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 글을 쓰기로 결정하면서 어떤 글을 쓸지 생각날 때마다 소재를 정리했다.
아빠가 입퇴원을 반복하면서 받았던 서류를 시간순으로 정리하고, 달력에 날짜를 메모하니 어떤 달은 입퇴원 기간과 외래를 합치니 13일이었다. 보는 나도 이렇게 지긋지긋한데 당사자는 오죽했을까 싶다.
10여 년 전 엄마가 항암치료할 때의 부작용으로 머리가 죄다 빠져 빡빡이시절(.....)을 경험했으니 나름대로 항암 부작용에 대한 맷집이 생겼다고 생각했지만, 두 번째라고 해서 익숙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엄마가 항암치료할 땐 하루 날을 잡은 뒤 약을 다 맞고 귀가하는 방식이었는데, 암종마다 항암 하는 과정이 다른지 아빠의 경우에는 절차가 좀 더 복잡했다.
아빠의 주 보호자는 엄마였고, 진료실에서 교수가 한 말을 그대로 내게 전해주진 않았다.
엄마에게서 들은 반쪽짜리 정보를 기반으로 판단해야 했고 대개 '수치가 좋다'는 식의 말을 들었으므로 기존의 알려져 있던 이 병의 생존율과 다르구나 싶어 지나친 낙관주의에 빠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이 병원에서 엄마의 유방암 치료가 나름대로 성공적이었고 아빠 역시 직장암 수술 결과가 매우 좋았기 때문이다.
아, 역시 상급종합병원은 다르구나. 전국에서 이렇게 사람이 많이 오는 데는 이유가 있구나. 나도 모르는 사이 편향적인 사고가 점점 굳었다.
엄마가 뭉뚱그려 '입원항암'이라고 했던 것은 추후에 보험사 제출용 진단서를 살피며, VIDL(비들) 치료라는 명확한 이름을 알게 됐다. 혹시나 특정될 수 있을 것 같아 날짜는 구체적으로 적지 않았지만 일정은 다음과 같다.
VIDL 전
5일 입원-응급실
엘-아스파라기나제 첫 투약, 월수금 격일 약 7회
VIDL 첫 달
4일 입원
이후 격일로 약 7회, PET 스캔
VIDL 두 번째 달
5일 입원
VIDL 세 번째 달
5일 입원
퇴원 이후 약 3회 항암, 그다음 날 응급실, 2일 후 PET 스캔
PET 스캔은 엄마 유방암 치료할 때부터 유구하게 정말 지겹고 짜증 나고 이 검사를 해야 할 때마다 너무 싫었다. 항암치료가 안 됐을까 봐, 혹시나 다른 곳으로 전이됐을까 봐.
찾아보니 비들 불응인 사람도 많다 해서 그게 우리 아빠일까 봐 많이 불안했는데, 주보호자인 엄마에게 전해 듣기론 모든 수치가 다 좋다고 했다. 이때는 추이가 좋았기에 '그래서 무슨 수치라는데?'라는 질문을 굳이 하진 않았지만, 이후에 내가 간병하면서 의사들이 짧고 두루뭉술하게 표현하는 말 때문에 말 그대로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
항암치료가 진행될수록 징그럽게 열매 맺힌 것처럼 아빠의 종아리와 몸 곳곳에 솟아있던 덩어리들의 크기가 작아지고 새까맣게 변했다.
힘든 항암 과정을 버티면서 우리 아빠가 암세포와 잘 싸우고 있나 보다, 얼마 뒤에 있을 자가이식도 잘 이겨낼 수 있겠구나. 어쩌면, 직장암을 이겨냈던 것처럼 다시 일상으로 회복할 수 있을 거라고 순진하게 생각했다.
거셌던 불안이 연소되면서 계절이 두 번 바뀌고 달력의 숫자가 하나 더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