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공포증도 이겨내는 예약전쟁
암 환자의 보호자로 같은 병원에 10년 이상 다니면서 가장 확실하게 느낀 것은 암병원에 매년 사람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처음 암 병원에 갔을 땐 우리나라에 암 환자들이 이렇게나 많다고? 싶어서 엄청 충격받았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무뎌졌다.
암 병원에 사람이 많아짐과 비례하게도 예약은 차츰 어려워졌다. 엄마의 유방암 치료 때만 해도 안내받은 날짜에 무리 없이 진료가 가능했지만, 아빠의 림프종은 처음 피부과(피부 침범이었기에 피부과적 문제인 줄 알았다) 예약을 잡는 것부터 모든 순간이 위기였다.
작년 의료 파업의 여파로 우리 아빠는 신규 환자가 아니었음에도 예약 잡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다.
이때만 생각하면 진짜 피꺼솟이다. 우리 집에도 환자가 없었다면 남일이었겠으나 내 일이 되고 나니 돈 쓰고도 불가촉천민 체험하는 것 같았다. 단발성 경험이라면 짜증 한 번 내고 지나갈 일이었을 텐데 아빠 옆에서 짧은 간병하는 동안 의사들을 만나며 수시로 들었던 감정이기도 하다.
각설하고, 세 번의 입원항암도 일정을 안내받을 때마다 병동에 베드가 없으면 밀릴 수 있다는 말을 줄곧 들었기에 날짜가 가까워지면 시간이 날 때마다 대표번호로 제때 입원이 가능한지 확인하려 전화를 걸었다.
전화하는 것을 극도로 꺼려해 처음 병원에 전화를 할 땐 내가 염소인지 염소가 나인지 모를 정도로 덜덜 떨리는 목소리에 할 말을 정리한 대본까지 만들었을 정도였다. 그러나 아빠의 항암 부작용으로 대처해야 하는 방법을 물어볼 때마다 병동에 전화(이 방법밖에 없다)를 해서 그런지 적어도 병원에 전화할 때만큼은 거부감 들지 않게 됐다.
내가 전화를 싫어하는 것과는 별개로 상담 직원과의 연결이 한 번에 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아주 드물게 한 번에 상담사 연결이 되어도 소요 시간은 최소 5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그런 운이 따르는 일은 거의 없었고, 대개 그들이 전부 상담중일 때는 알아서 통화가 종료됐다. 기다린 시간이 아깝기도 하고 얼른 입원날짜를 확정받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상담사 연결 될 때까지 시도했다. 핸드폰이 뜨끈뜨끈해질 무렵에야 겨우 통화해서 환자 이름과 상태를 말해두고 이 뒤에는 기약 없는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입원 날짜는 갑자기 정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집요하게 전화를 걸어 대기를 잡아놓으면 병동에 자리가 났을 때 환자인 '아빠'에게 전화가 온다.
보통 오전 10시나 11시쯤 전화가 왔던 것 같은데, 병동엔 점심 이후인 1시나 2시까지 와야 한다는 친절한 안내다.
우리 집에서 병원까지 택시로 한 시간 반 정도 걸리는 거리니까 꽤나 촉박하다(각종 감염 위험 때문에 지하철은 선택지에 포함하지 않음).
집 근처 카페에서 일하고 있던 내가 집으로 소환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언니는 직장으로, 동생은 결혼해서 타 지역의 거주 중이었으니까.
처음엔 입원 안내 전화가 왔을 땐 엄마가 시간이 촉박하니 같이 입원 준비물을 챙기자고 했지만, 경험치가 쌓이면서 엄마 혼자서 챙기는 날들이 잦아졌다.
우리 집의 좁은 거실 구석에는 언제든 병원으로 갈 수 있도록 준비물을 챙겨둔 보라색 캐리어가 있었다.
그 캐리어와 함께 부모님이 며칠간 자리를 비웠고, 아빠의 자가이식 1차 입원 당시의 내 기억이 흐릿한 것을 보아하니 이때에는 큰 이슈가 없었던 듯하다. 문제가 있었으면 캘린더에 메모가 있었을 텐데 아무것도 없는 것을 보면.
엄마에게 전해 듣기론, 담당 교수는 아빠의 항암치료가 본인의 예상보다 훨씬 좋아 놀란 것 같다고 했다.
항암치료의 순간마다 응급실에 다녀온 경험이 있긴 했어도 수치가 좋아졌다고 하니 자가이식도 성공할 것처럼 기분이 고양되는 것은 당연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