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나쁠 정도로 순화된 문장들
“이 바보 같은 녀석!
나중에 커서 뭐가 되려고 그러니?
누굴 닮아 이렇게 멍청한지. “
겨우 이 정도가 언어학대라고?
그럼 내가 들었던 말들은 무어라 칭해야 하는 건가, 저명한 전공서적 집필자에게 찾아가 따지고 싶었다. 그렇다고 열 띄게 수업 중이신 학과 교수님께 손들고 질문할 깜냥도 없었다. 그저 책 속 예시 문장 옆에 휘갈기듯 낙서했다.
‘이 정도가 학대면 내가 겪은 건 토막살인이겠네’
아예 공부와 담쌓고 지내던 게 아니어서 인지 그럭저럭 대학생활에 잘 적응했다. 분기마다 받을 수 있는 국가장학금, 어느 정도 괜찮은 성적에 대한 보상으로 성적장학금을 꼬박꼬박 탔다.
“차장님은 첫째 딸 학비 부담 안 되세요? 저희 애들 곧 신입생인데 학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네요.”
“학비? 제대로 안내서 잘 모르는데.”
나름 첫째 딸의 성과가 흡족했는지 아빠는 회사에서 나눈 동료와의 대화를 들려주었다. 내 귀엔 칭찬과 격려보다는 ‘앞으로도 꼭 지금처럼 해내렴’이라는 말로 밖엔 들리지 않았다. 막학기까지 감당해 냈으니 잘한 걸까. 잘해도 나 스스로를 칭찬하는 법을 몰랐다. 그냥 그런가 보다, 돈 굳어서 다행이네. 내 학비 때문에 엄마아빠 싸우는 소리는 안 들려서 좋네, 와 같은 얕은 안도감이 전부였다.
보육과 선택의 참 이유를 묻는 어른은 아무도 없었다. 취업 잘되는 학과라서, 어린이집 교사도 꽤 잘 어울리는 인상과 인성이니까 정도로 어림만 잡을 뿐, 가족들은 내가 왜 하필 이 과를 선택했는지에 대한 진학 이유를 궁금해하지 않았다. 물어봐줬다면 제대로 대답이나 할 수 있었을까. 그때 당시의 나, 스무 살의 나는 차마 이야기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은 퇴사한 지 몇 해 지났지만 이따금 흘러가는 말로 질문이 들려왔다.
“그런데 왜 어린이집 선생님 하기로 한 거야? 애들 좋아해서?”
“아이들을 좋아하는 것도 이유지만 큰 이유는 따로 있어.”
“뭔데?”
“난 언젠가 결혼도 하고 싶고, 엄마도 되고 싶거든. 근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자식들을 학대하고 싶진 않아. 그 부모에 그 자식이란 말이 세상에서 제일 싫거든. 똑바른 어른이 되고 싶어. 말로 아이를 죽이는 어른 말고, ‘아, 나는 소중한 사람이구나’라는 것에 대한 믿음이 있는 아이로 성장시키는 어른 말이야. 좋은 부모가 되는 법을 공부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이 학과 밖엔 없겠더라고. 그래서 전공했어.”
꽤 심각하고 재미없는 이유라 그 이후의 대화는 대게 잘 이어지지 못헀다.
한 마디를 하더라도 마음을 잔잔히 데워주는 따듯한 한 잔의 티를 건네주고 싶다. 그러려면 내 귀와 뇌리에 깊숙이 박혀있는 것들을 뿌리째 뽑아내는 작업이 우선되어야 했다. 그 길은 썩 유쾌하지 않았고, 작업이 수월하지도 않았다. 내가 간절히 고대하는 고결한 길에 건강하고 질 좋은 흙을 한 줌씩 옮겼다. 내가 맨발로 걸어도 상처 나지 않을 만큼 적당히 단단한 예쁜 길을 만들기 위해 차근차근 앞으로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