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이 되면, 자살하려고 했어요
세상이 정한 서른 살의 기준을 어떻게든 밀어내며 살아가려고요
서른이 되면 자살하겠다는 준형이 형
스물일곱 살의 봄, 내 친구 준형이 형은 서른이 되면 자살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준형이 형은 취업준비를 멈췄고 가지고 있던 돈을 전부 털어 오키나와로 여행을 떠났다.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도 준형이 형은 일을 하지 않았고 지금까지도 스터디 카페에서 책을 읽으며 지낸다.
그의 생일 파티 날, 준형이 형은 서른이 되면 자살하겠다는 다짐을 우리에게 말했다. 술에 취해 말하는 그를 보며 나와 내 친구들은 놀라지 않았다. 놀라움보단, 그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궁금했다. 난 그 '서른'이라는 기준을 설정한 이유가 무척이나 궁금했다. 하지만 그는 넘어뜨린 술잔에서 흐르는 술을, 눈물 삼아 눈빛으로 흐느낄 뿐이었다. 왜 서른에 자살하겠다는 건지 그 이유는 말해주지 않았다.
지금 당장 죽어도 상관이 없다는 스물여섯의 은지
스무 살 때부터 친하게 지냈던 은지는 밝은 성격에 쾌활한 사람이다. 모두가 그녀를 좋아했고 그녀의 유머러스하고 명랑한 성격을 칭찬했다.
그러던 은지가 어느 날, 나와 술을 마시다가 말했다.
"서른이 되면 난 자살하고 싶어. 아니, 지금 당장 죽는다 해도 별로 아쉬울 거 같지는 않아."
준형이 형에 이어서, 이 친구까지! 난 깜짝 놀라며 말했다.
"아니, 요즘 내 주변 사람들 다 왜 이렇지? 너 말고도 아는 형 하나가 똑같은 말을 얼마 전에 했거든? 대체 왜 서른이야? 왜 죽겠다는 거야? 아직 못해본 게 많고, 더 나은 삶을 살아봐야지. 근데 왜 이렇게 쉽게 죽는다는 결정을 하는 건데! 너네가 죽으면, 남겨진 사람들은? 그 사람들은 어떡하라고!"
난 거의 어린아이 떼쓰는 수준으로 발광했다. 쉽게 죽겠다는 말을 하는 그들이 미웠고 서운했다. 나 또한 죽고 싶었던 적이 많았기에, 어떻게든 그 마음을 돌려놓고 싶었다. 이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은지는 조개처럼 입을 꾹 닫아버렸고 나를 달래기만 했다.
서른에 죽겠다던 준형이 형과 은지가 만났다!
내가 생각해낸 최선의 해결책은, 그 둘을 만나게 하는 거였다. 술자리를 만들어 그들과 셋이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준형이 형이 먼저 은지와 한번 얘기를 나눠보고 싶다고 했고, 은지도 동의해서 우리는 함께 술자리를 가지게 됐다.
술자리의 화두는 단연 '서른 살에 자살하기'였다.
형준이 형은 앞으로의 삶이 기대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기대감 없는 삶을 사느니 앞자리가 바뀌는 서른에 죽겠다는 말을 했다. 은지도 비슷했다. 인간이 가진 감정 중 느껴볼 건 이미 다 느껴본 거 같고, 느껴보지 않은 감정이 많대도 더 살아갈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난 전처럼 죽지 말라며 그들을 설득하려고 하지 않았다. 난 그들의 미세한 눈썹의 떨림이나 목소리의 탁한 정도, 그들이 사용하는 조사에 면밀히 집중했다. 그렇게 몇 번이고 우려내면서 술을 마셨다.
가정환경에서 온 상처, 감당하기 힘든 사건들은 각자의 마음에 겹겹이 쌓여 그들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다. 멋들어지게 진행하고 각자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리드하고 싶었지만 난 그럴 정신이 없었다. 그저 그 농도 짙은 감정들에 몰입했다.
난 그들에게 서른이 오지 않기를 바란다
뭐 이런 술자리에 장대한 결론이랄 게 있을 리는 없다. 우린 미봉책으로 심리상담을 받아보자며 마무리했다. 각자가 자라온 환경, 받은 상처는 서로가 감당하기엔 너무 컸다. 그리고 죽기 전엔 꼭 서로에게 연락하자고 했다. 그리고 어떤 일이든 절대 우리의 잘못으로 돌리지 말자고 했다.
난 그들의 서른이 오지 않기를 바란다. 20대의 중후반인 우리에게 서른은 그런 의미였다. 경제적인 여유를 가지며, 나를 짓누르는 상처 따위는 내가 안정감 있게 컨트롤할 수 있는 그런 나이. 나를 아프게 하는 사람들과는 적당한 거리를 가지며 온전히 나를 위해 살 수 있는 그런 나이. 아니 어쩌면 세상은 '서른'이란 나이에 이 정도의 자격을 부여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준형이 형과 은지는 서른에 그런 모습을 갖지 못할까 봐 절망스러운 걸까? 함부로 판단하고 싶지 않지만 적어도 내겐 그러한 두려움이 있는 거 같다. 서른이 되어도 자살하지 않을 나는, 그들의 20대에 곁을 지키고 싶다. 그리고 사회가 정의하는 그런 서른이면, 우린 받아들이지 말자고. 우린 영원히 스물아홉에 머물러 있자고 말하고 싶다.
아, 오늘따라 더 준형이 형의 눈빛과 은지의 쾌활한 웃음소리가 그립다.
나도 그들과 세상의 서른을 최대한 밀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