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를 불렀니?
지난 달 언젠가, 함께하고 있는 글쓰기방의 주제가 골목길이었다. 그 때 그 단어로 떠오른 골목길은 내가 어릴 적, 초등학교를 보냈던 동네의 골목길이었다. 그 때 글을 쓰고 나니 그 골목을 다시 꼭 가서 걸어봐야겠다 생각이 들어 포스트잇에 적어두었다. 미루고 미루다 오늘 문득 날이 좋아 차를 타고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긴 그곳으로 갔다.
방배동 내방역 근처. 그곳에서 형편에 따라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8살 때부터 16살 때까지 8년 정도를 살았다. 그곳으로 처음 이사 가게 된 계기는 엄마, 아빠가 함께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방배동에 있는 작은 우유대리점을 인수하면서부터였다. 학군이 좋다는 이야기도 많이 하셨던 걸로 기억한다.
우유대리점은 예쁜 꽃집으로 바뀌어있었다. 건물은 새로 지은 것 같았지만 딱 그 자리에 조금 더 넒은 공간에 한 여인이 무언가를 만들고 있고, 아기자기한 꽃들과 함께 작은 입간판에는 플라워레슨 안내가 되어있다. 그래도 이곳이 어여쁜 꽃집으로 바뀌어있어 기분이 좋았다. 엄마와 언니, 동생에게도 보여주고 싶어 꽃집과 골목 사진을 찍었다. 꽃집 주인은 왜 자꾸 사진을 찍는지 의아해 했을 것이다. 30년 전 이곳에 살았던 꼬마였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겠지.
우유대리점 바로 앞에 3층짜리 고급 빌라가 있었다. 그곳 지하의 꽤 넓은 방에 언니와 내가 생활했다. 엄마, 아빠와 어린 남동생은 가게에 딸린 방에서 생활했었고, 가족 식사 등의 일상 생활도 그곳에서 했다. 빌라가 그때 그 모습 그대로, 벽돌도 변함없이, 곁에 있던 소나무도 변함없이 있어 너무 반가웠다. 그런데 늘 오갔던 그 골목이 너무나도 좁아보였고, 그 크고 화려했던 빌라도 너무나 작고 초라했다. 예전에 쓰던 방이 궁금해 지하로 내려가 보니 지하 방은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어두컴컴한 창고처럼 비어있었다. 반지하의 창문을 타고 밤에 도둑이 들어왔던 기억도 생생하게 났고, 침대 밑에 도둑고양이가 숨어 있다가 잘 때쯤 기어 나와 소동을 벌여 소리 지르며 난리를 쳤던 기억도 났다.
커다란 냉장트럭 우유배달차가 오면 온 가족이 우유박스를 날랐고, 눈이 오는 날이면 새벽같이 엄마 아빠가 차를 타고 나가 우유배달을 갔다가 한참을 돌아오지 않아 걱정했던 기억도 났다. 나는 종종 아빠 차를 타고 함께 다니며 아빠가 여러 가게와 학교에 우유를 배달하는 것을 곁에서 봤다. 그리고 가까운 곳에서 주문전화가 오면 우유 몇 개 정도는 내가 배달하는 심부름을 하곤 했다.
엄마 아빠는 성실하게 일하셨지만, 이따금씩 아빠가 술을 드시면, 술을 잘 통제하지 못했던 아빠는 며칠씩 술에 취해있어 가게 일에 지장이 컸다. 그럴 때는 엄마에게 큰소리를 치거나 밥상을 엎는 일도 잦아졌다. 엄마는 흐느껴 울면서도 우리를 부둥켜 안고 기도하며 또 다시 힘을 내곤했다. 아빠도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성실한 아빠로 돌아오곤 했다. 하지만 그런 일이 반복되자 더 이상 가게를 유지하지 못하고 우유대리점을 접었다. 그리고 근처 다른 빌라로 이사를 했다. 그곳은 다른 빌라가 들어서서인지, 헷갈려서 찾지 못했다.
경제적 사정이 더 안 좋아져서인지, 얼마 후 또 다른 곳으로 이사를 했다. 큰 주택의 1층 차고를 개조해서 만든 집이었다. 그래서인지 우리가 거실로 썼던 넓은 공간은 약간의 경사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런 집에 살았나싶지만, 어린 그 때는 나름 그것이 재미있었고, 넓어서 좋았다. 오늘 그곳에 가보니 집이 그대로, 정말 그대로 있었다! 단 원래의 목적대로 차고로 쓰이고 있었다. 차고문은 열려있었고 차 한 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차고 안에 우리가 썼던 방문과 부엌문, 화장실 문 네 개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지금 무엇으로 쓰이고 있을까. 집에 들어가는 쪽문 현관에 붙어있던 스테인글라스 시트지, 화장실 유리문에 붙어있던 반투명의 시트지까지. 아직 그대로다. 빛이 아주 많이 바랬을 뿐, 그 때 그 문을 열던 기억이 생생히 날 정도였다. 그때는 늘 쪽문으로 들어가서 몰랐는데, 오늘 집 전체를 보니 주인집이 꽤 크다. 마당도 있고 나무도 울창한 이층의 넓은 주택. 나름 예쁜 집이었구나. 큰 집의 차고 공간에서 힘겹게도 살았구나. 고마웠다. 그 모습 그대로 있어주어서.
마지막으로 살았던 집, 가장 어려웠고, 아빠와도 사별하게 된 가슴 아픈 그 곳은 완전히 새로운 빌라들이 대거 들어서 아예 흔적을 감추었다. 아쉬웠다.
지금도 나의 베스트프렌드인, 한동네 살던 선영이의 집은 철거예정이었고, 정순이네 집은 카센터로 바뀌어있었다. 4학년 때 친구인 은영이네가 하던 ‘제일유리’가 그 자리에 변함없이 그대로 있었다. 아직도 그 아버지가 하시는 걸까. 들어가서 물으면 은영이의 소식을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내가 자주 찾던 문방구는 ‘로또마트’로 바뀌어있었다. 하지만 외관이 크게 바뀌지 않고 유리 벽면에는 ‘인쇄, 복사, 도장, 열쇄’라고 예전에도 하던 것들이 써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같은 주인아저씨가 계속 하고 있을 것 같았다.
방배초등학교를 찾았다. 나의 6년을 보냈던, 언니도 동생도 모두 다녔던 그곳. 학교는 저번에 와봐서 인지 저번만큼 작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입구를 들어가 운동장과 계단을 조금 거닐다 보니, 운동회 때 주머니 던지기 하던 작은 꼬마, 계주 선수로 열심히 뛰었던 소녀, 북을 치며 열심히 응원하는 야무진 여자아이가 보이는 듯하다. 건물 뒤쪽에서는 친구들과 고무줄 놀이를 했고, 교실 안에서는 공기를 했다. 나는 공기를 참 잘했다. 운동도 잘했다. 6학년 때는 짝사랑도 했다. 곳곳에 내 어린 시절 모습이 보여 재미있었다. 학교 앞 골목들은 주차를 하거나 차가 지나다니기 힘들만큼 좁았다. 꼬마 아가씨가 매일 거닐 던 그곳은 무척 넓었는데.
아직 재개발이 되지 않은 지역이어서, 좁디좁은 골목길도, 오랜 단독주택들도, 지물포도 철물점도 유리가게도 남아있어 정겨웠다. 그런데 오늘 보니 단독주택과 오래된 빌라들이 곧 철거될 듯 골목 전체에 출입금지 테이프와 철기둥이 세워져있다. 남편에게 오늘 옛 동네에 다녀온 이야기를 하니, 그곳이 이제 재개발에 들어간다고 한다. 그래서 여러 골목 전체에 집들이 철거예정이었구나. 다음에 다시 가면 골목도 보이지 않고, 내가 살던 곳의 흔적조차 없어질 것 같아 아쉽다.
방배동. 나의 어린 시절을 통째로 보냈던 그곳. 이름은 부자동네 같지만, 가장 가난하고 가장 힘겹게 살았던 그곳. 나는 오늘 왜 그곳에 이끌리듯 가게 되었을까.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둘째를 품고 평온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나는, 왜 문득 그곳에 가게 되었을까. 세어보니 딱 30년이다. 처음 그곳으로 이사가 살게 된 것이. 아직 30년 전의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나의 고향 같은 곳이, 그 모습이 사라지기 전 날 부른 것이 아닐까. 꼬질꼬질 어린 시절의 너의 추억이 있는 곳을 마지막으로 한 번 보여주고 싶다고, 어린 나이에 힘겨웠던 시간 잘 견뎌내어 장하다고, 지금의 너는 어떻게 자랐는지 궁금하다고, 꼭 보고 싶다고, 그 동네, 그 골목길, 그 집들이 나를 마지막으로 부른 것이 아닐까? 다행이다. 불러줘서. 그 부름에 응답해서. “나 그곳에서 단단하게 자라 이렇게 멋지게 잘 살고 있는 거 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