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인어를 만나다
신입 해병 훈련소는 피스떼라에 세워졌다. 대부분의 신병들은 인어의 보물을 찾기 위해 입대했다는 걸 해군은 잘 알고 있었다. 해군은 이 마음을 이용해 그들을 군인으로 키워내고, 영국과의 전쟁을 준비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그리고 알레한드로가 해군에 입대하는 날, 페르난데스 6세도 해군에 입대했다.
페르난데스 6세는 그의 아버지만큼 악독한 사람은 아니었다. 알레한드로와 로베르토가 친하게 지내는 걸 보고, 자신도 친해지고 싶었다. 부자가 가난한 이와 어울린다는 건 곧 창피한 일이라 생각했던 그의 아버지는, 아들을 크게 혼냈다. 열심히 공부해서 돈이나 명예 중 하나 이상은 쟁취해야 남들에게 무시받지 않는 사람이 된다고 가르쳤다. 하지만 페르난데스 6세는 공부엔 재능이 없었다. 책을 읽는 건 좋아했으나, 그가 써내는 글은 항상 중간의 수준이었다. 그의 글쓰기 선생은 페르난데스 5세에게 글 대신에 다른 진로를 추천했다. 그러자 페르난데스 5세는 자신의 아들을 군인으로 키워 최고의 사령관으로 키우려는 마음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강도 높은 운동을 시켰다. 페르난데스 6세는 곧잘 따라왔지만, 잠자고 밥 먹는 것 외에 운동만 하는 일상은 벅찼다.
'내가 재능이 뛰어났으면 이렇게 괴로울 일은 없을 텐데...
글 쓰는 재능을 타고났다면, 멋진 소설가가 됐거나,
운동신경이 좋았으면 이미 멋진 군인이 되고도 남았을 텐데...'
그는 매일같이 자신이 타고난 중간 정도의 재능을 저주했다. 할 수만 있다면 이렇게 자신을 만들어낸 신에게 침이라도 뱉고 싶었다. 그는 그렇게 조금씩 차가워져 갔고,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이들을 질투하며 이들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만이 그의 목표가 되었다.
같이 나란히 해군에 입대하게 된 알레한드로와 페르난데스 6세는 자연스레 경쟁 관계가 되었다. 해군 신병 훈련소에서는, 같은 고향에 같은 나이인 그들을 항상 비교했다. 알레한드로는 전략과 지휘, 해선 조작법에서 좋은 성적을 받았다. 하지만 체력이나 전투 등에선 항상 중간이나 그 이하였다. 페르난데스 6세는 반대로 체력과 전투 등에서는 중간 이상이었지만, 지휘나 해선 조작법은 중간 정도였다. 그럴 때면 이들을 비교하는 눈초리는 더욱 심해졌다. 페르난데스 6세는 특히나 이런 비교에 더 예민했는데, 혹여나 알레한드로가 자기보다 더 높은 등수를 기록하는 날엔, 억울함과 열등감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의 질투심은 그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치솟았다. 그 후로 그는 알레한드로에게 직접적으로 자신의 질투심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동기들에게 그를 욕한다거나, 체력장에서 그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면, 대놓고 비웃었다. 훈련소 샤워장에서 일부로 어깨를 부딪혀 미끌어뜨린다거나, 그의 신발에 오줌을 갈겨놓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지저분하고 유치했지만, 그와 그의 동기들은 낄낄거리며 재밌어했다. 그들보다 힘이 약한 알레한드로는 싸워도 이길 수 없을 거란 걸 잘 알고 있었다. 몇몇 동기 훈련병들은 알레한드로를 도왔지만, 그들도 마찬가지로 몸이 약한 훈련병들이였다.
신병훈련소 졸업식이 3주 정도 남았을 때, 훈련병 모두가 최종 성적 1등이 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모두 인어의 보물을 찾아 막대한 보상금을 받고, 의기양양하게 고향으로 돌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꿈꿨다. 물론, 당시 해군은 인어의 보물을 찾는 작전 따위야 없었다. 스페인은 영국과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고, 다만 사기가 오를 대로 오른 이 젊은 해병들을 그 전장에 어떤 역할로 처박을지만 고민하고 있었다.
한편, 훈련소에선 모두들 페르난데스 6세가 1등 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이미 알레한드로를 따돌리며 동기들의 마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알레한드로도 준수한 성적이었지만, 그의 곁에는 무리에 끼지 못하는 범생이 같은 훈련병들만 있을 뿐이었다.
알레한드로의 마음은 답답했다. 인어의 보물을 얻어 많은 돈을 얻고 싶기도 했다. 부자가 돼서, 알베르토를 '무모한 모험심의 젊은이'로 폄하하던 사람들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주고 싶었다. 하지만 동시에 좋은 해병이 되어서 알베르토를 그렇게 만든 해적들을 소탕하고 싶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무엇 때문에 해군에 입대한 건지 혼란스러웠다. 무엇이 정말로 자신이 원하는 것인지 몰랐다. 또한 훈련소 내에서 자신을 따돌리는 페르난데스 6세와 동기들 때문에 힘들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틈틈이 일기장에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소설가의 첫 작품이 으레 그렇듯, 자신의 이야기가 많이 녹아들어 가 있는 소설이었다. 과거에 큰 아픔을 가진 주인공이, 주변의 괴롭힘과 명확한 목표가 없는 내면의 공허함으로 힘들어한다. 하지만 곧 시련을 이겨내고 결국 멋진 해군이 되어 스페인을 빛냈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자신의 첫 작품을 맘에 들어했다. 훈련소 자신의 침대 베개 밑에 두고 몇 번이고 퇴고를 했다.
하지만 페르난데스 6세는 그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는 새벽에 알레한드로가 화장실 갔을 때, 그 일기장에 잉크를 부어버렸다. 책 읽기를 좋아했지만, 글 쓰기엔 소질이 없었던 본인인데, 알레한드로가 소설을 쓰니 미운 마음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가 잉크를 붓고 있을 때, 알레한드로가 들어왔다. 페르난데스 6세의 노골적인 괴롭힘에도 맞대응하지 않았던 알레한드로였지만, 이것만은 참을 수 없었다. 그는 페르난데스 6세의 얼굴을 주먹으로 갈긴 다음에 일기장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물론 훈련소 밖으로 나가는 건 엄격히 금지되어 있디. 하지만 자신의 소중한 소설을 망가뜨린 페르난데스와 같은 공간에 있으면, 당장이라도 그를 죽여버릴 것만 같은 마음에 그는 훈련소 밖으로 나갔다.
그는 걷고 걸어 한 낮은 절벽에 도착했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로베르토 부모가 어렸을 때, 넷이서 자주 놀았던 절벽이라고 들었던 곳이다. 그는 서러운 마음에 잉크 범벅이 된 자신의 소설을 읽어 내렸다. 잉크에 지워진 부분은 다시 고쳐서 적었다. 파도소리와 바닷바람, 그리고 소설을 읽는 그의 목소리가 어우러지니, 한 편의 교향곡 같기도 했다. 알레한드로는 그 분위기가 맘에 들었고, 왠지 모를 서러움에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페르난데스에 대한 원망도 있었지만, 어째서 해군에 입대한 자신에 대한 후회, 로베르토와 가족에 대한 그리움도 섞인 서러움이었다.
그리고 갑자기 울음 섞인 그 교향곡을 비집고 틈타, 어떤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그 주인공은 어떻게 됐는데? 그만 울고 어서 말해줘."
목소리는 해변에서 들려왔다. 알레한드로는 어둠 사이로 들리는 그 목소리의 주인을 찾아 헤맸다. 그러자 해변을 비추는 달빛 아래로 인어의 모습이 보였다. 검은 긴 머리카락을 한 여자의 상체, 하지만 물고기의 지느러미를 가진, 그리고 거기엔 까만 비늘이 가득한 인어였다. 그 인어의 비늘은 대부분 까맸지만, 허리 쪽에 있는 딱 3개의 비늘만이 은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알레한드로는 놀랐다. 인어의 긴 머리카락엔 소라고둥이나 불가사리, 작은 물고기들도 엮여있다는 전설과 다르게, 아름다운 모습에 놀랬다. 또 까만 비늘 사이로 빛나는 3개의 은빛 비늘이 탐 나기도 했다. 넋을 잃고 그 인어를 바라보고 있을 때, 인어가 말했다.
"야, 멍청한 스페인 인간아. 어서 재밌는 이야기를 해주지 않으면, 내 지느러미로 파도를 쳐서 그 절벽을 무너뜨릴 거야. 그리고 널 잡아먹어주겠어. 그게 싫다면 어서 내게 재밌는 얘기를 들려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