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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미정 Jul 22. 2021

말하기보다 글쓰기가 좋은 이유

아나운서라면서...


10여년간 방송을 하고 지금도 강의와 강연을 하고 있는 나는 말하는 것이 좀 더 편하고, 글 쓰는 것에는 더 많은 정성이 필요하다. 일이 들어오는 것도 대부분 말하기 전문가로서의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글쓰기에 더 큰 매력을 느낀다. 

     

말은 그 순간의 무게가 너무 크다. 아무리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고 해도 입에서 나오는 순간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 혹은 적절하지 않은 말로 나의 격을 깎아내릴 수도 있다. 지나고 나서 ‘아, 더 좋은 말이 있었는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였는데!’ 라고 생각해도 기회는 물 건너가고 만다. 


   

나는 타고난 달변가가 아니다.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 경력을 쌓아가며 몇 년을 준비했고, 방송할 때도 원고를 읽고 나의 언어로 고치기를 여러 번 하고서야 방송을 했다. 강의를 할 때도 준비를 철저히 하고, 시간에 맞춰 리허설을 꼭 해본 후에 강의를 한다. 말을 잘한다는 칭찬에 기분이 좋아지기는 하지만, 스스로 잘 알고 있다. 나는 말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준비를 잘한다는 것을.




나이 마흔이 되어서도 칭찬을 듣고 하늘을 나는 듯할 때가 있는데, 그 칭찬은 바로 출판사 편집자의 칭찬이다. 생각하고 고민하고 쓰고 고치고 다듬고를 반복하며 완성한 원고를 보내고 나면 마치 대학입시 합격통보를 기다리는 마음처럼 피드백이 올 메일에 긴장이 된다. 큰 부담을 줄이고자 나는 매달 일정량의 원고를 써서 보내고 피드백을 듣는다. 그리고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서 다음 글을 써나가는 편이다. 책을 낼 때 편집자와의 궁합은 정말 중요하기 때문이고, 나는 글쓰기에서 초보임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글은 사색하며 쓴다. 나의 이야기를 쓸 때도 어떤 단어와 문장으로 그것을 표현할 것인지, 그 사건을 어떤 시각으로 해석할 것인지, 그래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쓰는 동안 일상에서 사용하지 않는 풍성한 단어들을 끄집어내고, 얽히고설킨 긴 문장을 간결하게 다듬는다. 이 생각 저 생각이 나도 하나의 맥을 놓치지 않도록 집중한다. 그래서 글은 내 안의 수많은 것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삶에 대한 태도, 다양한 경험, 지혜, 어휘력, 읽는 이에 대한 배려, 생각과 고민, 글을 쓰고 다듬는 정성, 이 모든 것들의 총집합이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시간보다, 요즈음은 혼자 조용히 글쓰는 시간이 더 나답게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말하기보다 글쓰기에 대한 칭찬이 더 좋다. 방송을 하거나 강의할 때 “어쩜 그렇게 말을 잘해요!”라는 칭찬에 물론 뿌듯함을 느꼈지만, “작가님의 필력은 다들 인정했어요!”라는 편집자의 말이나 “글이 재밌고 술술 읽혀서 한 번에 다 읽었어요.”라는 독자의 말에는 정말 하늘을 날 것 같다. 굳이 강도를 비유하자면 글에 대한 칭찬이 열 다섯 배 정도는 센 것 같다. 그리고 몇 달이고 몇 년이고 내내 기억에 남아 내게 다시 글을 쓸 수 있는 힘을 준다.  

     

출판사와 계약을 앞두고 샘플 원고를 써서 보냈다. 몇 주를 고민하며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이번에는 새로운 형식이어서 특별히 더 어렵고 더 확신이 없었다. 씨름하며 붙들고 있어도 나아지지 않아 일단 마무리해서 보내보기로 했다. 적극적으로 편집자의 피드백을 수렴하는 것이 나의 장점이니, 피드백을 듣고 수정 보완하면 될 터. 보낸 지 몇 시간 후에 메일이 도착했다.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합격 통지 확인하듯 기다리지 못하고 바로 클릭했다. 


“작가님, 바쁘실텐데 예정일보다 빨리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꼼꼼히 살펴보고 이번 주 금요일까지 피드백 드리겠습니다.”     

 

피식 웃음이 났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긴장하면서 메일을 열었을까. 이 긴장감은 글을 잘 쓰고 싶고 칭찬받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내가 왜 그렇게 떨리는 마음으로 메일을 확인했는지 내 모습을 생각하며 또 글을 쓰니, 글은 역시 나를 돌아보고 소중한 오늘의 감정을 기록하게 해주는 매력적인 도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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