결혼했던 언니가 남편에게 푸대접을 받고 사는 듯했다. 나를 만나면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남편 이야기를 하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나는 그렇게 아름답고 헌신적인 여성이 그런 대접을 받고 사는 것이 정말 안타까웠다.


 “언니, 그렇게 하면 속상하다고 말해. 이러이러하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얘기해!”

 “얘기하면 괜히 싸움만 돼. 큰소리 듣느니 내가 참고 말지.”

 “얘기를 안 하면 어떻게 알겠어. 언니, 화내면서 이야기하라는 게 아니라 그냥 솔직하게 조근조근 이야기 해봐.”

 “여자가 말 많다고 싫어해. 싸우기 싫어.”

 “그렇다고 평생 이렇게 살 수는 없잖아. 솔직하게 털어놓으면 좀 티격태격할 수도 있지만, 그러면 어때, 그러면서 서로 알아가고 맞춰가는 거지.”

 그녀는 분을 삭이며 이야기했다.

 “두고 봐. 내가 지금은 참지만,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오면, 나도 평생은 이렇게 못 살아. 헤어지자고 할 거야.”

    

나는 그녀의 그 말과 생각이 너무 무섭게 느껴졌다. 작은 불만들, 서운함, 아쉬움, 평소에 이야기하면서 충분히 풀어갈 수 있는 것들인데, 싸우기 싫다고 참고 참으면서 억울한 마음과 미움을 점점 키워가고, 그것 때문에 헤어질 생각까지 하다니! 너무 극단적이고 너무도 불행한 태도이다. 혼자서 마음의 골병을 키워가고, 상대는 영문도 모른 채 어느 날 갑자기 ‘이별통보’를 받게 될 수도 있다.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실제로 ‘인내’가 이혼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한다.) 그래서 평소에 나의 감정, 나의 욕구를 차근차근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건강한 관계, 건강한 소통을 위해서는 필수다.      


그러면 어떻게 나의 감정과 욕구를 잘 말할 수 있을까. 싸우지 않고 더 좋은 관계를 만드는 대화법은 무엇일까. 미국 심리학자인 마셜 B. 로젠버그가 『비폭력대화』에 소개한 여러 좋은 대화법 중에 세 가지를 소개한다. 비폭력대화(Nonviolent Communication)는 상대를 비난하거나 비판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방법이다.      



1. 판단과 관찰을 분리하기


 “너는 정말 무책임해!”

 ->  “오늘까지 다 끝내야 하는 일을 끝내지 못해서 많이 실망했어.”     


‘무책임하다’라는 말은 나의 판단과 평가가 들어간 말이다. 평가를 제외한 관찰, 즉 fact는 ‘오늘까지 끝내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실망’했고 무책임하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이 모두를 섞어버리면 “너는 무책임한 사람이야”라고 마음대로 판단하는 게 되어버린다. 상대를 내 맘대로 판단해서 낙인찍는 것, 이거야말로 폭력적인 대화다. 관찰과 평가를 뒤섞으면 상대는 비판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그래서 반드시 사실과 평가를 분리해야 한다.


 “왜 이렇게 제멋대로야?”

 -> “같이 결정한 것을 여러 번 번복하면 나는 혼란스럽고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어.”     


 ‘제멋대로’ 역시 나의 평가이다. 관찰한 사실은 ‘같이 결정한 것을 여러 번 번복한 것’이다. 그럴 때 자신이 ‘혼란스럽다’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드는 것을 전달하는 것이 좋다. ‘너는 제멋대로야’라고 단정지어 비난하는 것과 천지차이다.      


2. 감정의 근원인 욕구 파악하기

로젠버그는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분석하는 것은 자신의 욕구를 돌려서 표현하는 것이라고 했다. 예를 들어 “넌 한 번도 날 이해한 적이 없어!”라고 했다면, 실제로 그는 이해받길 바라는 자신의 욕구가 충족되고 있지 않다는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비판을 하기 전에 자신의 욕구를 먼저 파악할 수 있다면 좀 더 부드럽고 생산적인 대화를 할 수 있다.      


 “넌 나를 한 번도 이해한 적이 없어!”

 -> “나는 너한테 이해받고 싶은데, 그렇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속상해.”     


이해받고 싶어 하는 나의 욕구를 파악하고, 그렇지 못했을 때 내가 느끼는 감정을 이야기하면 상대도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한다. 하지만 “너는 나를 한 번도 이해한 적이 없잖아” 라고 마음대로 판단하면 “아니야!”라고 반박하게 된다.      


 “당신은 나보다 일이 더 중요한 사람이잖아.”

 -> “나는 저녁에 당신과 시간을 보내고 싶어. 그런데 일 때문에 약속을 취소하는 날이 많아지면 소외감을 느껴.”     


상대를 ‘나보다 일이 더 중요한 사람’이라고 일방적으로 몰아가면 좋은 대화를 할 수 없다. 그 말을 듣고 “미안해”라며 갑자기 반성할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될까. 상대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고 화가 날 것이다. 내 맘대로 판단하기 전에 내가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됐는지 내가 원했던 것을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나의 욕구가 파악되면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그것이 충족되지 못한 나의 감정을 이야기하면 된다.      


3. 원하는 것을 부탁하기

감정만 표현하고 끝나면 상대는 내가 원하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같은 상황이 다시 발생할 수 있다. 반대로 자신의 감정이나 욕구를 말하지 않고 부탁만 하면 상대는 명령처럼 받아들일 수 있다. 그래서 앞 1, 2번에서 소개한 순서대로 자신이 관찰한 것, 욕구와 감정을 잘 표현한 후에 내가 원하는 구체적인 것을 부탁하는 것이 가장 좋다. 이때도 역시 비난하거나 평가하지 말고 원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하지마!’ 보다 ‘이렇게 해줬으면 좋겠어.’라고 긍정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모호하지 않게 구체적인 행동을 부탁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당신 요즈음 완전 일중독이야. 맨날 오밤중에 들어오고 가족은 나 몰라라야? 애들도 아빠 어디 갔냐고 찾아대고, 아침부터 밤까지 애들 먹이고 재우느라 힘들어도 나는 안중에도 없잖아. 가족들하고 시간 좀 보내주면 안 돼?”     


이렇게 비난과 평가가 들어간 말들로 가득 채우면, 상대도 기분이 상해 싸움이 된다. ‘일중독’ ‘맨날’ ‘가족은 나 몰라라’ ‘안중에도 없다’ 이런 표현들은 모두 자신의 부정적인 평가가 들어간 말이다. 그러니 상대방이 긍정적으로 수긍할 수가 없다. 그리고 구체적인 해결책이 없어 같은 상황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 “이번 달에는 당신이 집에 10시 넘어서 들어와서 아이들이 아빠 볼 시간이 거의 없었어. 지석이가 아빠랑 축구하고 싶다고 찾고,(관찰) 나도 혼자서 아이들 돌보고 재우려니 많이 힘들고 속상해.(감정) 많이 바쁘더라도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주면 좋겠어.(욕구) 매주 토요일은 꼭 아이들과 같이 보내줄 수 있을까?(부탁)      


관찰한 내용, 나의 감정, 나의 욕구를 이야기하고, 그 다음 구체적으로 부탁을 하는 것이다. “가족과 시간을 좀 보내줘” 정도로 부탁하는 것보다 더 상세하게 요청을 해야 상대도 실천하기 쉽고 나도 만족할 수 있다. “나한테 관심 좀 가져줘.” “당신이 더 책임감을 가졌으면 좋겠어.” 이런 식의 추상적인 부탁은 행동에 옮기기도 어렵고 평가하기도 어렵다. 결국 부탁한 사람은 다시 실망할 수밖에 없다. 명확한 표현으로 부탁해야 한다.      


“나는 집에서 애만 보는 사람이야?!”       


때로 쉬거나 자유 시간을 갖고 싶은 욕구가 충족되지 않아서 나온 말이다. 화를 쏟아내기보다 그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부탁을 해보자. “나도 자유 시간을 줘.”라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구체적인 부탁을 해야 욕구를 충족시킬 가능성이 훨씬 더 높아진다.     


 -> “일 주일 중에 하루 저녁은 혼자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줘.”     


앞서 관찰과 욕구, 감정이 잘 전해졌다면 이정도 부탁은 들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나만 애보는 사람이야?” “누구는 맨날 늦게까지 일하고 싶은 줄 알아?” 라고 소모적으로 싸우지 않고 서로의 마음을 전하고 원하는 것들을 충족시켜갈 수 있다. 물론 교과서처럼 처음부터 잘 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좀 티격태격하면 어떤가.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고 서로가 원하는 것을 알 수 있다면, 좀 싸운들 어떤가.     

참는 것이 미덕이 아니라 미련한 것이다. 참는 다는 것은 소통을 단절시키는 것이고, 소통이 단절된 관계는 건강하게 이어질 수 없다. 갈등을 만들고 싶지 않다, 싸우기 싫다는 핑계로 비겁하게 입을 다물지 말자. 상대를 비난하기 전에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나의 감정과 욕구를 살피면, 좀 더 지혜롭게 의사표현을 할 수 있다. 더 성숙하고 조화롭게 관계를 이어가자.     




이 매거진의 글은

저서 <말하기의 디테일> 의  일부 연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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