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지만, 난 엄마 미워

by 강설

난 친정에 자주 가지 않는다. 거리가 멀 기 때문은 아니다. 갈 수 없는 상황이라거나, 부득이하게 어딘가 아프다거나, 직장이 바빠서도 아니다. 일부러 가끔 간다. 그렇다고 아주 안보는 건 아니었다. 24년 11월, 결혼 한 이후로 한 달에 한 번 꼭 뵈러 갔다. 부모님 생신, 어버이날과 같이 꼭 얼굴을 마주하여 축하를 전해야 하는 날에도 찾아간다. 최근 크리스마스 당일에도 부모님을 뵈러 친정에 다녀왔다. 그날 확실히 깨달았다. 아, 내 마음 건강을 위해선 더 가끔 만나야겠구나.


무어라고 외치고 표현하더라도 상대가 무반응, 심하게는 무시해 버린다면 그 관계를 원만히 유지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무리 내 손에 한 아름 꽃을 들고 그대에게 찾아갔더라도, 상대는 나에게 쓰레기를 건네줄 수도 있다는 걸 잊고 있었고, 이것이 나의 교만이었다. 이젠 더 이상 나이 뒤에 숨을 수 없을 만큼 세월이 지나버렸다. 빼도 박도 할 수 없게 난 서른이 되어버렸고,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어버이 은혜를 저버릴 순 없을 테다. 뭐, 아주 절연할 수는 없을 테니 그저 자식 된 도리만 가끔 하려고 한다.

다음 주 화요일, 남편 출장이 계획되어 있는 며칠 동안 친정엄마와 함께 외갓집에 가려고 했던 시외버스 티켓을 취소했다. 엄마와 단 둘이 나란히 앉아 하하 호호하며 버스에서 한 시간 남짓한 시간을 보낼 여력이 없다. 오랜만에 만나 뵙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를 대하는 것처럼 동일하게 엄마를 대할 자신이 없다. 이제 내 안에는 속이 아프고 눈물을 간신히 참고 있으면서도 밝은 척하는 웃음을 지을 힘이 남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너무 일찍 다 써버린 탓이겠지. 단 둘이 대화를 나눈 카톡 창에는 온갖 비아냥이 난무하면서도, 가족 단톡방에서는 ‘널 위해 언제나 기도한단다’ 말하는 그 위선을 아무렇지 않게 넘기지 못하겠다. 내 안에 화가 좀 누그러들고, 엄마를 향한 측은이 쌓여 그리움으로 착각할 때쯤에 만나고 싶다. 아직은, 아직은 아니다.


“다음 주에 할머니 댁 잘 다녀와. 감기 조심하고.”

“아, 저 그냥 안 가기로 했어요. 다음에 가려고요~”

“왜.. 혼자 심심할 텐데.”

“에이 괜찮아요.”

“그래. 문단속 잘하고. 자유하렴.”


때론 카톡으로, 때론 카페에서 단 둘이 만나 시시콜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시어머님은 다음 주 일정을 기억하고 계셨다. 정 무료하고 심심하면 5분 거리에 있는 시댁에 저녁이나 먹으러 갈까. 시어머님은 나에게 자유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웃는 가면을 쓰는 게 익숙한 나는 차마 속내를 밝히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