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응급실
이전 포스팅에서는 항암치료 과정 동안 아무 일 없이 지나간 것처럼 서술했지만, 비들을 진행했던 3달 동안 평온했던 일상만 지속된 것은 아니었다.
병동에 입원해 있는 동안에는 혹시라도 부작용이 있으면 바로 너스콜로 의료진 대응이 가능하니 괜찮다. 그러나 진짜는 퇴원하고 집에 와서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다.
딱히 크리스마스에 뭘 챙기는 스타일은 아니었어도 나는 분위기에 취했고 퍽 설레는 마음을 안고 귀가했다.
'가서 아빠 체온 좀 재 봐.'
주방에서 저녁 준비를 하던 엄마 말을 듣고 안방으로 가 체온계를 찾았다.
아빠가 항암치료를 시작한 이후로 내가 수시로 그의 체온을 측정하는 것은 익숙한 루틴이었다.
암환자 가족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지만, 항암 치료 이후 환자의 체온은 매우 중요한 지표다.
38도 이상이면 응급실로 바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항암제로 인해 면역력이 극도로 저하된 상태이기에 건강한 사람에겐 스쳐 지나갈 법한 감기도 항암치료를 마친 환자에겐 치명적이었다.
입원항암을 몇 차례 하면서 다행히 아빠가 잘 견디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았고, 그날도 평소와 같이 체온계를 아빠 귀에 갖다 대고 측정했다.
38.5도.
환자나 신생아가 쓰는 비싼 체온계 브랜드가 아니라 정확하지 않은가? 고장 났나?
여태까지 멀쩡하던 체온계가 고장 날 일도 없건만, 괜히 한 번 더 재보면 다를 거라고 여기며 다시 쟀다.
39도.
정상범주로 떨어지는 게 아니랴 야속하게도 0.5도나 오른 수치에 패닉이었다.
크리스마스이브, 오후 다섯 시.
서울의 러시아워가 분명할 시간이라 그런지 머릿속이 하얘졌다.
우리 집에서부터 서울의 대학병원까지 가는 데는 엄청 오래 걸릴 텐데.
어쩌면 지하철을 타는 게 더 빠를 수도 있겠으나, 면역력이 약한 아빠가 사람이 많은 지하철을 타는 것도 문제였다.
그전에 고열부터 해결해야 할 것 같아 우리 집과 가장 가까운 2차 병원 응급실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받은 간호사의 말로는 체온을 떨어뜨릴 순 있지만 항암 관련해선 본인들이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므로 다니던 병원 응급실로 가는 게 나을 거라고 했다.
전화를 끊자마자 치료 중인 병동으로 연락했다. 우선 응급실로 오는 게 맞지만 대기가 오래 걸릴 수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응급실 가야 하니까 나갈 준비 하라는 내 말에 그냥 자고 나면 괜찮을 거라고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며 짜증 내는 아빠의 말에 나는 속이 터질 것 같았다(바로 응급실에 가야 하는 급박한 상황임에도 아빠가 병원 안 간다고, 이 정도는 괜찮다고 우길 때마다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이 부분에 대해서선 추후에 길게 글을 쓸 일이 있을 것이다).
같이 따라가려고 했으나 상주 보호자가 한 명 밖에 안 되는 데 네가 와서 뭘 할 수 있겠냐는 엄마의 단호한 말에 그냥 덩그러니 집에 남았다.
부모님을 택시에 태워 보냄과 동시에 내 크리스마스 계획이 전부 빠그라짐을 느꼈다.
따뜻한 침대 속에서 웹소설과 웹툰을 쭉 훑고 넷플릭스로 밀린 드라마를 정주행 하는 그 간단한 계획.
그딴 게 눈에 들어올 리가 있나.
큰일일지도 모르는데.
아빠가 응급실에 갈 때면 늘 불안했다.
항암치료 부작용이 심하면 어떡하지, 그래서 큰일이 생긴 거면 어떡하지.
걱정을 한다 한들 해결될 일도 없건만 폭염 속 아스팔트에 눌어붙은 껌처럼 참 떼어내기가 어려웠다.
엄마가 날 주려고 만들었던 볶음밥은 이미 싸늘하게 식었고, 그걸 먹을 만큼 입맛이 돌지도 않았다.
가만히 있어봐야 불안만 더 커질 것 같아 몸이라도 움직여 쓸데없는 생각이 내 머릿속에서 잠시나마 사라지게 하고 싶었다.
자고 일어나면 괜찮다고, 응급실 안 간다고 고집부리던 아빠의 옷을 억지로 갈아입히며 소란이 일었던 안방은 너저분했다.
어차피 결국은 갈 거면서 왜 그렇게 고집부리는 건지, 우리 집만 이런 건지. 답답한 마음은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싸늘한 바람 덕에 그나마 조금 해소되었다.
집엔 나밖에 남아있지 않았고 딱히 할 일도 없는 데다가 환자가 있는 집이니 이왕 청소 시작한 김에 모든 곳을 치워야겠다 다짐하고 몸을 바삐 움직였다.
좁은 집이었어도 꼼꼼하게 쓸고 닦고, 평소라면 신경도 안 썼을 부분까지 치우니 몇 시간이 훌쩍 지났다.
응급실에 도착한 엄마 말로는 아빠 앞으로 대기가 벌써 17명이며, 의사가 아빠를 살펴보는 게 내일 오전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저번에는 응급실에서도 빠르게 진료를 봤으니 이번에도 운이 좋다면 일찍 집에 올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런 운은 역시 한 번 뿐인가 보다.
걱정하지 말고 자라는 엄마의 문자를 받았지만, 잠이 오진 않았다. 몽롱한 상태로 검사 결과를 같이 기다렸다.
엄마로부터 문자가 온 건 새벽 세 시.
오랜 기다림 끝에 받은 소식은 코로나.
나는 코로나부터 폭염인 때에도 늘 KF94를 끼고 다녔고 남들이 보면 유난이라고 할 정도로 위생에 집착했는데 도대체 아빠는 어떻게 코로나에 걸린 걸까.
아빠의 일거수일투족을 추궁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언성이 높아질 게 분명했기에 꾹 참았다.
엄마에게 문자를 받은 이후로는 또 청소한 기억밖엔 없다.
집안의 모든 창문을 열고, 칼바람에 온몸을 덜덜 떨며 마스크와 일회용 라텍스 장갑을 끼고 소독약을 뿌려댔다.
마지막으로는 식기를 팔팔 끓는 뜨거운 물에 팔팔 삶았다. 오늘치 체력을 다 쓰고 넉다운 되어 침대에 뻗어있는 와중 핸드폰에 진동이 울렸다.
엄마가 택시를 잡아 집으로 오고 있다고 문자를 한 게 새벽 네 시 반.
내가 시뮬레이션했던 최악의 상황은 아니기에 피곤함보다는 감사한 마음이었다.
마지막 항암이 끝나고 자가이식 일정이 정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