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대학 가면 엄마아빤 이혼할 거야.

진심이 아니었길 바라며

by 강설

“밥 먹자. 네가 좋아하는 미역국 끓였어, 소현아. 식기 전에 얼른 맛있게 먹자. “


우리 엄마는 다정하다.

어릴 때부터 엄마와 함께 만나는 어른들의 표정과 엄마를 번갈아보면 우리 엄마는 언제나 웃고 있었다. 서른을 앞둔 난 이제 그 웃음의 뒷면을 안다. 엄마가 그간 흘렸던 눈물이 어디로 흘렀는지. (이 부분은 나중에 자세히 적어보도록 하자)


우리 엄마는 지극정성으로 나와 동생을 키웠다. 나와 내 동생을 맞벌이로 키우면서 단 한 번도 학교 준비물을 빠뜨린 적이 없다. 내 초등학교 시절엔 토요일에 보통 운동회를 했는데, 토요일도 피아노교습소를 운영하던 엄마는 레슨을 마친 후 점심때가 다 되어서 도착했지만 기다리던 우리에게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미안함을 전하고는 나와 내 동생 손을 잡고 돈가스를 먹으러 갔다. 초등학교 건너편에는 그 당시 꽤 인기 있던 ‘미소야’라는 이름의 일식집이 있었다. 좋아하던 메뉴는 알밥이었는데, 그 음식점에 갈 때마다 엄마는 내가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선행이 돌아오지 않더라도 엄마는 많은 사람들에게 선뜻 선물을 나누는 사람이었다. 어릴 적 아파트는 복도식이라 앞집, 뒷집, 그 뒷집 등 같은 층에 살고 있는 모두가 이웃이었다. 이름만 이웃이 아닌 정말 이웃다운 이웃. 서로의 이름을 알고 그 집 아이가 몇인지 알고, 음식을 하면 서로 나누어 먹는 그런 이웃 말이다. 현장 체험학습 날이 다가오면 항상 김밥을 싸주던 엄마는 절대 몇 줄만 싸지 않았다. 앞에 열거한 이웃집에 모두 나눠주어야 하고, 경비아저씨와 청소아주머니 것까지 드려야 하기 때문이다. 식탁 한가득 쌓인 김밥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나와는 별로 친하지 않지만 같은 반이라 ‘친구’라 이름 붙인 남자애 것도 챙겨주라고 손에 쥐어주면 난 쑥스럽기도 하고 이걸 내가 왜 전해줘야 해, 하는 어린 마음에 불편함을 가지면서도 “이거 우리 엄마가 너 주래.”하며 전해주었다. 견학을 마치고 우연히 만나면 깨끗이 싹 비운 빈 통을 다시 나에게 별말 없이 건네주었다. 돼먹은 애라 고맙다는 말도 안 한 거라기보다는 숫기 없는 초등학생들이라 낯을 서로 꽤 오래 가린 것뿐이다.


이유 모를 복통으로 학원에 못 갈 거 같다고 전화해도 엄마는 한 번도 화내지 않았다.


“배 많이 아파? 화장실 때문은 아니야? 아이고 알겠어. 그럼 엄마가 학원 선생님한테 오늘 못 간다고 전화해 줄게. 집에서 쉬고 있어. 엄마는 저녁에 가는 거 알지? 이따 봐.”


지금 생각해 보니 스트레스 탓에 속이 뒤집어져 아픈 것을 그저 ‘배 아프다’로 밖엔 표현하지 못했던 것 같다.


다정한 엄마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면서 무엇이 그렇게 스트레스로 다가왔던 걸까 잠잠히 짚어보았다.


“나중에 너 대학 가면 엄마아빠는 이혼할 거야.”


너무나 친절하고 다정한 엄마가 하는 말이라 의심 없이 믿을 수밖에 없었다. 20살이 되면 대학생이 되는 거란다, 와 다를 바 없는 톤과 어조로 반복적으로 귓가에 울려 퍼지는 말이었기에.


아. 우리 가족은 내가 20살이 되면 헤어질 운명이구나. 그런 거구나. 혹시 내가 엄마를 힘들게 해서 그런가? 뭐가 문제지? 내가 어떻게 해야 우리 가족이 헤어지지 않도록 지킬 수 있을까? 방법이 뭐지? 누가 알려주지? 누구한테 이 고민을 말하지?


아무리 고민해도 도저히 털어놓을 어른이 주변에 없었다. 외부에서 오는 자극과 고민에 대해 부모와 이야기 나누며 쌓인 긍정적인 경험들로 타인을 신뢰할 수 있게 된다. 엄마에게 그런 말을 들었으니 다른 어른에 대한 신뢰가 전혀 없을 어린 나는 홀로 고민했다. 그 고민의 답은 ‘착한 아이’가 되는 것뿐이라는 결론에 도착했다. 그때부터 완벽히 착한 아이가 되기로 마음먹고 고군분투하는 삶이 시작됐다.


나는 내가 아닌 ‘착한 어떤 애’로 살기로 했다. 그리고 처참히 실패한 대학입시 후 진학한 ‘보육과’ 공부를 통해 하나하나 뜯어고치는 시간을 갖게 된다.


되물림을 끊어내기란 결코 쉽지 않다는 저명한 박사님 말씀처럼, 그 길은 험했다. 정확히 말하면 길이 없었다. 낭떠러지를 앞에 두고 저 멀리 반대편에 자리한 새소리가 기분 좋게 울려 퍼지는 ‘화목한 가정’까지 도달하려면 지금 선 곳에서 뛰어내려야만 했다. 낙하산도 없이, 날개도 없이 탈출하겠다는 목표 하나로 내달리니 몸이 성할리 없다. 너덜너덜했고 자꾸 피가 흘렀다.


그러다 결국, 사건이 터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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