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을 사랑한 인어 Ep.4

인어의 보물

by 류련

인어의 목소리는 가느다랗고 높았다. 알레한드로는 온몸의 근육이 찌릿했다. 인어의 아름다운 모습 때문이기도 했고, 우울한 자신의 삶에 전설 속의 존재가 등장했다는 흥미로움 때문이기도 했다.


"사실은, 가장 싫어하는 동기 녀석이 내 소설을 망가뜨려놔서 읽기가 힘들어."


알레한드로는 편안하게 말했다. 자신을 잡아먹겠다고 으름장까지 놓는 인어였지만, 그에게 위협감은 없었다. 그저 힘든 나날을 이기기 위해 쓴 자신의 소설을 좋아해 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꼈다.


"동기? 너도 해군인가 보구나? 멍청한 스페인 해병들은 서로를 그렇게 부르곤 하던데. 요즘따라 더 시끄러워진 것도 너네 때문이지? 솔직히 말해, 너희 무슨 꿍꿍이를 가지고 있는 거야?"


인어는 머리카락만큼 검은 눈동자를 깜빡이며 말했다.


"우리 스페인 해병은... 인어의 보물..."


알레한드로는 망설였다. 인어에게 지금 스페인 해군은 인어의 보물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고 말하기가 두려웠다.


"뭐? 보물? 소설 읽을 때처럼 크게 말해봐! 아까 울 땐 어린아이처럼 엉엉 잘도 울더니!"


"우리 스페인 해병은, 무적 해군이 되기 위해 훈련을 할 뿐이야!"


"그래, 참 유난이다. 우리 언니가 그랬어. 너희 스페인 사람들은 믿을 존재가 못 된다고 말이야."


"언니? 네게도 언니가 있니?"


"그럼, 난 뭐 혼자 태어나서 혼자 살아갈 거 같니? 참 멍청하구나. 저번에 언니가 만난 영국 해병은 똑똑하고 교양 있다고 했는데 말이야."


인어는 새침한 표정을 지으며 지느러미를 흔들었다. 인어는 알레한드로를 은근히 놀리는 걸 즐기고 있었다. 페르난데스가 6세가 그랬다면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또 한 번 주먹을 날렸을지도 모를 알레한드로지만, 그는 작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자신을 놀리는 인어의 목소리마저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어떻게 됐는데? 해가 뜨기 전에 말해줘, 빨리!"


인어는 검은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넘기며 말했다.


"그건, 내일 말해주도록 하겠어. 소설을 쓰는 일은 굉장히 힘든 거라고. 너도 내 이야기를 들었다면, 보답을 해야지! 넌 내게 줄 거 없어?"


알레한드로의 소설은 이미 끝자락에 와있었다. 하지만 그는 다음 날에도 인어를 보고 싶었다. 깊은 밤의 한낱 꿈으로 오늘을 기억하기 싫었다. 그는 내일도 인어를 만나기 위해 이야기의 결말을 알려주지 않았다.


"인간 따위에게 줄 건 없어. 나에게 소중한 건 너희에게 소중하지 않고, 너희에게 소중한 건 나에게 소중하지 않거든."


"그게 무슨 말이야? 네게 소중한 게 뭔데?"


알레한드로는 인어와 대화를 이어갔다. 해가 뜨면 인어는 깊은 바닷속으로 들어간다는 걸 알았기에, 그전까지 인어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정말 멍청하게도 말이 많구나. 소중한 건 당연히 보물이지. 그리고 내게 소중한 보물은 셀 수 없이 많지. 푸른 밤의 하늘, 창백한 달, 물고기들과 서로의 안부를 묻는 시간, 누군가가 그리울 때 부르는 노래... 그 보물들을 지키며 살기에도 삶은 벅차지. 그럼 스페인 해병. 네게 소중한 건 뭐니?"


인어는 파도를 타고 아름답게 헤엄치며 말했다.


"나? 내게 소중한 건... 돈이야. 이 돈만 있으면 난 우리 마을에서 최고가 될 수 있어. 나를 괴롭히던 동기 녀석보다 더 부자가 되면, 걔도 더 이상 날 괴롭히지 못할 테니까. 무엇보다 우리 가족이 정말 좋아할 거고."


"돈? 금 같은 거 말하는 거니? 역시, 인간들은 멍청해. 나한텐 그깟 금 따윈 안 중요해. 저기 깊은 바닷속엔 침몰한 배들에 수많은 금들이 있지. 하지만 난 관심도 없어. 그깟 것들이 많다고 내가 더 행복하진 않거든."


인어는 파도로 회오리를 일으키기도 하고, 해수면에서 높이 뛰어올랐다가 다시 잠수하기도 했다. 얼마나 거셌는지, 바닷물이 알레한드로의 일기장 표지에 몇 방울 튀기까지 했다. 젖은 표지는 금방 말랐지만, 이내 물 얼룩이 생겨 흔적이 남았다.


"그렇다면, 네게 소중한 것을 하나 내게 줘. 소설은 내게 소중한 거야. 네게 나의 소중한 것을 나눠줬으니 너도 하나 나눠줘야 맞지 않겠어?"


알레한드로는 일기장의 얼룩을 만지며 말했다.


"그래. 너는 너의 소설을 들려주었으니, 나는 나의 노래를 들려줄게."



『 나의 자매는 항상 말했지


"보물을 지켜라"


그래서 나는 물었지


"자매여, 보물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녀는 말했지


"네가 항상 그리워하는 것. 없어질까 두려워하는 것

하지만 이내 사라질 것을 알게 되고, 애틋한 마음을 글로 남기는 것

그리고 소중한 사람에게만 공유하는 것"


나의 자매는 그리고는 울었지


"난 지키지 못했다네

소중한 보물을 잃어버렸다네"


그리고 그녀는 사라졌네

소중한 것을 찾으러 멀리 떠나버린 건지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네


난 나의 자매를 찾으러 다니네

멍청한 인간들의 눈을 피해 그녀를 찾으러 다니네 』


인어의 노랫소리는 아름다웠다. 인어는 깊은 바닷속으로 들어가며 계속 노래를 불렀고 이내 해가 떴다.

알레한드로는 떠오르는 태양이 야속했다. 그는 훈련소로 다시 돌아가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자신이 꿈을 꾼 건 아닌지 의심했다. 하지만 그의 일기장 표지에 튄 바닷물의 얼룩을 만지고 나서야, 그것이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자신의 보물이 무엇인지, 자신이 생각하는 소중함이란 무엇인지 몇 번이고 생각했다.


페르난데스 6세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 자는 척했지만, 알레한드로를 보고 있었다.


멍한 표정으로 들어오는 그의 얼굴을.

일기장의 바닷물 얼룩을 만지며 행복해하는 그의 얼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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