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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누리 Jun 08. 2023

#10 그녀에게 보내는 용서

집을 나와산 지 어언 10년이 넘었다.


일이 바빠서, 힘들어서, 피곤해서, 아파서, 선약이 있어서 갖가지 이유들로 2~3시간 남짓한 거리를 자주 들여다보지 못했다. 어쩌다 한번 가게 되면 여전히 어여쁨에도 나이가 묻어나는 그녀의 얼굴이 늘 내 맘을 불편케 했다.


일을 그만둔 후 그간 미뤘던 만남, 바람을 하나씩 이루었다.

친구, 동생, 여행, 시댁

그리고 가장 마지막이 부모님이었다. 

내가 가장 마지막까지 미루더라도 서운해하거나 미워하지 않고, 언제든 그 자리에서 한결같은 마음으로 나를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점심 느즈막히 출발해서 하룻밤 자고, 온전히 하루의 시간을 겨우 보내고 다음 날 저녁 떠나는 일정이었다.

직장은 다니고 있지 않지만 작은 일을 하나 부탁받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게 뭐라고, 나는 마지막 날 '저녁에 칼국수 해줄까?'라는 그녀의 말에 '나 가야 한다니까'하고 매몰찬 답을 무심히 던졌다. 그녀는 아쉬운 속내를 애써 감추며 '그렇지, 참' 하고 웃어보였다.


그녀는 내가 있는 2박3일동안 한시라도 함께 하고 싶어 뜬금없이 심야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하기도 하고, 자신이 일하는 곳에 놀러오라고도 했다. 맛있는 점심을 먹으러 가자고도 하고, 시장 구경을 하자고도 했다. 어린아이처럼 신난 그녀의 모습에 나는 기꺼이 따라나섰다.


그럼에도 나는 지금 후회하고 있다. 그 마지막 저녁 한 끼를 먹지 못한 것에 대하여.

그 한 끼가 뭐라고, 한 두시간 늦게 출발하는 게 뭐 대수라고. 

나는 그녀의 아쉬운 웃음과 물음을 외면했던 걸까.


나는 그녀를 무척이나 미워했었다.

나에겐 어린 날에 입은 아주 큰 상처가 있다. 덮어도 덮히지 않고, 묻어도 묻히지 않고, 닦아도 닦이지 않고, 달래도 아물지 않는 그런 상처. 그 상처는 여전히 내 우울의 근원으로 내 마음 속에 뿌리 박고 있으며 뿌리에 돋힌 가시가 때때로 할퀴기도 한다.


그리고 이 상처는 그녀에게서 시작되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녀를 무척이나 미워했었다. 그리고 나는 이걸 그녀에게 꺼내보이지 않았다.

아니, 않았었다.


얼마 전, 우울의 아구지에 삼켜져 한치 앞도 보이지 않던 때

나는 그녀에게 뱉어냈다. 이 썩은 내 나는 상처는 당신 때문이라고.

그녀는 곧장 사과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 마음의 가시 뿌리를 내게 휘둘렀다.

그때 나는 그녀의 용서를 포기하기로 했다. 그냥 마음껏 미워하리라 다짐했다.

이 상처 또한 삼켜내리라 되뇌이며 마음에도 없는 사과를 했었다. 내 상처를 괜히 드러내서 미안하다고.

그러자 그녀는 이내 울음을 터트리며 사과했다.

그에 참 우습게도, 참 쉽게도, 참 어리석게도 나는 그녀를 용서하기로 했다.


2박3일의 일정을 마치고 떠나는 나와 그리고 그런 날 지켜보는 그녀는 애써 웃으며 작별했다.

그녀를 등지고 왜인지 속절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전날 재미삼아 꺼내본 앨범 속 아주 하얗고, 맑고, 빛나는 젊은 날의 그녀 얼굴이 떠올랐다.

지금의 나보다 어린 사진 속 그녀는 박장대소 하기도 하고, 제 품에 안긴 딸아이를 아주 사랑스럽게 쳐다보기도 하고, 햇살을 받으며 단잠을 자고 있기도 했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글쓰기를 좋아하고, 친구들을 좋아하던 그녀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고 4남매 둘째 딸의 설움을 삼켜내며 어린 동생들을 돌보았다.


"나는 혼자 살아보는 게 소원이야"


그녀의 집에는 항상 챙겨야 할 동생들이 있었고, 도와야할 어머니가 있었다.

그리고나서는 으레 그렇듯 사지육신 멀쩡하고 적당히 밥벌이 하는 남자를 만나 결혼했다.

그때 나이 스물넷이었다.


그리곤 후회나 행복할 새도 없이 아이가 생겼다.

그녀는 스물다섯에 첫 아이를 낳았다.

그렇게 30여년의 세월을 살아냈다. 그렇게 쉰넷을 맞이했다.


어느덧 서른이 되고 결혼까지 하고나니 나는 그녀의 삶을 조금은 이해하게 된 것 같다.

그 여린 마음이 얼마나 외로운 날들을 살아왔을지

그 외로움이 당신을 얼마나 괴롭게 했을지

그 중에 나는 그녀에게 어떤 의미였을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용서하기로 했다.

내가 어떤 모습이건, 내가 어떤 사람이건, 내가 어떤 삶을 살건

그녀는 나를 사랑할테니

그녀는 나를 외롭지 않게 안아줄테니

나도 그녀를 안아주기로 했다.


엄마, 나는 엄마를 용서했어요.

만약 내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미운 마음이 있더라도,

그래도 그냥 나는 엄마를 용서했다고 생각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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