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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미정 May 01. 2019

표현하기 시작하면 소소한 행복이 찾아온다

까탈스럽지 않게 할 말 다 하기

그동안 내 마음보다 상대의 마음을 더 생각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방송 출연자들의 비위를 맞추고 눈치를 보며 최상의 컨디션으로 끌어내야 했던 나의 직업병이 일상에까지 이어진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상처받을까, 이거 부탁하면 불편해 할까. 이야기할까 말까, 안 하는 게 낫겠지. 아주 사소한 것에도 늘 중심은 상대였다.      


‘방송 원고를 수정해 달라고 하면 작가가 기분 나빠할까.’ 식당에서 간이 싱거울 때 ‘소금을 달라고 하면 맛이 없는 거라고 생각할까,’ 택시에 탔을 때 ‘에어컨을 꺼달라고 하면 기사님이 너무 더우실까.’ 그런 생각을 하며 웬만하면 그냥 참고 넘어갔다. 지나친 배려였다. 내가 이 말을 한다고 해서 상대가 엄청 상처받거나, 안 한다고 해서 상대가 행복한 것도 아니다. 나의 생각을 말하고 서로 그에 대해 반응하고 맞춰갈 뿐이다. 혹시 우려된다면 표현을 부드럽게 하면 된다.      


대구에서 강의가 있어서 열차를 타고 가던 길이었다. 승객 좌석 확인을 위해 지나가고 있는 승무원에게 한 남성이 “저기, 핸드폰 충전 좀 해주세요.”라고 당당하게 요구했다. 뒤에서 보고 있던 나는 조금 황당했다. 항공사 같은 서비스가 제공되는 곳도 아니고, 특실도 아니었으며, 승객들도 많았다. 이 많은 승객들의 요구를 다 들어주기도 어려울 것이고, 열차에도 휴대폰 충전하는 곳이 따로 있을 텐데 승무원에게 너무 당연한 듯 요구하는 것이 좀 무리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승무원은 “아, 휴대폰 충전 필요하세요? 충전 완료되면 가져다드리겠습니다.” 하면서 너무도 친절하게 받아주는 것이었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 남성이 좀 무례하다고 생각했던 나의 생각에 일침을 가하는 듯했다. 그 남성은 휴대폰 충전이 꼭 필요했고, 필요한 것을 직원에게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무엇이 잘못 되었단 말인가.      


나는 그런 것을 요구하기 전에 ‘될까, 안될까’, ‘무례한가?’ ‘상대가 귀찮으려나?’ 자동적으로 수많은 생각을 했다. 왜 그렇게 많은 생각을 했을까. 누구 눈치를 그렇게 봤을까. 눈치 봐서 득이 되는 게 있었을까. 내 머릿속에 있는 검열관을 없애고, 나도 내 생각, 내 목소리, 내 요구, 그냥 편안하게 흘려보내면 안 될까.    


image: www.cline.net

일식집에서 냉모밀을 주문했다. 작은 접시에 따로 덜어주는 고추냉이와 잘게 썬 파, 잘게 갈린 무를 모두 넣고 골고루 섞어 먹었다. 시원하고 맛있었는데 고추냉이와 무를 아주 조금만 더 넣으면 더욱 감칠맛이 날 것 같았다. 평소 같으면 이대로도 맛이 괜찮으니 그냥 먹으면서 조금 아쉬워했을 텐데, 원하는 것을 참지 말고 말하는 연습을 하기로 했던 나는 “여기요! 와사비하고 무 좀 더 주세요.”라고 이야기했다. 직원은 곧 “네!” “이정도면 될까요?” 하며 친절하게 고추냉이와 무를 넉넉히 가져다주었다. 조금 더 넣고 섞자 고추냉이의 알싸한 맛과 무의 시원한 맛이 입 안 가득 퍼졌다. 아 그렇지. 바로 이 맛이지. 정말 사소한, 남들에겐 아무것도 아닌 당연한 것이었겠지만, 나는 말하기로 결심한 내 자신이 뿌듯하게 느껴졌고, 입안에서 퍼지는 개운한 맛에 소소한 행복을 느꼈다.      


일을 할 때도 하나씩 표현하기 시작했다. ‘암전 때는 미리 사회자석에 작은 조명 준비해 주세요.’ ‘공연 끝나고 MC 무대 등장할 때 마이크 미리 켜주세요.’ ‘큐카드는 두 쪽 보기로 준비해주세요.’ 이제는 세세하게 요구하는 것이 많다. 상대는 나를 ‘까다로운 아나운서’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해야 내가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고, 그것이 오랫동안 무대를 준비해 온 수십 명 스태프에 대한 보답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 눈치 보며 불편한 가운데서 적당히 일을 끝내는 것보다, 구체적으로 요구하고 좋은 환경을 만들어서 나의 베스트 성과를 내는 것이, 나에게도 주변 사람들에게도 훨씬 더 값진 일이 될 것이다.      


요구하기 전에 망설여진다면 이 세 가지를 적용해보자. 첫째, 내가 할 수 있는 요구인가. 둘 째, 상대에게 너무 무리한 것은 아닌가. 이 두 가지에서 아무 문제없이 통과했다면 셋째로 ‘부드럽게’ 표현해보자.    

  

예를 들어 택시를 탔을 때 창문을 열어달라든지, 조금 천천히 가달라, 에어컨을 꺼달라 등은 승객으로서 내가 할 수 있고 상대도 무리 없이 들어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망설이지 말고 부탁하자. “아저씨, 에어컨 좀 꺼주세요.”라고 할 수도 있지만 대신에 “기사님, 제가 추위를 좀 많이 타서, 에어컨 잠시만 꺼주실 수 있을까요?” 라고 하면 훨씬 부드럽다. 열차에서 “핸드폰 충전 좀 해주세요.”보다는 “혹시 핸드폰 충전이 가능할까요?”라고 하면 더 좋다. 명령형으로 말하지 말고 상대가 선택할 수 있게 ‘열린 질문’으로 물어보면, 상대도 무례하다거나 무리한 요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안되면 상대도 거절할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거절하지 않고 오히려 기분 좋게 들어준다.      


눈치보고 참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식당에서 아쉬워도 참고 다시 안 가는 것보다 나에게 필요한 것을 요구해 맛있게 먹고 다시 찾는 것이 식당 주인에게도 좋을 것이다. 열차 승객이 기분 좋게 서비스를 누리고 승무원에 대한 친절한 인상을 갖는 것이 철도회사도 원하는 것일 것이다. 다른 부서에 업무요청을 해서라도 내가 맡은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하는 것이 나도 위하고 회사도 위하는 것이다. 그동안 참아왔던 수많은 요구들이 조금씩 소리 낼 수 있도록 통로를 열어주면, 그 통로로 소소한 행복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말하라, 모든 진실을.
하지만 말하라, 비스듬히.

-에밀리 디킨슨




이 매거진의 글은 도서

' 하고 싶은 말을 센스있게'

<말하기의 디테일>

의 일부 연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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