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균실 입원 전, 치아를 여섯 개나 발치해야 한다고요?
하나도 아니고 여섯 개나.
자가이식 첫 번째 입원을 하고 난 뒤, 2차 입원은 조혈모세포 이식 병동의 무균실이 될 터였으므로 아빠는 입원을 위한 준비가 필요했다.
아빠가 여태까지 치료에서 잘 버텨준 것은 고마웠으나 그것과는 별개로 무균실이라는 단어가 내겐 무겁게 다가왔다. 내 주변에서 우리 아빠가 두 번째로 혈액암에 걸린 사람이었던 탓이다.
중학교 때, 같은 반 친구가 급성 백혈병을 앓았고 당시 부반장이었던 나는 같은 반 아이들을 대표해 반장과 함께 병문안을 갔지만 당연히 면회는 하지 못했다. 이젠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 애의 아버지가 화질이 좋지 않은 핸드폰으로 찍어둔 동영상을 보고 마음 아파하며 돌아왔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애는 세상을 떠났다.
시간이 많이 흐른 만큼 치료 방법도 많이 좋아졌을 거라는 낙관적인 생각을 하려 했지만, 무균실의 벽은 그때나 지금이나 크고 높았다.
무균실의 입원 중인 환자는 면역력이 매우 약한 상태이므로 아주 작은 감염에도 치명적일 수 있다고 한다. 우리 아빠의 경우에는 발치를 해야 하는 치아가 풍치였고, 이로 인해 구강 내 세균이 전신으로 번질까 봐 미리 위험 요소를 제거해야 한다는 설명을 엄마에게 들었다.
발치하는 것 자체가 치료 과정 중 하나라고 애써 행복회로를 돌려보았다. 어금니처럼 잘 보이지 않는 곳이면 모를까 앞니로만 여섯 개는 치명적이지 않나. 우리 아빠는 깔끔 떠는 데다가 외모에 신경을 엄청 쓰는 사람인데, 발치하고 나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우울해하면 어쩌나 싶어 크게 염려했다.
발치 역시 같은 병원 치과에서 협진으로 진행했다. 소식을 전해 듣는 것과 실제로 앞니가 사라진 아빠의 모습을 보는 것은 천지차이였다.
앞니가 한 번에 여섯 개나 없어지고, 아빠는 짜증이 부쩍 늘었다. 미관상 좋지 않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대화할 때 발음이 샜다. 밥을 먹을 때도 불편함이 컸을 게 분명했다. 아빠의 앞에서는 엄마가 했던 말을 살짝 바꿔 치료 과정 중이고 자가이식 한 뒤 몇 개월이 지나면 임플란트 할 수 있으니 크게 신경 쓰지 말라고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나도 마음이 어수선한 건 마찬가지였다.
엄마가 항암치료할 때 빠지는 머리카락을 감당하지 못해 어느 날 미용실에서 전부 밀어버리고 집에 왔던 그날 그랬던 것처럼, 방 안에서 얼마간 혼자 숨죽여 울었다.
부모님 앞에선 감정적으로 동요하는 티를 내지 않으려 많이 노력했다. 자가이식만 잘 되면 다 지나갈 일이라고 자위했고 최대한 평소처럼 지내려고 애썼다. 울적함에 빠져있을 새가 없었다.
조혈모세포 이식을 위한 2차 입원을 위해 집에서 준비해야 할 물건이 많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