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끝엔, 인어가 있다
스페인에는 세상의 끝이라 여겨졌던 ‘피스떼라’라는 항구 마을이 있다. 대항해시대가 열리기 전까지 그곳은 유럽의 땅끝이었다. 하지만 워낙 작은 마을이었기 때문에 이곳에서 출발한 선박은 많지 않았다. 이곳에서 출발하는 선박은 대서양을 건너지 않고, 프랑스나 영국, 모로코, 이탈리아로 향했다. 당시 사람들은 대서양을 건너면 세상의 끝에 도달해, 돌아올 수 없는 폭포로 추락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신대륙을 발견하기 전까지, 피스떼라 마을은 그저 흔한 시골 마을이었다.
이 마을엔 오래전부터 인어에 관한 전설이 있었다. '인어 전설'은 유럽 어느 곳에 가도 흔히 들을 수 있는 전설이지만, 피스떼라의 인어는 조금 독특했다.
어느 옛날, 이 마을 근처 해변에 인어가 어린아이들에게 가끔 발견됐는데, 인어는 아이들을 만나면 ‘재밌는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다. 인어의 까맣고 긴 머리카락에는 불가사리, 소라고둥, 말미잘이나, 작은 물고기들도 엮여있었다. 인어의 비늘은 새까매 마치 마녀나 악마 같은 모습이었다. 인어는 아이들에게 재밌는 이야기를 해주지 않으면 잡아먹겠다고 말했는데, 그 어두운 눈빛과 꺼림칙한 생김새에 아이들은 두려움에 떨며 각자 아는 이야기를 했다. 마을 어른들에게 들었던 마을 전설, 자신과 맨날 싸우는 동생 이야기, 못생긴 스페인 왕자에 관한 소문 등 알고 있는 온갖 얘기를 밤새 했다. 슬픈 이야기를 들으면 인어의 비늘 색깔은 푸르게, 웃긴 이야기를 들으면 빨갛게, 놀라운 이야기를 들으면 노랗게, 화가 나는 이야기를 들으면 금세 까맣게 도로 변했다. 해가 뜨려고 하자, 인어는 바다로 사라졌고 아이들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붙잡으며 집으로 돌아갔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밤새 놀다가, 혼나지 않으려 지어낸 거지말이라며 무시했다. 하지만 마을의 몽상가들은 이를 소설로 써서 몇 권의 책을 써냈다. 이 책은 흐르고 흘러 스페인 왕궁까지 전달됐고, 스페인의 어린 공주가 너무 좋아해 그 마을에 큰 상을 내렸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인어’는 이 지방의 전설로 남아, 모르는 마을 사람들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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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대륙이 발견되고 대항해시대가 열렸다. 유럽의 젊은이들은 보물과 아메리카 특산물을 실으러 너도나도 전부 항해를 떠났다. 당시 유럽은 아메리카 보물과 특산물에 열광하고 있어서, 신대륙 원정을 성공해 물건을 팔아 부자가 된 이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신대륙에 도착하는 건 쉽지 않았다. 대부분 배에서 전염병이 돌아 죽거나, 무풍지대에 안착한 배가 움직이지 않아 굶어 죽는 경우가 많았다. 운 좋게 아메리카에서 보물들을 싣고 온대도, 해적에게 보물과 목숨을 몽땅 빼앗기기도 했다. 하지만 누가 젊은이들의 모험심을 막을 수 있을까. 그럼에도 유럽의 청년들은 너도나도 모두 신대륙으로 원정을 떠났다.
그러자 문제가 생겼다. 젊은이들이 너무 많이 사라져, 군대에 입대할 인원이 부족해진 거다. 무엇보다 해적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스페인은 타격이 컸다. 당시 젊은이들은 해군을 구세대의 모순과 권위로 뭉쳐진 악당으로 취급했고, 해적을 그런 불합리한 해군에 맞서 싸우는 탕아들, 낭만을 아는 사나이들로 생각했다. 때문에, 식민지 정복 전쟁을 준비하던 스페인은 영국이나 네덜란드, 프랑스 같은 주변국보다 한발 늦춰질까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피스떼라의 이름 없는 해안에 인어의 시체가 파도에 떠밀려 왔다. 사람들은 인어의 존재가 실제였다며 놀라워했고, 스페인 여왕은 이 시체를 스페인 해군의 배로 옮겨 영국 왕궁에 큰 값에 팔려고 했으나, 운항 도중 해적에게 빼앗겨 버리고 만다. 스페인 여왕은 영국 여왕이 해적을 고용해 강탈한 것이라 생각했다. 사람들은 스페인 해군을 두고, 해적에게 패배한 약한 군대라며 치욕을 줬다.
하지만 스페인 여왕은 이를 기회로 삼는다. 왕궁은 피스떼라 해변에 인어의 보물이 가라앉아 있다며, 해군에 입대해 이 보물을 찾는 이에겐 막대한 보상금을 내리겠다고 공표한 것이다. 그러자, 아직 청년이 되지 못한 소년이나 신대륙 원정을 두려워했던 청년들이 대거로 몰려 해군에 입대했다.
그리고 이 이야기의 주인공 알레한드로도, 신대륙 원정은 겁나지만 인어의 보물을 찾아 막대한 돈은 얻고 싶어서 해병이 된 소심한 청년 중 한 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