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누리 Apr 02. 2023

#9 우울의 기록(3) 돔 안에 든 쥐

나는 지금 정리를 앞두고 있다.

인생 3막의 3쯤 되려나.


나의 평정과 안위, 최소한의 행복을 지탱하는 마음의 다리 위 삶의 무게가 최대 하중을 초과했다. 다리의 실금을 눈치챈 것은 약 한 달 전이다. 나는 대참사가 일어나기 전 몸집을 가장 빠르게 불리는 것을 털어내고 보수공사에 착수하리라 다짐했다. 보수 기간은 약 한 달여 정도로 계획 중이다.


사실 나는 30여년이란 짧은 생에 이미 여러 차례의 보수공사를 거쳐왔다. 내 다리 군데군데엔 엉성하게 발린 시멘트 덩어리가 있다. 나이를 먹을수록 최대하중치와 보수 기술이 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약하고 어설프다.


본격적이고 대대적인 정비가 아니더라도 무게를 덜어낼 수 있는 방법은 있다.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산책로를 걷다보면 가끔 엉뚱한 생각에 잠기는데 그것들은 끈끈하지만 가볍고, 대체로 속이 빈 것들이어서 비교적 가벼운 마음의 짐들을 덕지덕지 붙이고 날아가버리곤 한다.


오늘도 마음에 눌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이었다. 그저 누워서 미디어에 가만히 잠식되고 싶었다. 하지만 일어났다. 뭐라도 해야했다. 이미 이런 날들은 열 번도 더 겪어왔다. 변질된 일상을 회복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나와서 걷다보니 노을지는 하늘에 달이 비쳤다. 가끔 이렇게 환한 하늘에 달을 볼 때면 참으로 이상한 생각이 든다. 내가 정말 지구라는 별 안에 갇힌 미물이라는 생각.


달이 카메라같다는 생각도 종종한다. 지구라는 돔 안에 갇힌 쥐들의 생로병사, 흥망성쇠를 관찰하는 카메라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다보면 내 삶이 하나의 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트루먼 쇼처럼.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 보면 비극이라던데. 희극이던 비극이던 이야기라는 본질은 변함없으니 나의 이런 우울과 때때로의 행복을 우주는 한편의 영화처럼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꽤 인기있는 플롯일지도.


100여 년도 채 되지 않을 짧은 생애를 살아가며 마음의 다리를 짓고, 중요한 것들을 하나 둘 쌓고, 때때로 버거워지면 버리기도 하고, 더 중요한 것을 위한 자리를 만들어 두기도 하고, 내 것이 아닌 것이 섞여 들어오면 당황하기도 하면서 참으로 고된 인생을 살아간다. 그래봤자 돔 안의 쥐일 뿐임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어쩌겠는가. 돔 안에 있는 다른 쥐들과 평화롭게, 질기디 질긴 생을 영위하려면 애쓸 수밖에



작가의 이전글 #8 우울의 기록(2) ※주의※기대'하'지 마시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