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kt세포 림프종이라는 병을 처음 알았을 때부터 입원항암, 자가이식 1·2차 퇴원에 이르기까지. 자가이식을 위한 입원을 기다렸던 몇 주 간을 제외하곤 크고 작은 일들로 집에서부터 대학병원 응급실을 왔다 갔다 했다.
무난히 넘어가는 단계가 하나도 없었기에 이번에도 올 게 왔구나 싶었다. 사실 이건 많이 정제해서 말하는 거고 속으로는 뭐 이렇게 지랄 맞은 병이 있지? 싶은 생각만 했다.
안내 책자에는 3개월 후에나 대상포진 맞으라고 하지 않았나? 두 달은커녕 이제 막 3주가 지난 시점인데 장난하나?
원인으로는 예상되는 게 있었다. 분명 아빠가 병원에서 받은 교육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행동했을 거라고 짐작했다. 자가이식 후 병원에서 부모님은 나란히 교육을 들었지만, 집에 와서 늘 딴 말하면서 고집부리며 우기는 사람은 아빠였다.
병원에서 갇혀있던 한 달여의 시간이 지긋지긋했던 건지, 아빠는 집에서의 격리생활을 조금도 참지 못했다. 거기에 더해 매일 초록색 때타월로 빡빡 닦아내는 샤워를 해야 만족해하던 성미인데, 때타월은커녕 샤워볼도 숨긴 상황이었으니 짜증을 엄청 많이 늘었다.
가족들이 아무도 없는 틈을 타 숨겨놓은 때타월을 찾아내 목욕을 한 며칠 뒤부터 온몸에 징그러운 수포들이 아빠의 오른쪽 가슴 밑부터 등짝까지 우두두두 순식간에 번졌다.
기가 막혔다.
동시에 허무했다.
집안의 모든 가족의 시간과 에너지를 '희생'시킨 결과가 이따위 것이라니.
태연하게 앉아있는 아빠의 얼굴을 보니 몇 개월 동안 눌러놓은 스트레스가 펑, 터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또다시 화를 삭이고 조혈모세포이식병동에 전화를 걸었다. 대상포진은 동네 2차 병원에서 입원치료 해도 괜찮다는 안내를 받고 부랴부랴 집 근처 병원에 입원수속을 했다.
며칠만 지나면 퇴원할 줄 알았는데 거기서도 약 2주 정도의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나도 내 생활이 있었기에 매일 찾아가진 않았다. 퇴원한 것으로 모든 것이 해결됐습니다,라고 말하면 좋겠지만 뒤치다꺼리할 일은 여전히 많았다.
대상포진 수포는 끔찍하게 징그러웠다.
다리에 암세포들이 뭉쳐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오른 것도 보기에 역했는데 이번엔 환공포증 불러일으키는 수포의 처치를 하는 것도 나와 엄마의 몫이었다. 난 비위가 약했지만 환자를 앞에 두고 토악질을 할 수 없었으니 애써 역겨움은 눌러 참았다.
제일 큰 사이즈의 메디폼을 환부를 따라 잘라 붙이고 그 위에 의료용 테이프를 붙여 진물을 흡수시키는 과정을 새 살이 올라올 때까지 했다. 메디폼의 가격도 매우 부담스러웠다. 메디폼 대형의 가격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비쌌고 이걸 매일 1장씩 거의 2주는 쓴 것 같다.
아빠가 nkt세포 림프종 환자라 안타까운 것과는 별개로 글에서 간병하며 있었던 일과 감정에 대해서는 전혀 미화할 생각이 없다. 환자가 고집부릴 때면 나는 그 뜻을 꺾지 못해 무력했고, 그 때문에 내가 뒤치다꺼리해야 할 일이 생겨 일정에 지장이 생기면 짜증이 치솟았다. 감정은 수습하기보다는 참고 무시하는 것에 가까웠다. 그저 시간이 빨리 지나기만을 바랐다.
어찌 됐든지 간에 3개월만 잘 버티면 큰 고비는 넘기는 것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