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으로 알게 되는 것들
둘째가 태어난 지 한 달 하고 이틀. 한창 활발해지고 고집 피울 세 살 아이와, 수시로 먹이고 안아줘야 하는 신생아가 함께 하니, 둘이 같이 집에 있으면 그야말로 전쟁이다. 그래서 쉬는 날이면 남편이 항상 첫째를 데리고 시댁으로, 키즈카페로, 동물원으로 피난을 갔다가 밤늦게 왔다. 그러다 지쳤는지 이번 주말에는 자기가 둘째를 볼 테니 나보고 첫째를 데리고 나갔다 오란다. 나는 고민할 것도 없이 '친정'으로 향했다. 엄마, 아빠에게 맡겨두고 나는 우선 부족한 잠을 자고, 밀린 일을 했다. 역시, 육아할 때 진정한 오아시스는 친정뿐이다.
신생아와 늘 집에만 있다가 친정에 와서 모처럼 외식이라는 사치를 누리고 집에 오니 또 유축할 시간. 다시 열심히 모유를 빼내 저장하고, 잠시라도 자유시간을 누리기 위해 홀로 카페에 나왔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고, (사랑하는 커피 대신)밀크티를 마시며, 내 안의 것들을 쏟아내기 위해 글을 쓴다. 단 30분이라도 나 홀로 누리는 나를 위한 시간이 없다면 나는 하루를 버틸 힘을 잃는 사람이다. 그걸 잘 알기에, 아주 잠깐이라도 안간힘을 써서 밖에 나온다. 읽고, 쓰고, 마시고. 그렇게 에너지를 충전하고 들어간다.
카페에 들어서니 유모차가 눈에 띈다. 아기는 자고 있고 남녀는 커피를 마시고 각자 책을 보며 여유를 즐기고 있다. 또 한 여성은 한 손으로 유모차를 살짝살짝 밀었다 당기며 아메리카노 마시고 있다. 아기가 깨자 토실토실한 아기를 유모차에서 꺼내 안고 입을 맞춘다. 두 아기 다 백일쯤 되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갓난아기를 돌보며 외출도 못하고 꼼짝없이 집에만 있다가, 아기가 석 달 가까이 돼서 첫나들이를 했을 터이다. 유모차에 아기를 재워두고 커피와 함께 조용히 쉼을 누리는 시간. 얼마나 꿀 같을까.
나는 첫째를 낳고 난 직후에, 유모차 끌고 외식도 하고 카페도 가는 부부들을 보면 그렇게나 부러웠다. 신생하는 할 수 없는 아기띠를 하고 다니는 엄마들도 그렇게 부러웠다. 내게 그런 시간이 쉬이 오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언제 저만큼 커서 외출할까. 그들이 마치 인생의 대선배들 같았다. 그러나 지나 보니 그런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찾아오고, 어느새 아이는 커서 문화센터에도 가고, 어린이집도 가고, 외식을 해도 뭐든 잘 먹고, 나와 그림자밟기를 하며 산책도 한다. 그렇게 한 번 경험해보니, 유모차 끌고 나온 백일 남짓 아기의 부모들의 꿀 같은 휴식이 부럽다기 보단 흐뭇하다. 이제 나에게도 금세 그런 시간이 찾아오겠지. 그러다가 유모차에 잘 안 앉아있어 오히려 외출이 힘든 시기도 오겠지. 그러다 곧 아장아장 걷겠지. 그러면 난 널 잡으러 다니느라 정신이 없겠지.
예전엔 까마득하고 부럽기만 했던 풍경을 이제는 미소로 바라보게 된다. 예전에 이유식 시기를 앞두고, 요리도 안 하는 내가 이유식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나 앞이 캄캄했는데 그 시기도 어찌어찌 금방 지나감을 안다. 아이는 낳아놓으면 알아서 큰다고 했던가. 사실 키울 때 많이 힘들었는데도, 한 번 경험하고 나니 별로 걱정될 게 없다. 나의 노력으로 컸다기보다 알아서 자란 것 같다. 그런 여유 덕분에 엄마들은 둘째가 훨씬 예뻐 보이는 것 아닐까. 조바심과 걱정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오롯이 아기에게 집중할 수 있어서 더 사랑스럽게 느끼는 것이 아닐까.
경험을 통해 여유를 갖게 되는 것이 참 좋다. 경험을 사려면 시간을 지불해야 하고, 시간을 지불하면 나이를 먹게 된다. 나이를 먹는다고 무조건 경험이 많아지는 건 아니지만, 경험을 많이 하면서 나이를 먹게 되는 건 사실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나이를 먹는 게 싫지 않다. 신생아 데리고 아등바등 조바심 내고 걱정하던 내가 이런 여유를 누릴 수 있다면, 두 살 정도 더 먹을만하다. 아기를 혼자 거뜬히 보는 남편이 되기 위해 그간의 시간이 필요했다면, 좀 더 젊었던 남편보다 나이 더 먹은 지금의 남편이 더 좋다.
더 많은 경험으로 더 넓게 볼 수 있다면, 더 많은 경험으로 내 마음이, 내 그릇이 더 넓어진다면, 내 나이와, 내 젊음과, 내 시간과 맞바꿀 용의가 있다. 물론 내가 허락하지 않더라도 나이는 먹겠지만. 이왕이면 자발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